없는 책 소개한 SF 거장의 재치 '절대 진공 & 상상된 위대함'
연합뉴스
입력 2025-05-06 08:00:00 수정 2025-05-06 08:00:00
폴란드 작가 스타니스와프 렘 소설집…'저주토끼' 정보라가 번역


'절대 진공 & 상상된 위대함' 표지 이미지[현대문학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연합뉴스) 황재하 기자 = "체계화된 현학 취미 혹은 농담인가? 우리는 저자의 의도가 농담이었으리라는 의심을 버릴 수 없으며 서문 또한 이런 의심을 줄여주지 않는데, 쓸데없이 길고 이론적인 이 서문을 읽어보자면 이렇다." (단편소설 '절대 진공'에서)

최근 국내에 처음 번역 출간된 폴란드 작가 스타니스와프 렘(1921∼2006)의 '절대 진공 & 상상된 위대함'은 존재하지 않는 책에 대한 서평 또는 서문 형식으로 집필된 단편소설집이다.

두 권으로 출간된 원서를 한 권으로 묶어 출판했다. 실제 존재하지 않는 책에 대한 서평 16편을 모은 '절대 진공'(1971)과 가상의 책 서문 5편과 발췌문 1편을 엮은 '상상된 위대함'(1973)을 하나로 합쳤다.

예를 들어 '절대 진공 & 상상된 위대함'에 수록된 '패트릭 해너핸, '기가메시''는 아일랜드를 대표하는 작가 제임스 조이스의 아성에 도전하며 모든 단어와 구절에 과도한 의미를 부여한 소설 '기가메시'에 대한 서평이다. 이 서평에 따르면 작가 패트릭 해너핸은 본문의 두 배에 달하는 해설과 온갖 참고 사항을 작성했다고 한다.

역시 수록작인 '앨리스타 웨인라이트, '존재주식회사''는 주문한 삶을 제공해주는 서비스 기업 존재주식회사를 소재로 하는 소설에 대한 서평이다. 서평은 소설 '존재주식회사'의 다소 황당한 설정과 세계관을 상세하게 다루고 있다.

'후안 람벨레 외, '비트 문학의 역사''는 작가가 인간이 아닌 문학의 역사를 설명하는 책의 서문이다. 기계가 휴식을 취하던 중에 쓴 글이 우연히 발견되고 이에 비트 문학이라는 이름이 붙었다는 설정이다.

모든 글이 가상의 책에 대한 것은 아니다. 두 편의 표제작 '절대 진공'과 '상상된 위대함'은 실존하는 각각의 책에 대한 서평과 서문이며 저자의 집필 의도를 직접적으로 설명하고 있다.

작가는 '절대 진공'에서 "진지한 태도로는 소곤거릴 엄두조차 낼 수 없는 말을 웃으면서 소리친 것"이라고 이 책의 성격을 설명했다.

실제 현실에서 구현하면 지나치게 급진적이라서 파장이 커질 수도 있는 책을 서평 또는 서문만 집필함으로써 마치 농담처럼 가볍게 취급받게 만들었다는 뜻이다.

한국 독자들에게는 다소 생소하지만, 스타니스와프 렘은 비영어권에서 가장 영향력이 큰 SF 작가로 꼽히며 아서 C. 클라크, 아이작 아시모프, 필립 K. 딕 등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거장으로 평가받는다.

특히 그의 소설은 정교한 과학적 상상력을 기반으로 하면서도 깊은 철학적 사유를 다루는 것으로 정평이 나 있다.

영화로도 제작된 대표작 '솔라리스'는 미지의 행성 솔라리스를 탐사하러 간 주인공이 사별한 아내와 똑같은 모습의 생명체와 조우하는 내용으로, 인간이란 무엇인지에 대한 고민을 담고 있다.

'저주토끼' 저자로 유명한 소설가 겸 번역가 정보라가 '절대 진공 & 상상된 위대함'을 한국어로 옮겼다.

미국 인디애나대에서 슬라브문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은 정보라는 수준 높은 슬라브문학을 번역해 국내에 소개해왔다. 올해 초에는 그가 번역한 폴란드 작가 로베르트 J. 슈미트의 SF '브로츠와프의 쥐들'이 출간됐다.

현대문학. 464쪽.

jaeh@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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