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의 진압'에 이란 시위 소강상태…주민들 "계엄령 같은 상황"(종합)

(이스탄불·서울=연합뉴스) 김동호 특파원 김아람 기자 = 경제난 항의로 시작된 이란의 반정부시위가 당국의 유혈 진압 속에 잦아들고 있는 모양새다.
16일(현지시간) 미 일간 뉴욕타임스(NYT), 로이터통신 등은 수천 명의 목숨을 앗아간 당국의 가혹한 진압 속에 이란 전역에서 시위가 상당 부분 소강상태에 접어든 것으로 보인다고 보도했다.
NYT와 로이터가 접촉한 수도 테헤란 주민들은 이번 주 들어 당국의 진압 강도가 거세지고 사상자가 급증하면서 거리 시위가 대부분 수그러들었다고 전했다.
이들에 따르면 이날 기준 테헤란은 나흘째 비교적 조용한 상태다. 도시 상공에 드론이 날아다니지만, 전날부터 대규모 시위가 일어날 징후는 보이지 않았다.
테헤란 도심 곳곳에는 군경이 대거 배치됐으며, 평소 인파와 차량으로 붐비던 거리는 텅 비었다. 도시에 마치 계엄령이 내려진 것 같다고 주민들은 전했다.
테헤란 중심부에서 근무하는 한 주민은 NYT에 "큰 실망감과 환멸이 퍼져 있다"고 말했다.

미국 싱크탱크 전쟁연구소(ISW) 역시 지난 14∼15일 이틀간 이란 전역에서 시위가 전혀 일어나지 않았다고 파악했다.
노르웨이 기반 단체 이란인권(IHR)도 "테헤란과 가라즈 등지가 마치 유령도시처럼 조용하고 황량하다"며 거리 곳곳에 AK-47 소총과 산탄총 등으로 무장한 군경만 배치돼 삼엄한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다고 전했다.
지난 8일 오후 이란 당국이 인터넷·통신을 전면 차단한 뒤 12일까지 대규모 사상자를 불러온 강경 진압을 이어간 후 시위가 잦아들었다는 것이 여러 언론과 기관의 대체적인 분석이다.
이란 당국은 이날까지 9일째 인터넷 차단을 계속하고 있으며, 야간 통행금지령도 내린 것으로 알려졌다. IHR은 이를 두고 "사실상 계엄령 상황"이라고 전했다.
NYT가 접촉한 이스라엘 당국자 2명에 따르면 이스라엘 국방 당국은 이란 군경의 실탄 사용이 늘고 인터넷이 차단된 이후 지난 11일 정도부터 시위가 눈에 띄게 잦아들었다고 평가했다.
일부 정보 당국자는 시위가 이란 정권에 의해 사실상 진압된 것으로도 보고 있으나, 현재 통신이 차단된 탓에 정확한 상황 파악은 어려운 상태다.

인권 단체들은 이번 이란 시위에서 목숨을 잃은 사망자가 지금까지 최소 3천명을 넘어선 것으로 파악했다.
IHR은 이날 기준 시위 사망자가 최소 3천428명이라고 발표했다. 미국 기반 인권운동가통신(HRANA)은 사망자 수를 3천90명으로 집계했다.
이번 시위에서 발생한 인명 피해는 지난 수십년간 이란에서 발생한 그 어떤 시위나 소요 사태의 희생자 규모를 뛰어넘는다고 AP통신은 설명했다.
이런 상황에서 최근 며칠간 이란 당국은 국제사회의 비난과 미국의 군사 행동 가능성을 의식해 시위대 폭력 진압을 자제하는 모습을 보였다.
특히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 14일 "이란에서 (시위대) 살해가 중단됐다고 들었다"고 발언한 이후 미국이 이란을 공격할 가능성은 한풀 꺾였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16일 백악관에서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아랍과 이스라엘 당국자들이 당신에게 이란을 타격하지 않도록 설득했는가'라는 질문에 "나 스스로 납득한 것(convinced myself)"이라고 답했다. 또 "(이란이) 어제 (시위 참가자) 800명 이상에 대한 교수형을 예정했다가 그렇게 하지 않았다"며 "그들(이란 당국)이 교수형을 취소했다. 그것이 큰 영향 미쳤다"고 말했다.
다만 이란 정세를 둘러싼 긴장은 지속되고 있다. 미국의 공격 가능성에 이란이 경계 태세를 유지하는 가운데 이날 유럽연합항공안전청(EASA)은 유럽 각 항공사에 이란 영공 비행을 피하도록 권고했다.
dk@yna.co.kr, ric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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