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과 정조, 조선의 전성기를 이끈 왕들의 비결은 '경연'

(서울=연합뉴스) 성도현 기자 = "의문을 품고 연구해 들어가면 얻는 바가 있을 것이다. 배우는 자로서 모른다고 하는 것은 옳은 일이지만, 알지 못하는 것이 없다고 하는 자는 용렬한 무리이다. 알지 못하는 것을 꺼리지 말라."
조선 시대 성군의 상징인 세종의 재위 시절 역사를 기록한 책 '세종실록'에는 세종 14년 12월22일 '경연'(經筵)에서 신하들이 질문에 답변하지 못하자 괜찮다면서 세종이 신하들을 다독이는 장면이 나온다.
세종은 학문이 탁월했는데도 매일 같이 경연에 나가 신하들과 경전 등을 강론하고 현안을 논의했다. 왕이 경연에 나갔다는 것을 뜻하는 '경연에 임어했다'는 표현은 세종실록에 1천615건 나오며, 경연에 참석했으되 다른 식으로 기록된 기사를 합치면 2천 건이 넘는다.
김준태 성균관대 한국철학문화연구소 책임연구원이 쓴 '왕의 공부'(위즈덤하우스)는 실록 등 기록을 토대로 경연에 주목한다. 세종이 유학 경전과 역사에 능통했고 실용 학문까지 섭렵하고 있어 경연관들이 늘 긴장 상태일 수밖에 없었다고 분석한다.
학문이 깊었던 정조 때는 더 살벌한 상황이 나온다. 책은 정조가 신하들의 수준이 맘에 들지 않자 경연하는 것 자체를 시간 낭비라고 생각해 그 횟수를 줄였다고 전한다.
신하들이 이를 비판하자 정조는 "경연관 중에는 경술에 익숙한 자가 적다. 의심하는 글을 질문하고 심오한 뜻을 토론하고자 한다면 제대로 대답하지 못하거나 잘못 대답하는 경우가 많을 것"이라고 지적하기도 한다.
다만 저자는 정조가 학문에 소홀했던 것은 아니라고 강조한다. 왕이 신하들에게 학문을 배우는 기존 방식에서 벗어나 직접 신하들을 가르쳤는데, 이는 자신의 학문이 신하들을 압도한다는 자신감에 바탕을 둔 것이라고 말한다.
이들과 달리 경연에 적극적이지 않은 조선의 왕들도 있었다. 저자는 사가(私家)에서 생활하다가 어느 정도 나이가 들어 보위에 오른 태조(57세)·태종(33세)·세조(38세)를 그 예로 든다.
태조는 신하들에게 "수염과 살쩍이 이미 허옇게 됐는데 유생들을 모아 강론을 들을 필요가 있겠는가"라고 말하고, 태종은 "날마다 경연에서 강론하지 않더라도 그대와 더불어 글을 읽고 있지 않은가"라며 측근에게 솔직한 심정을 밝힌다. 세조는 "경연은 옛날 성현들이 행하신 일이 아니다"라며 거부하기도 한다.
책은 선조 15년 예조참판 김계휘가 특진관으로 경연에 참석했다가 중풍이 발작해 그날 밤 세상을 떠난 사건, 경연관이 여러 차례 지각하자 화를 내며 경연을 정지한 효종의 일화 등도 소개한다.
우여곡절 속에서도 태조에서 고종에 이르기까지 경연이 계속됐는데, 자발적이고 능동적으로 경연에 참여한 왕들이 조선의 전성기를 이끌었다고 저자는 분석한다.
232쪽. 1만5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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