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VIBE] 건축가 김원의 건축 이야기(1) 마천루 유감-①
연합뉴스
입력 2025-06-23 10:23:21 수정 2025-06-23 10:23:21


김원 건축가건축환경연구소 광장 제공

[※ 편집자 주 = 한국국제교류재단(KF)의 지난해 발표에 따르면 세계 한류팬은 약 2억2천5백만명에 육박한다고 합니다. 또한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초월해 지구 반대편과 동시에 소통하는 '디지털 실크로드' 시대도 열리고 있습니다. 바야흐로 '한류 4.0'의 시대입니다. 연합뉴스 동포·다문화부 K컬처팀은 독자 여러분께 새로운 시선의 한국 문화와 K컬처를 바라보는 데 도움이 되고자 전문가 칼럼 시리즈를 준비했습니다. 시리즈는 매주 게재하며 영문 한류 뉴스 사이트 K바이브에서도 영문으로 보실 수 있습니다.]


사막의 신화를 창조했던 두바이가 지난 2010년 1월, 높이 818m의 세계 최고층 건물 '부르즈 두바이'의 완공을 앞두고 모라토리엄(사실상 국가채무상환 유예 : Sovereign Default)을 선언한 기억이 난다. 쉽게 말해 '국가 부도'가 난 것이다. 그리고 그 건물의 소유권이 팔려 '부르즈 두바이'는 '부르즈 할리파 빌딩'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과다한 차입과 해외 투자로 쌓아 올린 현대판 바벨탑이 사막의 신기루로 변한 것이다. '할리파'는 두바이의 채무를 대납한 아부다비의 국왕 이름으로 '무하마드의 대리자'라는 뜻이다. '두바이의 꿈'으로 불렸던 부르즈 칼리파는 2010년 1월 4일 화려한 개장식을 갖고 전 세계에 탄생을 알렸다.


그 속에는 아파트 1천44채(1∼39층)와 49개 층의 사무공간(109∼160층), 최고급 호텔(1∼39층)과 전망대(123∼124층)가 자리 잡았다. 2005년 2월 착공 이후 33만㎥의 콘크리트, 3만1천400t의 철강, 약 12억 달러의 건설비가 들었고 엘리베이터만 57대가 설치됐다.


연면적이 49만5천870㎡(약 15만평)로 평평한 사막지대이므로 100㎞ 밖에서도 보일 정도의 높이다. 그러나 부르즈 칼리파를 비롯한 두바이 일대의 아파트와 사무실 가격이 1년 전보다 50% 이상 떨어졌고, 부르즈 칼리파의 아파트 가격은 2008년 최고치(1㎡당 2만7천달러)에서 반 토막이 났다.


당시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두바이의 부동산 가격은 연말까지 30%쯤 더 하락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이코노미스트(Economist) 역시 "이 건물의 아파트 900채는 3년 전 거품이 가장 컸을 때 다 팔렸지만 대부분 투자 목적이어서 실제 거주할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부르즈 칼리파가 완공된 두바이는 국가 부도설까지 나돌 정도로 어려움을 겪고 있어 '마천루의 저주'가 여기서 다시 한번 실증되고 화제가 됐다.


'마천루'(摩天樓)란 말은 'skyscraper'를 직역한 말로 '하늘에 가 닿다', '하늘을 찌르다', 더 나아가서는 '긁어서 상처를 내다'라는 뜻의 scrape에 -er이 붙었으니 좋은 뜻이기도 하고 나쁜 뜻이기도 하다. 높은 건물을 '루(樓)'라고 쓴 걸 보면 중국 사람들 번역인 것 같다.


'마천루의 저주'(skyscraper curse)란 말은 1999년 도이치방크의 분석가 앤드루 로렌스가 과거 100년간 사례를 분석한 결과 초고층 빌딩 건설이 경제 불황의 전주곡이라고 주창한 가설이다. 과거의 실례를 보면 '마천루의 저주'는 놀랄 만큼 잘 들어맞았다. 1930년과 1931년 뉴욕에 크라이슬러빌딩과 엠파이어스테이트빌딩이 세워질 무렵에 뉴욕 증시가 대폭락을 기록하면서 세계 경제에 대공황이 찾아왔다.


1970년대 중반에는 뉴욕에 세계무역센터(WTC)가, 시카고엔 시어스타워가 각각 완공됐지만 곧이어 오일 쇼크에 따른 경제난이 불어 닥쳤다. 1990년대 들어서는 마천루의 저주가 아시아로 확산했다.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의 페트로나스타워가 완공된 1998년에 아시아 전체가 외환 위기로 휘청거렸고, 2004년 대만에 타이베이금융센터가 세워졌을 때는 대만의 주력 산업인 IT산업이 거품 붕괴로 침체를 겪었다.


로렌스는 천문학적인 비용이 들어가는 대형 프로젝트가 돈줄이 풀리는 통화정책 완화 시기에 시작된다는 점에 주목했다. 통화정책이 완화되면 시중에 유동성이 풍부해지면서 호텔·오피스텔·상가 같은 다른 상업시설에 대한 투자도 활발하게 이뤄지며 경기가 과열된다. 그런데 공사가 진행돼 초고층 빌딩이 완공될 시점에는 경기 과열이 정점에 이르고, 결국 버블이 꺼지면서 대규모 경제 불황을 맞는다는 게 마천루 저주의 논리다.


대체로 시중에 돈이 남아돌아 과잉 투자와 투기 바람이 극성을 부릴 때 세계 최고층 빌딩 건설 계획이 수립되는 것도 원인이다.


'마천루의 저주'는 현대판 바벨탑이다. 마천루는 거품 시기에 착안해 위기를 지나며 완공된다. 대표적으로 오랫동안 세계 최고 높이 건물이었던 102층의 '엠파이어(Empire) 스테이트' 빌딩은 대공황 직전에 구상돼 1931년 완공됐다. 완공 직후 건물은 절반쯤 비어 있어 '엠프티(Empty)스테이트 빌딩'으로 불렸다.


우리나라에도 '사옥 괴담'이 있다. 잘나가던 기업이 능력 이상의 사옥을 짓다 쓰러진다는 속설이다. 많은 사람은 호황기의 풍요에 도취한 나머지 지나치게 낙관적인 전제 위에 더 야심 찬 계획을 추진한다. 그러다 과욕·과신·과열의 막장인 파국으로 치닫는 것이다.


인간이 바벨탑을 쌓다가 하느님의 노여움을 사서 공사가 중단됐다는 구약의 이야기는 교만한 인간이 벌이는 거대공사가 재앙을 불러올 수 있다는 경고의 뜻이다. 16세기의 급진파 신학자 토마스 뮌처는 루터의 성경 절대주의에 반대해 'Bibel, Babel, Bubel'(비벨, 바벨, 부벨)이라고 외쳤다. "성경·바벨탑·거품"이 모두 서로 비슷한 것이라는 뜻인데, 이 말을 오늘날에는 '성경의 바벨탑은 거품현상'이라고도 풀이할 수 있겠다. 교만은 거품 시기에 보이는 인간의 특징이다.



100층 이상 건물을 지으려면 각종 첨단 기술에 특수 자재가 사용되고 건축비가 보통보다 2∼3배 더 든다. 100층 이상 건물에는 보통 60대가 넘는 엘리베이터가 설치되므로 사용하지 못하는 공간도 많다. 유지 관리비도 비싸다 보니 임대료도 엄청나게 높아 완공 후에 몇 년간 텅 비어 있는 경우도 많다.


두바이를 전 세계에 알린 세계 최고층 부르즈 할리파가 유명세를 치르면서 덩달아 추진됐던 사우디의 킹덤타워(1천600m), 미국 시카고 스파이어(150층, 610m) 등 상당수 프로젝트가 불황으로 중단되거나 백지화됐다.


그런데 그때 유독 한국에서만 서울 잠실의 제2롯데월드(112층·555m)를 비롯해 용산 드림타워(150층·620m), 상암동 디지털미디어시티(133층·640m), 인천타워(151층·613m) 등 100층이 넘는 빌딩이 10개 가까이 추진됐다. 그때가 이명박의 허풍으로 건설 경기가 최고라고 회자(膾炙)하던 시절이었다. 이것은 무엇보다도 지리·생태학적으로 옳은 선택이 아니다. 자원 낭비일 뿐 아니라, 기능적인 측면에서도 비틀려졌고 정치·경제적으로도 전혀 생산적이지 않다. 한국적 정서에도, 한국의 지형에도 맞지 않는다. (계속)


김원 건축환경연구소 광장 대표

▲ 독립기념관·코엑스·태백산맥기념관·국립국악당·통일연수원·남양주종합촬영소 등 설계. ▲ 문화재청 문화재위원, 삼성문화재단 이사, 서울환경영화제 조직위원장 등 역임. ▲ 한국인권재단 후원회장 역임. ▲ 서울생태문화포럼 공동대표.

* 더 자세한 내용은 김원 건축가의 저서 '행복을 그리는 건축가', '꿈을 그리는 건축가', '못다 그린 건축가'를 통해 보실 수 있습니다.

<정리 : 이세영 기자>

seva@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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