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연합뉴스) 송광호 기자 = "내 이름은 로제타, 나는 일자리를 찾았어."
2000년대 영화 감독들에게 엄청난 영향을 미친 다르덴 형제가 전성기 시절 만든 영화가 '로제타'다. 1999년 칸영화제 황금종려상을 받은 이 영화는 일자리와 인간의 존엄에 관한 얘기다. 식품공장에 다니다 실직한 로제타가 새로운 일을 시작하지만, 여기서도 해고되면서 겪게 되는 우울한 상황을 그렸다. 영화가 회자하자 다르덴 감독의 모국 벨기에에선 의무 고용과 보조금 지급 등을 골자로 한 '로제타법'까지 만들었다. 그러나 법은 현실과 거리가 멀었고, 벨기에 청년들은 여전히 실업에 고통받고 있다. 벨기에의 청년실업률은 인근 다른 국가들보다 2∼3배 높은 15%를 웃돈다. 벨기에 상황이 심각하지만, 로제타는 벨기에에만 있는 건 아니다. 유럽에도, 미국에도, 한국에도 있으며 젊은 로제타도, 나이 든 로제타도 있다.
왜 일자리는 이처럼 부족한 것일까. 이상헌 국제노동기구(ILO) 고용정책국장은 부족한 것은 일자리 자체가 아니라 "좋은 일자리"라고 신간 '왜 좋은 일자리는 늘 부족한가'(생각의힘)에서 말한다. 책에 따르면 최저임금에 겨우 미치는 돈을 받으면서 고통과 위험을 감내해야 하는 일자리는 차고 넘친다.

좋은 일자리 문제는 시장에 맡기면 해결되리라는 시각이 있다. 경제학에서는 노동시장을 수요와 공급이 만나 균형을 이루는 공간으로 정의한다. 이에 따라 실업을 비롯한 모든 문제는 자연스럽게 조정되며 절로 해결된다고 보았다. 그러나 현실은 그리 간단하지 않다. 노동자는 상품이 아니라, 살아 숨 쉬는 인간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일자리의 가치는 임금이 아니라, 인간의 존엄성과 사회적 기여까지 포함해야 한다고 저자는 주장한다.
아울러 저자는 노동시장이 태생적으로 불완전하며 날이 갈수록 복잡해지고 있다고 설명한다. 자동화와 디지털 혁신이 가속화되며 어제의 새로운 기술이 오늘의 지루한 기술이 되는 지금, 과거와 같은 안정적인 일자리 개념은 더는 굳건하지 못하다. 플랫폼 노동, 프리랜서, 계약직 등 다양한 고용 형태가 확산하며 노동의 개념 또한 급격히 변화하고 있지만, 우리의 정책적·사회적 대응은 아직 한참 부족하다고 저자는 지적한다.
320쪽.
buff27@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