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연합뉴스) 김지훈 선임기자 = "지금은 엄청난 금융위기의 '쓰나미'가 몰아친 상황이고 누구라도 이익을 내기가 어려운 상황입니다. 그래도 버핏은 우리를 위해 평균 이상의 실적을 냈고 또 조만간 주가도 회복할 것으로 확신합니다"
필자는 전 세계 금융시장을 강타한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였던 지난 2009년 5월 2일 워런 버핏의 투자회사 버크셔 해서웨이의 정기 주주총회 취재차 미국 네브래스카주 오마하시(市)를 방문해 버크셔 주주들을 인터뷰한 적이 있다. 금융위기와 경기침체로 당시 버크셔의 순이익이 반토막 났고 버크셔 A주 주가도 34%나 급락하는 등 주주들의 손실이 커져 경영진을 비판할 만한 상황이었지만, 기자가 주총장에서 만난 개인투자자들은 버핏에 대한 신뢰를 버리지 않았다.

그해 버크셔 주주총회는 금융위기의 한파 속에서도 '자본주의의 우드스톡 축제'라는 명성이 무색하지 않게 미국뿐 아니라 전 세계에서 주주와 취재진, 학생 등 3만5천명이 참석했다. 오마하로 향하는 비행기표는 한달 전부터 동이 났고 인근 호텔에는 빈방을 구할 수 없을 정도로 참여 열기가 뜨거웠다. 주총장인 오마하 시내의 대형 체육관에는 부모의 손을 잡고 참석한 어린이부터 노후자금을 투자한 80대 노년층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주주들이 몰려들었다. 모두 글로벌 경제를 강타한 금융위기의 폭풍 속에서 '오마하의 현인'(賢人)이 내놓는 경제 전망과 투자 지침을 현장에서 들으러 현장을 찾은 투자자들이었다.
"미국이 경제위기를 극복하고 예전의 성장궤도에 올라설 것으로 보나요?", "파생상품에 투자했다가 손실을 봤는데 전망은 어떻습니까?". "후계 문제와 회사 장래에 대한 설명을 해주십시오."
주총장에서 무작위 선착순으로 질문 기회를 얻은 주주들은 경영진이 곤혹스러워할 만한 날카로운 질문을 쏟아냈지만, 버핏은 솔직하고 차분하게 투자 손실을 인정했고 어려운 경제 여건 속에서도 투자 가치를 지닌 좋은 기업에 투자하는 원칙을 지켜나갈 것이라고 설명했다.
며칠 전 열린 올해 버크셔 주총에서 버핏은 60년간 지켜온 최고경영자(CEO) 자리를 후계자에게 물려주고 올해 말 은퇴하겠다고 선언했다. 주총장 현장에 몰렸던 4만여명의 투자자는 그의 깜짝 발표에 한참 동안 기립 박수를 보내며 '거장'의 퇴장에 경의를 표했다고 한다. 11살 때 신문 배달로 모은 돈으로 주식투자를 시작해 236조원의 자산을 일구고 550만%의 수익률을 달성한 '투자의 전설'에 대한 존경과 신뢰의 박수다.
주주들의 비판과 질타가 쏟아지거나 경영권 싸움의 대결장이 되기도 하는 국내 기업의 주총장과 달리 축제로 승화시킨 버크셔의 주총 문화를 비롯해 버핏이 자본주의와 투자자들에게 남긴 교훈과 지침은 셀 수 없이 많다. '버핏과의 점심 식사' 또는 '버핏의 주주 서한'에서 그가 남긴 금언과 투자 지침은 신속하게 뉴스로 전파돼 전 세계 투자자들에게 깊은 울림을 남겼다. 경기 부진과 관세 폭탄으로 극심한 혼란을 겪고 있는 투자자들은 벌써 은퇴를 아쉬워하며 그가 남긴 투자 지침들을 되새기고 있다. 버핏이 은퇴하더라도 주주 서한만큼은 계속 발표해 갈곳잃은 투자자들을 인도해주기를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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