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의 축' 사라지자 충성파 당국자들 성과 만들기 급급
메시지 충돌도 노출…밴스, 채팅서 "대통령은 모순 아느냐" 불만 표현
메시지 충돌도 노출…밴스, 채팅서 "대통령은 모순 아느냐" 불만 표현

(서울=연합뉴스) 고동욱 기자 = 미국 행정부 안보라인 고위 당국자들의 '전쟁계획 민간 메신저 논의 및 유출 사태'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즉흥적 외교정책에 내재한 위험성이 노출됐다는 분석이 제기됐다.
미국 일간 월스트리트저널(WSJ)은 25일(현지시간) "이번 사태는 때로 동맹들을 당황시키거나 측근들마저 충돌하게 만들곤 했던 정부 내 국가안보 정책 수립의 즉흥성을 보여준다"고 분석했다.
WSJ은 마이크 왈츠 국가안보보좌관이 민간 메신저 '시그널'에 개설한 채팅방이 단순한 상황 변화 공유 용도를 넘어 예멘 후티 반군에 대한 공습 여부를 결정하는 공간으로 성격이 변화했다는 데 주목했다.
이전 행정부에서라면 국무부, 국방부, 국가안전보장회의(NSC) 관리들이 걸러내고 발전시키는 과정을 통해 순차적으로 진행됐을 과정이 생략된 것이다.
이는 관료주의를 혐오하고 숙의 과정은 비효율적이라며 배격해 온 기업인 출신 트럼프 대통령의 성격에서 유래한 것이라는 분석이다.
그나마 트럼프 1기 행정부에서는 이른바 '어른의 축'(axis of adults)이라 불린 정치인·관료 출신 인사들이 즉흥적 정책에 제동을 거는 역할을 했지만 2기 행정부에서는 고위직 경험이 적은 충성파들이 내각을 채우면서 브레이크도 사라졌다.
그 결과 우크라이나 전쟁과 가자 전쟁의 조기 종식부터 이란의 핵무기 개발 저지, 영토 확장 욕심, 관세 전쟁 등 트럼프 대통령이 대형 의제들을 던지면 당국자들은 '성과'를 만들어내기 급급한 상황이 됐다는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전 행정부와 차별화되는 자신의 스타일이 성공할 것이라 주장하지만, 국제관계의 복잡성을 무시하는 대외정책이 조기에 거둔 성공은 많지 않다고 WSJ은 꼬집었다.
가자지구 휴전은 두 달 만에 파국을 맞았고, 우크라이나 전쟁은 휴전 논의에 들어갔지만 유럽과의 신뢰 관계에는 금이 갔다.
트럼프 대통령과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백악관에서 공개 설전을 벌이는 보기 드문 모습까지 노출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기성 정치인과 관료에 대한 불신의 연장선에서 스티브 위트코프 중동 특사 등 사업가 출신의 '외교 초보'들을 중용했다.
이는 때로 마코 루비오 국무부 장관 등 다른 공직자들과의 역할 혼선이나 정책 결정에 있어 의견 충돌 등을 야기했고, 그 결과 일관되지 않은 메시지로 동맹국 등에 혼란을 안겼다.
이달 17일 캐롤라인 레빗 백악관 대변인은 우크라이나 휴전 협상과 관련해 "평화로부터 10야드 라인(매우 근접한 곳)에 와 있다"고 했지만, 같은 날 루비오 장관은 "평화가 가깝지는 않다"고 말했다.
위트코프 특사는 최근 이란 핵 문제에 대해 트럼프 대통령이 "핵무기 개발 우려가 없음을 보증하는 프로그램을 원한다"고 말했다. 이는 핵무기 제조가 아닌 평화적 핵 개발은 용인할 수 있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졌다.
반면 왈츠 보좌관은 23일 "완전한 폐기"를 주장하며 "모든 프로그램을 포기하지 않으면 결과가 따를 것"이라고 상반된 발언을 내놓았다.
이런 문제 역시 이번 시그널 논의 유출 사태에서 노출됐다고 WSJ은 지적했다.
유출된 메신저 논의 내용 중에는 J.D. 밴스 부통령이 후티 반군을 공격하는 것이 수에즈 운하 이용이 많은 유럽에만 좋은 일이 될 것이라며 "이것이 현재 유럽에 대한 메시지와 얼마나 모순되는지 대통령이 아는지 모르겠다"고 말하는 부분이 등장한다.
밴스 부통령은 어떤 결론이 나도 동의하겠다면서도 "하지만 한 달간 미루자는 강한 의견이 있다"고 토를 달았다.
왈츠 보좌관이 유럽의 동맹국들에 후티 공격의 청구서를 내밀 방법이 있겠느냐고 묻자 밴스 부통령은 피트 헤그세스 국방부 장관을 향해 "해야 한다면 그냥 하라. 나는 그저 유럽을 구해주기 싫을 뿐이다"라고 응답 메시지를 보냈다.
트럼프 대통령을 열렬히 지지해 온 대외적 메시지와 달리, 후티 반군을 즉각 공격하려는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불만을 품고 있었음이 드러난 셈이다.
sncwook@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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