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연합뉴스)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가 24일 형제복지원 사건을 '국가의 부당한 공권력 행사에 의한 중대한 인권침해사건'으로 판단해 진실규명 결정을 내렸다. 진실화해위는 지난해 5월 27일부터 1년 3개월간 조사를 벌인 결과, "국가의 중대한 인권침해 행위가 규명됐고 피해자의 피해 및 명예의 회복을 위한 적절한 조치가 필요해 진실규명 결정을 의결했다"고 발표했다. 진실화해위는 이 사건에 대해 박정희·전두환 집권기를 포함한 1960~1992년 공무원 등의 자의적 판단에 의해 선도 명분으로 '부랑자'를 강제수용하고 구타·강제 구금·성폭행·암매장 등을 자행한 국가폭력 사건으로 규정했다. 당시 6세였던 한 피해자는 부산역 부근에서 단속반에 걸려 영문도 모른 채 강제수용됐다. 명절을 맞아 고향을 찾거나 일자리를 수소문하다가 경찰에 붙잡혀 끌려간 피해자도 있었다. '공공의 안녕과 질서를 위해서'라는 명분 아래 수많은 사람이 불순분자로 내몰렸다. 군대식 통제에 따른 구타와 폭행은 일상이었고 학대와 성폭행도 비일비재했다고 한다. 소란을 피우는 수용자에게는 정신과 약물이 과다 투약됐고, 납북귀환 어부를 감시한다는 이유로 국군 보안사령부 요원이 시설에 잠입하기도 했다. 형제복지원 입소자는 1975~1986년에 3만8천여 명으로 집계됐고, 공식 확인된 사망자는 657명이다. 민간시설인 형제복지원의 불법 행각은 정권의 철저한 비호 아래 가능했다. 박인근 전 원장은 전두환 정권 시절 청와대에서 국민포장, 국민훈장 동백장 등 두 차례 훈·포장을 받았다. 형제복지원에는 매년 수십억 원의 시설 운영비가 지원됐다.
진실화해위의 조사 결과를 요약하면 공권력의 '부랑인' 강제수용으로 강제노역, 가혹행위, 사망 등 중대한 인권침해가 있었고, 단속과 강제수용의 근거였던 법령, 지침, 계약뿐 아니라 경찰 등의 단속 행위도 위헌·위법해 헌법상 보장된 기본권을 훼손했다는 것이다. 특히 국가가 관리 감독의무를 다하지 않았고, 진정을 묵살하고 사실을 인지하고도 조치하지 않은 사실도 확인됐다. 단속과 수용, 운영 과정에서 인권침해 행위, 위헌·위법 행위, 국가의 직무유기 등이 광범위하게 밝혀진 것이다. 온갖 위법행위에 국가가 앞장서고 공권력이 동원된 것도 충격이지만 실태가 세상에 알려지기 시작한 뒤에도 국가기관 중심으로 사건에 대한 축소 왜곡이 이뤄져 합당한 법적 처리가 이뤄지지 않았다는 점은 더욱더 문제였다. 1987년 부산지검 울산지청의 수사와 형제복지원 운영진 구속으로 인권침해 실태가 일부 드러났다. 하지만 당시 박 원장은 횡령 등 일부 혐의만 유죄가 인정돼 징역 2년 6개월 형을 받는 데 그쳤다. 출소 이후에는 사회복지사업에 복귀해 진상규명이 제대로 진행되지 못했다. 검찰은 그를 업무상 횡령·특수감금 등 혐의로 재판에 넘겼지만, 법원은 정부 훈령에 따른 부랑자 수용이었다며 특수감금 혐의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다. 검찰 과거사위원회는 2018년 4월 위헌적인 내무부 훈령에 따른 부랑자 수용은 불법감금에 해당한다며 검찰에 사건 재조사를 권고했다. 문무일 검찰총장은 박 원장의 특수감금죄 무죄판결을 취소해달라며 비상상고하고, 30여 년 전인 1987년 부실 수사에 대해서도 사과했다. 비상상고는 그러나 지난해 3월 대법원에서 기각됐다.
뒤늦게 국가폭력의 실상이 확인된 만큼 이제라도 신속한 후속 조치가 이뤄지길 기대한다. 국가가 나서 폭력을 일삼았던 과거사에 대해 정부는 강제수용 피해자와 유가족에게 공식으로 사과하고 피해 복구와 트라우마 치유 지원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과거 정보기관, 군 정보기관, 경찰, 검찰, 지방자치단체 등이 행한 반인권적 '인간 청소', '한국판 홀로코스트'로 불리는 극악한 행위에 대한 철저한 반성에서 출발해야 한다. 실상이 알려지기 시작한 1987년 이후 줄 잇는 진정을 묵살하고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은 과정, 관계기관대책회의에서 어떠한 조직적인 축소 왜곡 시도가 있었는지 등 추가적인 자료 공개와 진상규명이 필요하다. 형제복지원 운영자들에 대한 법적 조치를 바로잡는 방법이 있는지도 검토가 필요하다. 나아가 이번 기회에 각종 시설에서의 수용 및 운영과정에서 피수용자의 인권이 침해되지 않도록 철저한 관리 감독 체계를 점검해야 한다. 사회적 취약자들이 수용된 각종 시설에서는 여전히 인권침해 행위를 호소하는 목소리가 터져 나오오는 게 현실이다. 국회는 진실화해위 권고대로 지난 6월 21일 국무회의를 통과한 유엔 강제실종방지협약의 비준 동의를 서둘러 마무리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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