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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VIBE] 전태수의 '웹 3.0' 이야기…'관계' 빠진 메타버스 플랫폼의 명암

연합뉴스입력
로블록스 첫 팝업 행사 (성남=연합뉴스) 김주환 기자 = 1일 경기 성남시 판교 현대백화점에서 열린 게임 플랫폼 '로블록스' 팝업 행사장에 태블릿PC가 비치돼있다. 2025.8.1 jujuk@yna.co.kr (끝)
[※ 편집자 주 = 한국국제교류재단(KF)의 2024년 발표에 따르면 세계 한류 팬은 약 2억2천500만명에 육박한다고 합니다. 또한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초월해 지구 반대편과 동시에 소통하는 '디지털 실크로드' 시대도 열리고 있습니다. 바야흐로 '한류 4.0'의 시대입니다. 연합뉴스 동포·다문화부 K컬처팀은 독자 여러분께 새로운 시선으로 한국 문화를 바라보는 데 도움이 되고자 전문가 칼럼 시리즈를 준비했습니다. 시리즈는 매주 게재하며 영문 한류 뉴스 사이트 K 바이브에서도 영문으로 보실 수 있습니다.]
포즈 취하는 매튜 커티스 로블록스 개발자 관계 부문 부사장 (부산=연합뉴스) 김주환 기자 = 매튜 커티스 로블록스 개발자 관계 부문 부사장이 게임쇼 지스타 2024가 열리고 있는 15일 부산 벡스코(BEXCO)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2024.11.15 jujuk@yna.co.kr (끝)
메타버스와 함께 등장했던 웹 3.0은 한때 미래의 해답처럼 불렸다. 탈중앙화, 참여, 보상, 새로운 경제 질서라는 키워드는 기술이 사회의 구조를 바꿀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낳았다. 시간이 흐르면서 분명해진 사실이 있다. 메타버스만으로는 웹 3.0이 약속했던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점이다. 기술은 고도화됐지만 관계는 깊어지지 않았고, 개인은 여전히 플랫폼 안에서 고립된 채 이동할 뿐이었다. 국내외에 등장했다 사라진 여러 메타버스 플랫폼을 기억하는 독자가 있을 것이다. 분명 메타버스는 공간을 확장하는 데에는 성공했다. 로블록스(Roblox)는 메타버스를 가장 직관적으로 구현한 사례로 평가받는다. 이용자는 아바타를 통해 가상 세계에 접속하고, 게임을 만들고, 즐기며, 거래한다. 사용자 제작 콘텐츠를 중심으로 수많은 가상 세계가 생성되고, 가상 재화를 통해 경제가 작동한다. 창작과 노동, 소비가 동시에 이뤄지는 가상 사회라는 점에서 메타버스의 가능성을 현실로 보여줬다. 영화 '레디 플레이어 원'에서 봤던 세계와 유사하다. 하지만, 그 한계 또한 명확하다. 그 안에서 펼쳐진 세계는 병렬적으로 존재할 뿐 깊이 연결되지 않았고, 관계는 가볍고 일회적이었다. 수익과 규칙의 최종 결정권은 여전히 플랫폼에 집중돼 있다. 개인은 창작할 수 있지만, 그 창작이 안정적인 삶의 기반이 되기는 어렵다. 웹 3.0이 말해온 참여와 보상, 공동의 소유는 메타버스 공간 안에서 충분히 실현되지 않았다. 이 지점에서 질문이 등장한다. 왜 메타버스로는 웹 3.0이 완성되지 않는가. 이유는 단순하다. 메타버스에는 '우리'의 개념이 부재하기 때문이다. 메타버스는 여전히 개인 중심, 계정 중심, 소비 중심 구조에 머물러 있다. 많은 사람은 같은 공간에 존재하지만, 함께 살아가지는 않는다. 웹 3.0이 요구하는 것은 더 넓은 공간이 아니라, 더 단단한 관계다. 숫자로 환산되는 참여가 아니라, 의미와 책임이 축적되는 연결이다. 그래서 필요한 것은 '관계 중심 메타버스'라는 새로운 상상이다. 공간이나 토큰, 자산을 늘리는 것이 아니라, 사람과 사람 사이의 맥락·시간·서사를 중심에 놓는 디지털 세계다. 아직 구체적 서비스 이름으로 쓰기 어려운 아이디어지만, 방향 자체는 분명하다. 메타버스가 '들어가는 세계'라면, 관계 중심 메타버스는 '함께 만들어가는 세계'다. 계정이 아니라 사람, 아바타가 아니라 삶의 맥락이 연결의 기준이 된다. 개인은 고립된 노드가 아니라 서로에게 영향을 주고받으며 공명하는 존재가 된다.

서로에게 '아우라'가 되는 관계 자체가 세계의 구조를 이룬다. 쉽게 닫히는 방이 아니라, 시간이 쌓일수록 신뢰와 기억이 축적되는 광장에 가까운 플랫폼이다.

인공지능(AI) 시대는 이 전환을 더욱 절실하게 만든다. AI는 개인을 더 정교하게 분해하고, 취향과 행동을 데이터로 표면화한다. 연결은 많아지지만, 관계는 얕아지고, 공동체는 해체된다. 추천 알고리즘은 비슷한 사람끼리만 이어 붙이고, 서로 다른 경험과 생각이 부딪칠 수 있는 '공동의 자리'는 점점 줄어든다.

이런 시대일수록 웹 3.0이 필요로 하는 것은 기술의 진보가 아니라 관계의 재설계다. 경쟁이 아니라 공명, 소비가 아니라 공동 창작, '나'가 아니라 '우리'의 회복이다. 이 지점에서 한국은 분명한 강점을 가진다. 한국에는 이미 세계가 주목하는 강력한 자산이 있다. 바로 K-컬처다. 음악, 드라마, 영화, 웹툰, 게임, 팬덤에 이르기까지 K-컬처는 콘텐츠를 넘어 의미를 공유하고 함께 환호하는 관계의 문화를 만들어 왔다. 아이돌 팬덤이 보여주는 집단 응원·기부·해시태그 행동, 드라마와 예능을 함께 보며 실시간으로 감정을 나누는 시청 문화, 웹툰·웹소설 기반 2차 창작 생태계까지, 한국의 콘텐츠 소비 방식은 본질적으로 '함께 보기'와 '함께 만들기'에 가깝다. 이는 공간보다 관계를 중시하는 차세대 메타버스와 가장 잘 맞는 조건이다. K-컬처의 팬덤은 개인을 고립시키기보다, 공동의 감정과 참여를 통해 '우리'라는 감각을 확장해 왔다. 콘서트장·팬 미팅·온라인 라이브는 물리적·디지털 공간을 넘나들며 '같은 순간에 같은 무언가를 향해 몰입하는 경험'을 제공한다. 웹 3.0이 꿈꾸는 '참여와 공동 소유'는 사실 이미 여기서 부분적으로 실험되고 있다. 누가 먼저 '밈'을 만들었고, 누가 팬아트를 그렸고, 누가 번역을 올렸는지가 커뮤니티 안에서 중요한 자산이 되는 구조가 필요하다. 이것을 기술적으로 더 정교하게 기록하고, 공정하게 보상하고, 장기적으로 축적하면 관계 중심 메타버스의 토대가 된다. 그래서 필자는, 웹 3.0 이후의 세계를 설계하는 데 있어 한국이 매우 유리한 출발선에 서 있다고 본다. 세계는 이미 한국이 의미를 만들고, 그 의미를 함께 소비하며 확장하는 방식을 경험했다. 이제 남은 것은 그 경험을 기술 위에, 그리고 웹 3.0의 구조 위에 올려놓는 일이다. 관계 중심 메타버스가 지향해야 할 몇 가지 축을 정리해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참여의 단위를 '클릭'이 아니라 관계로 전환하는 것이다. 지금의 플랫폼은 조회수·좋아요·댓글 개수로 참여를 측정한다. 그러나 관계 중심 메타버스에서는 '얼마나 많이 눌렀는가'가 아니라 '얼마나 오래 함께했는가, 어떤 책임을 나눴는가'가 중요해진다. 예를 들어, 특정 프로젝트나 팬덤 커뮤니티 안에서 일정 기간 이상 기여한 사람에게는 보상 토큰을 넘어 의사결정 권한, 큐레이션 권한, 신규 참여자를 맞이하는 멘토 역할이 부여되는 식이다. 둘째, 콘텐츠의 소비가 아니라 공동 창작을 중심에 놓는 것이다. 지금의 메타버스는 거대한 쇼핑몰과 비슷하다. 다양한 경험을 '이용'하러 들어가지만, 구조는 대부분 소비 지향적이다. 관계 중심 메타버스는 반대로 '함께 만들기 쉬운 구조'를 먼저 설계해야 한다. 스토리·캐릭터·세계관을 사용자에게 일정 부분 개방하고, 그 위에 2차 창작·협업·로컬 버전을 쌓아 올릴 수 있도록 한다. K-팝의 응원법, 댄스 챌린지, 팬 메이드 콘텐츠가 보여주듯, 한국식 참여 문화는 이 방향과 자연스럽게 맞닿아 있다. 셋째, 소유권보다 '함께 돌봄'의 개념을 도입하는 것이다. 웹 3.0은 흔히 토큰과 NFT를 통해 '조각 소유'를 가능하게 한다고 말해왔다. 그러나 단순 소유 권한만으로는 공동체가 유지되지 않는다. 관계 중심 메타버스에서는 '이 공간과 프로젝트를 누가 얼마나 잘 돌보고 있는가'가 중요한 기준이 된다. 예를 들어, 어떤 가상 공간의 토큰을 많이 가진 사람이라도 커뮤니티에 해를 끼치면 경고받고, 반대로 토큰 보유량이 적어도 장기간 커뮤니티를 지켜 온 사람에게는 신뢰 지표가 올라가는 식이다. 넷째, AI를 '개인 최적화 장치'가 아니라 '관계 촉진 도구'로 쓰는 것이다. AI가 지금처럼 개인 취향을 미세하게 파고들기만 하면, 많은 사람은 점점 더 좁은 취향의 방에 갇히게 된다. 관계 중심 메타버스에서는 AI가 '함께할 만한 사람', '함께 만들 만한 프로젝트'를 추천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 나와 비슷한 사람만이 아니라, 나와 다르지만, 좋은 긴장을 만들어 줄 수 있는 사람, 내 관심사와 맞닿은 다른 문화권의 사용자와 연결해 주는 역할이다. 이런 방향에서 보면, 웹 3.0은 여전히 진행형이다. 탈중앙화 기술, 블록체인, 토큰 경제는 도구일 뿐이다. 중요한 것은 이 도구를 어떤 관계의 방식으로 엮어낼 것인가다. 메타버스가 증명한 것은 '기술적으로 공간을 확장하는 일'이고, 앞으로 우리가 증명해야 할 것은 그 공간에서 어떻게 '우리'를 회복할 것인가다. 관계 중심 메타버스는 아직 이름도, 구체적인 형태도 완성되지 않았다. 분명한 것은, 다음 세대의 디지털 세계는 더 이상 '나의 세계를 꾸미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점이다. 서로에게 아우라가 되는 관계, 함께 시간을 쌓고 책임을 나누는 연결, 삶의 맥락이 이어지는 디지털 공동체. 이것이야말로 웹 3.0이 처음 약속했던 '새로운 인터넷'의 실제 모습에 가까울 것이다. 또한 그 실험을 시작하기에, K-컬처와 팬덤, 집단적 감정의 문화를 이미 체화한 한국만큼 적합한 무대도 드물다. 메타버스가 '나'의 세계를 열어 주었다면, 이제 필요한 것은 '우리'의 세계를 설계하는 일이다. 관계를 중심에 둔 새로운 디지털 지평, 그것이 필자가 꿈꾸는 웹 3.0 이후의 방향이다.

전태수 웹 3.0·블록체인 전문가

▲ 사단법인 환경과미래연구소 이사장. ▲ 한국인터넷미디어윤리위원회 이사장. ▲ 세계스타트업포럼 대표.

<정리 : 이세영 기자>

seva@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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