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인들 덕에 특수작전 가능"…국제학술회의서 소령이 남긴 일기 주목

(서울=연합뉴스) 김용래 기자 = 2차 세계대전 당시 인도 전투에 한국광복군 대원들이 파견돼 일본군을 상대로 펼친 활약상이 영국군 장교의 일기에 남아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이 일기는 광복군이 해외에서 벌인 활약상을 구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는 역사 자료로 평가된다.
영국의 교사이자 전쟁사학자인 리처드 듀켓 박사는 13일 국립 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관 개관 기념 국제학술회의에서 발표한 '버마 주둔 한국 민족주의자들과 영국 특수작전집행부(SOE)'에서 광복군의 영국 특수작전 참가와 활약상을 소개했다.
2차 세계대전 당시 적군에 대한 첩보 활동을 맡은 영국의 특수조직 SOE(Special Operations Executive)의 선전부대인 IFBU(인도지구 전지선전대)에 파견된 한국 광복군은 뛰어난 일본어 실력을 바탕으로 일본을 상대로 한 전투에서 적지 않은 역할을 했다는 사실은 그동안 어느 정도 알려져 있었다.
듀켓 박사에 따르면 약산 김원봉 부사령관이 이끌던 광복군 인면전구공작대에서 일본어가 유창한 요원들이 IFBU로 파견됐는데, IFBU의 알프레드 트루트웨인 소령이 광복군 인면전구공작대와 함께 '임팔전투'에서 활약한 내용을 자신의 일기에 기록했다.

임팔전투는 1944년 3∼7월 버마(현 미얀마) 접경의 인도 마니푸르주(州) 임팔 일대에서 벌어진 전투로, 일본은 임팔에 주둔한 연합군을 공격해 인도를 침공하려 했지만 영국-인도군에 큰 패배를 당한 채 버마로 후퇴했다. 영국의 전쟁사가들 중에서는 임팔-코히마 일대 전투를 영국 역사상 가장 위대한 전투 중 하나로 꼽는 경우가 많다.
트루트웨인 소령은 일기에서 "한인부대인 인면전구공작대의 지원 없이는 IFBU의 운영이 어려웠을 것"이라면서 "한지성 대장과 문응국 부대장이 최봉진, 김상준, 나동규, 박영진, 송철, 김성호 등 6명의 대원을 이끌었다"고 설명했다.
한인 대원들은 당시 각 IFBU 부대에 배치돼 당시 임팔전투에서 영국과 맞붙은 일본군을 대상으로 방송될 연설 등 선전문구를 준비하는 역할을 담당했다.
일본인의 습성을 속속들이 파악하고 있던 한인 대원들은 일본군의 향수병을 자극할 노래를 선곡하거나 일본어로 전단을 작성해 배포하는 일도 최전선에서 맡았다고 한다.
1944년 3월 31일자 트루트웨인 소령의 일기에는 당시 대영제국에 속한 인도군이 생포한 첫 번째 일본군 포로를 심문하는데 일본어가 유창한 한인 대원들이 참여했고, 입수한 일본군 문서 번역도 한인들이 맡았다는 내용이 적혔다.
트루트웨인 소령은 일기에서 "일본군과 의사소통이 가능한 거리에 있었지만 서로 대화를 시도하지는 않았다. 프레스턴 대장과 나는 빈 연유깡통에 한인 대원이 일본어로 쓴 전단을 채워 철조망 너머 적진에 던졌다"고 기록하기도 했다.
듀켓 박사는 당시 "영국군과 인도군이 중대결정을 내리는 데 한인 대원들이 중추적 역할을 했다고 추정할 수 있다"면서 "한인 대원들을 통해 입수한 정보를 바탕으로 신속한 행동에 나설 수 있었다는 것도 큰 의미가 있다"고 평가했다.
임팔전투 이후에는 중국의 압력으로 인해 한인 대원들은 더는 IFBU에 파견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듀켓 박사는 "트루트웨인 소령의 일기는 임팔전투에 관한 다른 여러 기록에서 찾아볼 수 없었던 한인 부대의 참전사실을 확인해 준다"면서 "소수 최정예 한인요원들이 SOE의 선전부대 운영을 가능케 하고 영국 최고전투로 선정된 임팔전투의 승리에 지대한 공헌을 했음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이날 임정기념관 개관기념 국제학술회의를 주최한 국가보훈처도 트루트웨인 소령의 일기에 기록된 광복군의 활약상에 대해 "국내에는 처음으로 소개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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