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팡 사태'로 집단소송제 논의 재점화하나…법조계 "도입 필요"

(서울=연합뉴스) 이미령 기자 = 쿠팡의 대규모 개인정보 유출 사태를 계기로 개인정보 침해 분야에서 집단소송제 도입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이재명 대통령도 "집단소송제 도입이 꼭 필요하다"고 언급해 증권 분야 외에도 집단소송 제도가 도입돼 시행될지, 도입 시 어떤 변화가 생길지 주목된다.
14일 법조계에 따르면 집단소송제는 피해자 일부가 소송을 내서 이기면 판결 효력이 모든 피해자에게 적용돼 나머지 피해자가 전부 배상받을 수 있는 제도다.
미국과 영국을 비롯한 여러 나라에 집단소송제가 있지만, 우리나라에는 2005년 증권 분야에만 집단소송제가 도입돼 실시되고 있다.
최근 쿠팡의 개인정보 유출 사태 이후 이뤄지고 있는 대규모 소송은 공동소송으로, 직접 소송 원고로 이름을 올려야 법원 판결의 효력을 인정받을 수 있다.
결국 소송에 참여한 사람만 피해 구제를 받을 수 있는 만큼 피해 규모가 소액인 사건에서는 비용 대비 실익이 적다는 점에서 한계로 지적됐다.
올해 SK텔레콤 유심 정보 유출 사건을 비롯해 다수 소비자가 같은 피해를 본 사건이 발생할 때마다 집단소송이 대안으로 제시돼 온 이유다.
이상희 법무법인 지향 변호사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에서 집단소송 제도가 도입되지 않은 국가는 우리나라와 튀르키예뿐"이라며 "피해자가 다수인데 (피해) 액수가 적을 때는 소비자들이 실제 피해구제 절차까지 가는 경우가 많지 않다"고 지적했다.
이 변호사는 특히 "기업들로서는 관리 소홀로 남기는 이윤 대비 (적은) 보상 비용을 고려하면 굳이 비용을 들여가며 관리를 할 유인이 없다"며 소비자 피해 구제뿐 아니라 기업의 개인정보 침해 사고 재발 방지 측면에서도 도입이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국내 증권 분야 집단소송을 이끌어온 김주영 법무법인 한누리 대표변호사는 "쿠팡 사태로 여러 로펌이 원고를 모아 소송을 진행 중인데, 재판부마다 결론이 들쑥날쑥할 수 있고 (같은 피해를 보았더라도) 참여한 사람과 하지 않은 사람 간 차이가 생긴다"고 언급했다.
그러면서 "집단소송제가 도입되면 하나의 소송으로 병합해 배상을 현실적으로 빠짐없이 받을 수 있고 사법 자원의 낭비도 막을 수 있다"며 집단적 피해를 효율적으로 구제할 수 있게 하는 제도라고 설명했다.
우리나라에서도 여러 차례 집단소송제 입법 논의가 이뤄졌으나 번번이 재계 반발에 부딪혀 입법 성과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법무부도 지난 2020년 증권 분야에 한정된 집단소송제를 전 분야로 확대 도입하는 내용의 집단소송법 제정안을 입법 예고했으나 재계의 거센 반대 속에 유야무야됐다.
당시 대한상공회의소와 한국경영자총협회, 전국경제인연합회는 나란히 "소송 남발로 기업과 국가 경제에 타격을 줄 것이다", "소송비용만 키우고 미국에서도 효과가 없었다"며 반대 입장을 피력했다.
22대 국회에서도 소비자가 피해를 당하는 전 분야 개인정보 침해 사건에서 집단소송을 도입하자는 내용의 '집단소송법안'(백혜련 의원 대표발의), '소비자집단소송법안'(박주민 의원), '개인정보관련 집단소송법안'(전용기 의원) 등이 발의돼 계류 중이다.
집단소송제를 도입하려면 정교한 제도 설계와 충분한 사회적 논의가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있다.
국회 입법조사처는 지난달 보고서에서 "제도의 특성상 소송요건이 엄격하고 절차가 장기화할 수 있다는 한계를 충분히 인식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집단소송을 하려면 소송의 효력이 미칠 총원에 해당하는 구성원이 누구인지 확정할 수 있어야 하고, 그 구성원들이 재판의 기판력(확정판결에 부여되는 구속력)으로부터 배제될 기회를 가져야 한다는 점에서다.
실제 증권 관련 집단소송의 경우 2009년 첫 소송이 제기된 이후 올해 7월까지 총 12건이 접수됐고, 본안 판결이 나온 사건은 2건, 재판상 화해로 종결된 사건은 4건에 그쳤다.
보고서는 특히 집단소송 구성원에게 '제외신고'(opt-out)를 하지 않아 판결의 효력이 미치면 동일한 사실관계에 대해 별도의 소를 제기할 수 없다는 점을 명확히 인지할 수 있도록 충분한 고지 절차가 마련돼야 한다고 짚었다.
집단소송을 통해 피해자에게 피해액이 전부 배상이 될 경우 과징금을 부과할 법적 근거가 약하다는 점에서 집단소송 도입 시 과징금을 부과하지 않도록 기존 제재 수단 간의 조정이 이뤄져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한편 증권 분야의 집단소송이 저조한 이유가 승소에 대한 불확실성이란 점에서 집단소송제 도입 시 디스커버리 제도(증거개시 제도·민사소송 개시 전 당사자가 요청할 경우 법원이 상대측에 문서제출명령 등을 내리는 절차)가 도입돼야 실효성이 담보된다는 주장도 있다.
김주영 변호사는 "대부분 증거가 피고 기업 측에 있는데 우리나라는 민사소송법상 상대가 가진 증거를 얻기 위한 수단이 제한돼 있다 보니 입증 실패로 인한 패소 가능성 때문에 증권 분야에서 제소가 저조한 측면이 있다"며 "민사소송 전반에서 디스커버리 제도가 도입돼야 하고 그것이 힘들다면 집단소송의 경우라도 도입될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그러면서 "증권 분야는 피해 규모가 천차만별이지만 이번 쿠팡 사태 같은 경우는 소비자 피해가 균일하다"며 "전체 피해자의 피해액을 별도로 산정해야 한다는 복잡성이 없기 때문에 개인정보 유출에 따른 집단소송의 경우 효용성이 더 크다고 볼 수도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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