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아트센터서 20년 만의 내한 공연…조슈아 융커 '스펠스' 세계 초연
전준혁·최유희·박한나·김보민 등 한국인 무용수도 무대에
전준혁·최유희·박한나·김보민 등 한국인 무용수도 무대에

(서울=연합뉴스) 박원희 기자 = 주황색 천을 몸에 두른 남자가 무대를 들락날락하며 줄리엣의 눈앞에서 등장했다 사라지길 반복한다. 이윽고 주황색 천을 벗어 던지고 모습을 드러낸 남자는 로미오. 그는 줄리엣에게 함께하자고 하지만 그녀는 망설인다. 로미오는 줄리엣 앞에서 점프 동작을 선보이며 자신의 커진 마음을 드러낸다. 깃털처럼 가볍게 날아오른 그의 동작은 줄리엣뿐만 아니라 관객의 시선까지 뺏는다.
지난 5일 LG아트센터 서울에서 열린 영국 왕립발레단 로열 발레의 '더 퍼스트 갈라'는 고전부터 초연작까지 폭넓은 레퍼토리를 선보이며 세계 정상급 무용수들의 기량을 뽐내는 무대였다.
로열 발레는 1931년 러시아 발레단 발레 뤼스의 발레리나였던 니네트 드 발루아가 창단한 발레단으로 러시아 마린스키 발레단, 파리 오페라 발레단 등과 함께 세계적 발레단으로 꼽힌다.
로열 발레의 내한 공연은 20년 만이다. '더 퍼스트 갈라'는 로열 발레의 대표작들을 엮은 프로그램이다.

로열 발레는 고전 발레의 대표작 '백조의 호수'로 막을 올렸다. 탬버린을 든 무용수들이 경쾌한 리듬에 맞춰 움직이는 '나폴리인의 춤'으로 시작해 흰색 튀튀를 입은 공주가 백조를 닮은 듯한 몸짓을 보이는 2막 파드되(2인무)까지 이어졌다. 공주 역의 스미나 사사키는 피아노와 바이올린의 슬픈 정조에 맞춰 팽셰(한쪽 다리를 들어 올리고 상체는 앞으로 기울이는 동작) 등을 선보이며 부드럽고 정적인 아름다움을 표현했다. 이를 비롯해 무용계 최고 권위의 상인 브누아 드 라 당스를 받은 무용수 나탈리아 오시포바의 '지젤'까지, 로열 발레는 고전 발레에서 정적인 우아함을 뽐냈다.

이날 공연은 조슈아 융커가 안무한 '스펠스'(Spells)를 세계 최초로 무대에 올린다는 점에서도 주목받았다. 네덜란드 출신의 융커는 현재 로열 발레의 솔로이스트이자 안무가로 활동하고 있다. 스펠스는 무용수들의 역동적인 군무가 인상적인 무대였다. 무언가에 사로잡힌 듯한 무용수들은 점점 활기를 띠어가는 과정에서 자로 잰 듯한 2인무를 선보였다. 리프팅(무용수를 들어 올리는 동작)을 비롯해 '팝핀'을 연상하게 하는 동작들도 눈길을 사로잡았다. 발레보다 브레이크 댄스를 먼저 배웠다는 융커의 이력을 떠올리게 하는 부분이었다. 다채로운 조명 연출은 몰입감을 키웠다.

한국인 무용수들도 이날 무대에 함께했다. 한국인 발레리노로서는 최초로 로열 발레에 입단한 전준혁 퍼스트 솔로이스트는 '돈키호테'의 3막 파드되를 선보였다. 그가 피루엣(한쪽 자리로 지탱하고 제자리에서 회전하는 동작)과 마네쥬(원형으로 도는 동작)를 하자 객석에서 환호와 함께 박수가 터져 나왔다. 한국인 최초의 로열 발레 단원 최유희 퍼스트 솔로이스트는 '아스포델 초원' 파드되에서 서정적이고 섬세한 몸동작을 보여줬다. 박한나 아티스트는 '아네모이' 파드되, 김보민 퍼스트 아티스트는 '백조의 호수' 중 1막 파드트루아(3인무)에 각각 함께했다.
공연은 6일까지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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