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러 마지막 핵군축 협정 만료 임박에 고삐풀린 핵경쟁 우려

(워싱턴 모스크바=연합뉴스) 김동현 최인영 특파원 = 세계에서 핵무기를 가장 많이 보유한 미국과 러시아 간의 유일한 핵 군축 조약의 만료가 임박하면서 핵보유국 간 제약 없는 군비 경쟁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미국과 러시아의 전략 핵무기 수를 제한하는 신전략무기감축조약(New START·뉴스타트)은 양국이 연장에 합의하지 않는 한 오는 5일(현지시간) 공식 만료될 예정이다.
러시아가 작년 9월 이 조약의 1년 연장을 제안했지만, 아직 미국이 분명한 입장을 밝히지 않으면서 조약의 존폐가 불투명한 상황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뉴스타트가 만료될 경우 핵 군축 합의를 새로 할 수 있다는 입장을 시사하고 있다.
특히 러시아뿐만 아니라 중국 등 다른 핵보유국까지 아우르는 핵 군축 합의를 추진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달 8일 공개된 뉴욕타임스(NYT) 인터뷰에서 뉴스타트와 관련해 "만료되면 만료되는 것이고 더 나은 합의를 할 것"이라며 "선수 두엇이 더 관여될 수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재집권 후 여러 차례 이런 입장을 밝힌 바 있다.
그러나 아직 트럼프 행정부에서 러시아, 중국 등과 핵 군축 대화를 추진하는 동향이 포착되지는 않고 있다.
오히려 트럼프 대통령은 작년 10월에는 다른 국가들이 핵무기 시험을 하고 있다면서 미국도 1992년 이후 중단한 핵무기 시험을 재개하도록 군 당국에 지시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집권 1기 때 러시아의 조약 위반을 주장하며 2019년 중거리핵전력조약(INF)에서 탈퇴하고, 2020년에는 양국 간 비무장 항공 정찰을 허용하는 항공자유화조약에서 탈퇴한 전력이 있다.
월스트리트저널(WSJ) 등 외신 보도에 따르면 미국 정치권과 핵 전문가들은 뉴스타트 연장과 관련해 다양한 의견을 내고 있다.
러시아와 1년 연장하고 그 시간에 새로운 핵 군축 협상을 해야 한다는 주장과, 조약의 실효성을 보장하기 위해 러시아가 핵시설 사찰을 재개하는 조건으로만 1년 연장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주장이 있다.
반면 러시아와 중국의 핵 위협이 날로 커지는 상황에서 연장 제안을 거부하고 미국도 핵 위협에 대한 억제력을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들도 있다.
공화당 일각에서는 러시아가 조약을 제대로 지키지 않고, 중국이 핵무기를 늘리는 상황에 대응하려면 미국도 더 많은 핵탄두를 탑재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러시아는 미국이 연장에 동의하지 않으면 러시아도 "조처"를 해야 한다며 대응하겠다는 입장이다.
다만 뉴스타트가 만료되면 핵보유국이 늘어나고 핵보유국 간 긴장이 높아질 것이라고 경고하며 미국에 연장을 촉구하는 분위기다.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러시아 국가안보회의 부의장은 2일 공개된 언론 인터뷰에서 뉴스타트 만료에 대해 "즉시 재앙과 핵전쟁으로 이어진다고 말하고 싶지는 않지만 여전히 모두를 불안하게 한다"고 밝혔다.
실제 전문가들은 뉴스타트가 만료되면 미국, 러시아, 중국 3국의 핵무기 개발 경쟁이 격화될 것을 우려한다.
미국과 러시아 간에 전략핵무기 제한이 사라지면, 상대국의 의도와 역량에 대한 불안감이 커지면서 상대국의 핵전력을 압도할 수준의 핵무기를 확보하려고 할 수 있다.
미국 싱크탱크 군비통제협회의 작년 1월 추산에 따르면 현재 전 세계에는 1만2천400개의 핵탄두가 있으며 이 가운데 90% 가까이를 미국(5천225개)과 러시아(5천580개)가 보유 중이다.
중국은 2024년에 핵탄두 약 600기를 보유하고 있으며 2030년에는 1천기가 넘을 것으로 미국 국방부는 작년 12월 공개한 중국 군사력 보고서에서 추산했다.
2011년 2월 5일에 발효한 뉴스타트는 미국과 러시아가 각각 배치한 대륙간탄도미사일(ICBM)과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전략폭격기에 탑재할 수 있는 핵탄두를 1천550개로 제한하도록 하고 있다.
핵탄두를 실어 나를 수 있는 ICBM과 SLBM, 전략폭격기의 배치도 700개로 제한한다.
ICBM 발사대와 SLBM을 발사할 수 있는 잠수함, 전략폭격기는 배치된 것과 배치되지 않은 것을 포함해 총 800개만 보유할 수 있다.
양국은 이런 정보를 매년 두차례 공유하며, 협정 준수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상대국의 핵시설에 대한 사찰을 진행한다.
그러나 러시아는 2022년 2월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이후 핵시설 사찰 등에 협조하지 않았으며, 2023년 2월에는 우크라이나 전쟁 책임이 서방에 있다고 주장하며 뉴스타트 참여 중단을 선언했다.
그러자 당시 미국 바이든 행정부도 2023년 3월에 핵탄두 숫자 등을 러시아에 제공하지 않았으며 대신 투명성 차원이라며 국무부 홈페이지에 숫자를 공개했다.
또 러시아가 협정에 복귀할 때까지 미국 영토의 핵시설에 대한 러시아의 사찰을 허용하지 않기로 했다.
국무부가 홈페이지에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미국은 2023년 3월 1일 기준 핵탄두를 실어 나를 수 있는 운반체로 총 662기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전략폭격기를 배치했다.
이들 핵 운반체에 탑재된 핵탄두는 총 1천419개다.
ICBM 발사대와, SLBM을 발사할 수 있는 잠수함, 전략폭격기는 배치된 것과 배치되지 않은 것을 포함해 총 800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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