[K-VIBE] 김울프의 'K-지오그래피' 이야기…러너의 천국, 서울을 달리다
연합뉴스
입력 2025-07-17 13:02:04 수정 2025-07-17 13:02:04


광화문을 달리는 러닝크루사진 : 김울프 작가

[※ 편집자 주 = 한국국제교류재단(KF)의 지난해 발표에 따르면 세계 한류 팬은 약 2억2천500만명에 육박한다고 합니다. 또한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초월해 지구 반대편과 동시에 소통하는 '디지털 실크로드' 시대도 열리고 있습니다. 바야흐로 '한류 4.0'의 시대입니다. 연합뉴스 동포·다문화부 K컬처팀은 독자 여러분께 새로운 시선으로 한국 문화와 K컬처를 바라보는 데 도움이 되고자 전문가 칼럼 시리즈를 준비했습니다. 시리즈는 주간으로 게재하며 영문 한류 뉴스 사이트 K바이브에서도 영문으로 보실 수 있습니다.]

한강을 달리는 러닝크루사진 : 김울프 작가

행복은 멀리 있는 것 같지만, 실은 언제나 발아래 있다.

손기정기념관사진 : 김울프 작가

그 사실을 알게 해준 것이 있다면 바로 '달리기'다. 그리고 내가 가장 사랑하게 된 달리기 공간이 있다면, 그건 바로 이 도시, 서울이다.

손기정 선수가 받은 고대 그리스 청동 투구사진 : 김울프 작가

달리기만큼 단순하고, 그만큼 강렬한 운동이 또 있을까.

보스턴마라톤에 참가한 김울프 작가본인 제공

우리는 운동화 한 켤레만으로도 세계 어디든 달릴 수 있다. 하지만 어디서든 '좋게' 달릴 수 있는 건 아니다. 그 조건을 갖춘 도시는 흔치 않다. 서울은 그 드문 예외다.


서울에서의 나의 달리기는 한강에서 시작됐다. 물이 곁에 있어야 안심이 되는 바닷가 출신인 나에게, 한강은 서울이라는 거대한 도심 속에서 마음이 놓이는 몇 안 되는 장소였다.


강을 따라 걷고, 뛰는 사람들의 흐름 속에 있으면, 혼자여도 혼자가 아니었다. 땀이 식는 바람, 햇살에 반짝이는 윤슬, 그리고 끊이지 않는 발걸음들. 그 속에 내 삶도 자연스레 흘러갔다.


10년 전, 우연히 시작한 서울에서의 달리기는 어느새 삶의 일부분이 됐고, 더 나아가 내가 이 도시를 새롭게 바라보는 눈이 됐다.


한강에는 서울에 있는 강이 아닌 많은 의미가 있다. 도심을 관통하는 하나의 살아 있는 동맥이며, 걷고 뛰는 사람들의 심장을 잇는 연결선이다.


한강은 원래 '한가람'이라 불렸다. 넓고 큰 강이라는 의미다.


실제로 한강은 그 너비가 1km에 달하며, 도시를 흐르는 강 중에서도 규모나 유량 면에서 손꼽힌다. 한강 변을 따라 조성된 장거리 산책로는 서울의 동쪽에서 서쪽까지 이어져 있으며, 강북과 강남을 모두 아우르는 왕복 코스는 마라톤 풀코스(42.195km)를 넘긴다.


◇ 달리기에 최적화된 도시 조건


서울이 세계 각국의 러너에 사랑받는 또 하나의 이유는 안전함이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도시라고 해도, 어두운 밤의 외곽은 불안하고, 대도시의 어수선함은 방해 요소가 되기 마련이다.


하지만 서울은 다르다. 어디를 가든 누군가 걷고 있고, 또 누군가는 달리고 있다.


서울에는 한강뿐만 아니라 40여 개의 하천이 있다. 이 모든 하천을 따라 조성된 산책로와 자전거 도로는 달리기 코스로 손색없다.


서울이 세계에서 가장 안전한 도시 중 하나로 꼽히는 배경에는, 이런 일상 속 '걷고 뛰는 사람들'의 존재가 큰 역할을 하지 않았을까. 달리는 사람들 자체가 서로를 지키는 보안관이 되고, 도시는 그렇게 살아 숨 쉰다.


더불어 서울은 트레일 러닝의 천국이기도 하다. 서울 둘레길은 156.5km로 트레일 러닝의 풀코스인 100마일(160Km)의 거리에 준한다. 어느 도시가 이렇게 산과 강, 도심과 자연을 아우르는 러닝 환경을 가지고 있을까.


대중교통 역시 강점이다. 달리기를 멈추고 싶을 때, 지하철 한 정거장만 타면 집으로 돌아갈 수 있다.


뛰다가 지치면 언제든 가까운 편의점에서 물을 마시고, 쉬어갈 수 있는 공공 화장실도 곳곳에 있다. 이 모든 조건은 서울이야말로, '러너 프렌들리' 도시임을 증명한다.


서울에서 달린다는 것은 '운동' 이상의 의미가 있다. '역사'와 '문화'의 층위를 품고 있다면 지나친 비약일까.


1936년 베를린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목에 건 손기정 선수, 그리고 그와 함께 훈련한 남승룡, 보스턴 마라톤 우승의 기록이 있기 때문이다. 서울은 근대 마라톤 역사와 깊이 연결돼 있다.


서울 중구 만리동 고개에 위치한 손기정 체육공원과 그 안의 기념관은 서울이 가진 달리기의 기억을 간직한 장소다. 그곳에는 손기정 선수가 받은 고대 그리스 청동 투구가 전시돼 있다.


그 역사를 기억하며 매주 수요일 저녁 7시 36분에 서울을 함께 달리는 러닝 크루 'prrc1936'은 손기정 선수가 상징처럼 남긴 정신을 이어간다.


'내가 가면 길이 된다'는 그들의 모토는 곧 서울이라는 도시의 정신이기도 하다.


◇ 서울의 사계절은 러너에는 선물


서울은 사계절이 뚜렷한 도시다. 러너에도 특별한 장점이다. 겨울의 한기 속에는 장거리 유산소 훈련이 어울리고, 여름의 무더위는 근육을 이완시켜 고강도 인터벌 트레이닝에 적합하다. 가을과 봄은 기록을 내기에 최고의 계절이다.


매년 3월 열리는 '서울국제마라톤'은 세계 육상연맹에서 인정한 플래티넘 라벨 대회다. 서울의 봄, 평균기온 8도, 습도 30%의 기후는 마라톤 기록 경신에 최적이다. 그야말로 도심과 자연, 역사와 기후가 조화를 이루는 러닝의 이상향이다.


도시는 그 안을 채우는 사람의 모습으로 완성된다. 서울이라는 도시는 매일, 수많은 사람이 각자의 속도로 걷고, 뛴다. 그 발걸음은 단지 운동이 아니다. 서로를 향한 신뢰이자, 공동체의 건강한 호흡이다.


좋은 문화는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는다. 누군가의 조용한 시작이 있었고, 한 계단씩 쌓여온 시간이 있었다. 그리고 그 위에 지금, 서울을 달리는 수많은 발걸음이 있다.


서울은 이처럼 '살기 좋은 도시' 이상이다.


걷고 달리기에 이보다 더 좋은 시대, 이보다 더 좋은 환경이 있을까. 언제든 출발할 수 있는 길이 있고, 누구든 환영하는 길 위에서, 나는 오늘도 달린다. 사람과 사람, 마음과 마음을 잇기 위해.


서두에 말한 대로 행복은 저 높은 곳, 멀리에 혹은 지나온 길에 있는 것처럼 느껴질 때가 많지만, 늘 발아래에 있었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김정욱 (크루 및 작가 활동명 : KIMWOLF)

▲ 보스턴 마라톤 등 다수 마라톤 대회 완주한 '서브-3' 마라토너, 100㎞ 트레일 러너. ▲ 서핑 및 요트. 프리다이빙 등 액티비티 전문 사진·영상 제작자. ▲ 내셔널 지오그래픽·드라이브 기아·한겨레21·주간조선·행복의 가득한 집 등 잡지의 '아웃도어·러닝' 분야 자유기고가.

<정리 : 이세영 기자>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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