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부여문화유산연구소, 군창지 동편 조사…대지 조성 방식 파악
건물터·저장시설 흔적 나와…"백제 왕궁의 위계 높은 공간" 추정
건물터·저장시설 흔적 나와…"백제 왕궁의 위계 높은 공간" 추정

(서울=연합뉴스) 김예나 기자 = 백제 사비 도읍기(538∼660)의 주요 유적인 충남 부여 부소산성에서 기와로 축대를 쌓은 흔적이 처음 확인됐다.
국립부여문화유산연구소는 부소산성의 군창지(軍倉址·군대에서 쓸 식량을 비축했던 창고 터) 동편을 조사한 결과, 기와로 쌓아 만든 축대를 확인했다고 27일 밝혔다.
부여 부소산성은 백마강 남쪽 부소산을 감싸고 쌓은 산성 유적이다.
사비기 후기 왕궁터로 알려진 관북리 유적 북쪽에 자리하고 있으며, 1981년부터 최근까지 17차례에 걸쳐 발굴 조사가 진행 중이다.
성 내부를 조사한 결과 건물과 우물이 있었던 흔적이 확인된 바 있다.

올해 조사는 부소산성 일대에서 평탄한 땅이 가장 넓은 것으로 확인된 군창지 동쪽을 중심으로 대지 조성 과정과 건물 흔적 등을 살폈다.
조사 결과 군창지 동쪽의 넓은 땅은 대규모 공사를 거쳐 조성한 것으로 추정된다.
원래 이 일대는 경사가 크고 깊이 팬 형태였으나, 흙을 쌓을 때 생기는 밀림 현상을 방지하기 위한 둑(토제·土堤)을 만들고 땅을 평평히 고른 것으로 파악됐다.
모래 함량이나 성질이 다른 흙을 교대로 5∼10㎝ 간격으로 쌓아 올린 양상도 확인됐다.

연구소 측은 "위에서 아래로 흙을 한 켜 한 켜 부어 쌓았다"며 "백제 한성기 몽촌토성과 풍납토성 축조 때부터 전래한 전통적인 대지조성 방식"이라고 설명했다.
평탄한 대지 위에는 다양한 건물이 들어섰을 것으로 보인다.
조사단은 땅을 파서 기둥을 세우거나 박아 넣어서 만든 건물을 뜻하는 굴립주(堀立柱) 건물터와 기와를 쌓아 올린 기단 건물터, 저장시설 흔적 등을 확인했다.
이 과정에서 기와를 20여 단 쌓아 0.6m 높이로 올린 축대도 일부 확인됐다.
연구소 측은 "돌이 아닌 기와로 쌓은 것은 국내에서는 처음으로 확인된 사례"라며 "현재 잔존 길이는 26m이지만, 향후 조사하면 더 길게 발견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조사에서는 기와를 쌓아 가장자리 마감을 한 기단을 뜻하는 와적기단(瓦積基壇) 형태의 건물터 2동도 확인됐다. 이 중 한 건물은 동서 길이가 약 14.6m, 남북 너비가 약 11.5m에 이른다.
연구소는 남아있는 건물 규모, 대지 조성 방식 등을 고려할 때 이 일대가 백제 사비기에 중요하게 여겨졌을 가능성을 주목하고 있다.
연구소 관계자는 "이번에 발굴 조사한 일대가 단순한 방어 공간이 아니라 백제 왕궁에서 위계가 높은 공간이었다는 것을 확인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연구소는 29일 오후 2시 발굴 현장에서 설명회를 열 예정이다.

yes@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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