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전쟁 75주년 현지 인터뷰…"강한 민주공화정 한국, 대선 잘 치르길"

(아디스아바바=연합뉴스) 김성진 기자 = "6.25 전쟁 직후 대한민국은 모든 것이 파괴돼 정말 끔찍한 처지였지요. 우리 부대가 전쟁고아들을 찾아가 정을 나눴지요. 그런 한국이 지금 이렇게 놀랍게 세계 10대 경제 강국이 되어서 우리뿐 아니라 다른 아프리카 나라들까지 돕고 있다니 경이롭네요."
에티오피아의 스테파노스 게브레메스켈 이마므(92) 한국전 참전용사협회장은 지난달 29일 연합뉴스와 아디스아바바 볼레 지역 자택에서 호국의 달을 앞두고 가진 인터뷰에서 이같이 감격스러워했다.
올해 6.25 전쟁 발발 기념일은 75주년이다.
그는 한국전 정전협정 이듬해 1954년 1년간 파병됐다.
3년간 이어진 포성은 멈췄지만, 한반도는 한국과 북한의 군사적 대치로 한순간도 마음을 놓을 수 없는 상황이었다.
긴장감이 흐르던 한국 땅을 밟은 스테파노스 회장은 처음에 미군과 교대해 방어선(DMZ·비무장지대) 경계 근무를 섰고 이후 다시 한국군과 임무를 교대했다.
아프리카 유일의 한국전 전투병 파병국인 에티오피아는 전설적인 '칵뉴 대대'로 유명하고 전후 '보화원'이라는 고아원을 운영해 전쟁 기간 부모를 잃은 아이들을 돌봤다. 총 3천518명(연인원 6천37명)의 참전용사 가운데 현재 에티오피아에 생존한 용사는 52명이고 캐나다 등 국외에 3명이 있다고 한다.
스테파노스 회장은 특히 동료 부대원들과 함께 고아원을 찾아 아이들과 시간을 보내고 병사 급료를 일부 후원해 음식을 나눠 먹었다고 기억했다.
4년 전부터 참전용사협회장을 맡고 있는 그는 당시 전쟁으로 고아와 과부가 넘쳐나고 노인들은 무기력한 슬픈 시기였다면서 "인간의 고통을 보면 마음이 좋지 않다"고 말했다.
이런 배경에서 에티오피아 종교 지도자들과 한국의 선교사들이 뜻을 모아 고아원을 설립했다는 것이다.

'병사 급료가 적었을 텐데 어떻게 고아원 아이들까지 나눌 생각을 했느냐'는 질문에 "당시만 해도 비르화(에티오피아 화폐) 가치가 1달러에 2비르일 정도로 정말 셌다"면서 미소를 지었다.
지금 1달러에 130비르 안팎인 것에 비하면 당시 비르화가 가치가 높아 병사임에도 비교적 형편이 넉넉했다는 것이다.
그는 "(한국전에 황실근위대를 파병한) 하일레 셀라시에 황제 폐하 시절에서 (1970년대) 사회주의 정권으로 바뀔 때만 해도 비르화 가치가 강했으나 뒤로 갈수록 약해졌다"고 회고했다.
그러면서 한국이 전쟁 후 비참한 처지에서 벗어나 비약적 경제 성장과 견고한 민주주의를 달성한 점을 높이 샀다.
또 한국국제협력단(KOICA·코이카) 등이 도시 외곽에 학교를 세우고 농부들이 소를 키우도록 돕는 한편 의료센터 수술 등 보건 활동을 통해 에티오피아뿐 아니라 다른 아프리카 나라들을 돕는 인간애를 발휘한 점에 대해 "기대 이상"이라고 평가했다.
이어 "한국인들은 매우 부지런하고 남북관계에서도 호전적인 북한에 대해 인내심을 잘 발휘했다"며 "한반도 통일을 위해 기도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요즘 한국 상황도 CNN 등을 통해 잘 보고 있다면서 "강한 민주공화정을 가진 대한민국이 대선도 잘 치르길 바란다"고 말했다.
그는 대한민국 후원자들이 다달이 혹은 격월로 참전용사들을 지원해준 덕분에 에티오피아 정부의 노인연금만으로는 생활이 넉넉하지 않던 참전용사들에게 큰 보탬이 되고 있다고 사의를 표했다.
또 기자와 동행 방문한 하옥선(66) 참전용사 후원회 현지 지부장의 노고를 위로하면서 "오랫동안 참전용사들을 잘 돌봐준 데 대해 이루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감사하다"고 말했다.

하 지부장은 최근 참전용사회 임원진 집 내부를 단장해주고 화장실이 없는 용사 가정에는 새로 만들어주기도 했다고 말했다.
스테파노스 회장은 아울러 아디스아바바 명성병원의 물리치료 덕분에 참전용사들이 건강 유지에 큰 덕을 보고 있다고 고마워했다.
그는 한국전 이후 소대장으로 직업군인 생활을 했으며 공수부대에서 156차례나 점프 낙하를 하기도 했다.
그는 "낙하산을 맨 체 그렇게 많이 뛰어내렸어도 끄떡없던 허리가 지난 팬데믹(전염병의 세계적 대유행) 때 코로나바이러스 공격을 받아 1개월 동안 드러누워야 할 정도로 아팠다"면서 지금 통증은 없지만 밖에 돌아다닐 땐 한국 측에서 기증한 지팡이에 의지한다고 말했다.
아들 둘, 딸 하나 등 세 자녀와 다섯 손주를 둔 그는 구순의 나이에도 한국전 당시를 회고할 때는 형형한 눈빛을 보이면서 "요즘 행복하다"고 말했다.
sungjin@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