英 거리 나선 '핑크 레이디' 물결…반이민 시위 새얼굴

(서울=연합뉴스) 이도연 기자 = 영국에서 반이민 정서가 번지는 와중에 분홍색 옷과 모자 차림에 깃발도 분홍색으로 내건 여성들이 거리 시위의 전면에 섰다.
이들은 '핑크 레이디스'(Pink Ladies)라는 민간 단체로, 화사한 옷차림을 하고 영국 전역에서 불법 이민자들이 여성과 소녀들에게 위험이 된다고 외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12일(현지시간) 미 CNN방송은 이처럼 영국 내 반이민 시위의 새 얼굴이 된 핑크 레이디스를 소개하면서 지난달 첼름스퍼드 시위 분위기를 전했다.
당시 시위에 나선 핑크 레이디스는 영국이 이민자들에게 "침략당하고 있다"면서, "군대를 동원해 이민자들을 막아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들은 비옷부터 가방, 모자, 깃발까지 분홍색으로 맞췄으며, 조명도 분홍색을 켰다. 데리고 있는 반려견에게도 분홍색 옷을 입혔다.
이 단체는 명시적으로 특정 정당을 지지하지는 않지만, 거의 모든 회원이 우익 포퓰리즘 성향의 영국 개혁당에 투표할 예정이라고 한다. 개혁당은 반이민 정책을 내걸고 집권 시 불법 이민자를 대거 추방하겠다고 선언한 바 있다.
핑크 레이디스의 시작은 올여름 영국 에식스주 에핑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영국 내 망명 신청자들이 곳곳의 호텔에 분산 수용되면서 각지에서 주민들의 반발이 속출했다.
그러던 중 에핑에 있는 벨 호텔에서 한 에티오피아 출신 망명 신청자가 14세 소녀 등을 성추행한 혐의로 기소되자 이 지역 주민들의 분노가 들끓었다.
지난 7월 17일 온라인으로 반이민 시위가 조직됐고, 일부 남성 시위대가 경찰과 충돌하는 상황으로 번졌다.
이를 지켜보던 에핑 여성 주민들은 시위대가 '인종 차별주의 폭도'가 아니라 '두려움에 떠는 지역사회'임을 보여줘야 한다고 생각하고 새 전술을 제안했다.
남성들은 집에 있고, 분홍색 옷을 입은 여성들이 시위의 선두와 중심이 돼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렇게 여성들로 이뤄진 핑크 레이디스는 올여름부터 여성 안전에 대한 우려를 표명하며 영국 전역의 망명자 수용 호텔 앞에서 시위를 벌여왔다.

핑크 레이디스는 홈페이지에서 자신들을 "대규모 이민, 그중에서도 불법 이민 문제로 인한 우리 나라의 미래를 걱정하는 할머니, 어머니, 자매, 딸들"이라며 "전국 각지에서 자발적으로 모인 수천 명의 여성들로 구성된 풀뿌리 운동"이라고 소개하고 있다.
이들은 주로 중년의 백인 여성으로 구성됐다고 한다.
일각에서는 핑크 레이디스가 인종차별이나 백인 우월주의 아니냐고 지적한다.
영국의 여성 단체인 '여성 폭력 종식 연합'(EVAW)의 앤드리아 사이먼 국장은 "극우 세력은 오랜 기간 여성과 소녀에 대한 폭력 종식이라는 명분으로 인종차별적이고 백인 우월주의적인 의제를 홍보해왔다"라고 주장했다.
dyle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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