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IT/과학
[K-VIBE] 임기범의 AI 혁신 스토리…AI가 박사학위 받는 날이 온다면
연합뉴스입력 
    [※ 편집자 주 = 한국국제교류재단(KF)의 지난해 발표에 따르면 세계 한류 팬은 약 2억2천500만명에 육박한다고 합니다. 또한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초월해 지구 반대편과 동시에 소통하는 '디지털 실크로드' 시대도 열리고 있습니다. 바야흐로 '한류 4.0'의 시대입니다. 연합뉴스 동포·다문화부 K컬처팀은 독자 여러분께 새로운 시선으로 한국 문화를 바라보는 데 도움이 되고자 전문가 칼럼 시리즈를 준비했습니다. 시리즈는 매주 게재하며 K컬처팀 영문 한류 뉴스 사이트 K바이브에서 영문으로도 보실 수 있습니다.]         2028년의 연구실 풍경은 지금과 다를 것이다.    "박사과정 학생이 3개월 걸릴 실험 설계를 AI가 하룻밤 사이 완성했습니다."    이런 멘트가 실제 논문 발표 서두에 등장할 날이 머지않았다.      2024년 10월, 오픈 AI의 샘 알트먼 최고 경영자는 차세대 인공지능(AI) 개발 로드맵을 발표하며 "2026년까지 인턴 수준의 AI 연구 조수(AI research assistant)를, 2028년까지 완전 자율형 AI 연구자(autonomous research scientist)를 구현하겠다"고 밝혔다.     오픈 AI 개발 수석 야쿱 파초키는 "딥러닝이 향후 10년 내 인간을 뛰어넘는 초지능(super intelligence)에 도달할 가능성이 크다"고 덧붙였다. 이후 시간이 1년 가까이 흘렀는데 예측으로 끝나지 않았다. 오픈 AI는 향후 7년간 1조4천억 달러(약 1천900조 원) 규모의 글로벌 반도체·데이터센터 인프라 구축을 추진 중이다. 이를 위해 마이크로소프트 및 대만 TSMC, 엔비디아와의 장기 계약을 체결했다고 밝혔다.     AI 연구실의 본질적 변화는 이미 시작된 셈이다.    ◇ 'AI 연구원'의 의미      파초키가 정의한 'AI 연구원'은 데이터 분석 도구를 넘어선 개념이다. 스스로 가설을 세우고, 실험을 설계하며, 결과를 분석하고 새로운 통찰을 도출할 수 있는 완전 자율형 인공지능을 뜻한다.     이미 AI는 국제수학올림피아드(IMO) 문제 풀이에서 상위 10% 인간 참가자와 유사한 성취도를 보였고(Frontier Math Benchmarks, 2024), 분자 구조 예측, 단백질 접힘 시뮬레이션(DeepMind AlphaFold3, 2024) 등에서는 인간 연구자의 접근 속도를 수십 배 앞지르고 있다.    오픈 AI가 개발 중인 '테스트 타임 컴퓨트'(test-time compute) 확장 기술은 AI에 더 많은 계산 시간과 자원을 주어 깊은 사고 과정을 실행하게 하는 방식이다. 예컨대 현재 GPT-4 급 모델이 5분 동안 수행하는 추론을 동일 그래픽처리장치(GPU) 클러스터에서 50시간 반복하게 만드는 것이다.     이 접근은 AI가 인간 연구자처럼 '생각의 깊이'를 모사하도록 한다. 의료, 재료공학, 물리학 등에서 신약 발견이나 신소재 탐색 기간이 기존 10년에서 수개월 단위로 단축될 가능성이 있다. 미국 MIT·캘리포니아 공과대학·서울대 공동연구팀은 2024년 AI 기반 신소재 설계 시스템으로 기존 합성보다 800배 빠른 고분자 조합 예측을 발표하기도 했다.(Nature Materials, 2024)    ◇ 인간 연구자의 역할 재편      AI가 '동료 연구자'로 등장한다면 인간의 역할은 어떻게 바뀔까. 일자리를 완전히 대체하는 대신, 연구자의 존재 목적이 근본적으로 재정의될 것이다.    첫째, 연구자는 문제 정의자로 거듭나야 한다. AI는 문제를 '푸는' 데 탁월하지만 '무엇을 풀 것인가'를 스스로 결정하지는 못한다. 사회적 가치, 윤리적 맥락, 연구의 철학적 방향 설정은 여전히 인간의 고유 영역이다.    둘째, 검증자이자 큐레이터로서 해야 할 역할이 강화된다. AI는 하루 100편의 논문을 쓰더라도 그 중 진정으로 의미 있는 것은 인간의 통찰로만 판별할 수 있다. 스탠퍼드대 AI 연구소는 "AI가 생성한 데이터 기반 논문 중 약 30%는 사실 오류 또는 인용 불일치를 포함한다"고 보고했다.(Science, 2023)    셋째, 인간은 통합자로서 분야 간 경계를 넘나들어야 한다. 화학 AI, 생물학 AI, 물리학 AI가 제각기 결과를 내도 이를 연결해 새로운 이론적 틀을 제시할 수 있는 존재는 인간뿐이다.    넷째, 윤리 감시자의 기능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특히 유전자 편집, 군사 응용, 인공지능 의사결정 등 고위험 분야에서는 인간의 감시와 투명한 책임 체계 없이는 사회적 신뢰가 무너진다. 유럽연합은 2024년 'AI 법'(AI Act)을 통해 모든 자율 연구형 AI에 대해서 인간 윤리 감독자를 지정하도록 의무화했다.     한국 역시 2025년 시행 예정인 'AI 기본법'에서 유사한 규제를 검토 중이다.    필자는 지금 이 시기에 우리나라 연구자와 정책 입안자가 고민해야 할 요소를 제언하고자 한다.     우선, 대학과 대학원은 실험 기술보다 '문제 정의력'과 'AI 협업력'을 중심으로 커리큘럼을 재편해야 한다. 이미 MIT, KAIST는 'AI Collaboration Studio' 과정을 개설해 AI에 실험 지시를 내리고 결과를 검증하는 실습을 진행 중이다. AI와 인간 간 '질문 설계'(Instruction Design)와 '모델 해석 도구 사용법' 교육은 필수 역량으로 떠올랐다.    또한 연구 윤리와 법적 책임을 교육해야 한다. AI 연구원이 논문을 작성하거나 실험을 수행했을 때 지식재산권은 누구에게 귀속되는가? 결과의 책임은 누구에게 있는가?     이에 대한 명확한 가이드라인이 아직 불완전하다. 미국 ACM(Association for Computing Machinery)은 2024년 8월 'AI 연구 신뢰성 원칙'을 발표하며, 모든 연구 산출물에 인간 책임자 명시를 권고했다. 국내 연구기관도 이 기준을 참고할 필요가 있다.    여기에 연구자들에게 AI 리터러시를 넘어 AI 협업 역량을 키우도록 해야 한다. AI를 그저 '이해'하는 수준을 넘어 '협업'하는 수준으로 끌어올려야 한다. 즉, 모델의 한계를 파악하고 명확한 지시를 내릴 수 있는 언어 설계 능력이 중요하다.     예를 들어 연구자는 "이 신소재의 열전도 특성을 예측해줘"가 아니라 "분자구조 A~C를 비교하고, 온도 구간별 예측값을 표준 편차 5% 이내로 제한해 결과를 보고하라"고 명시해야 한다.    그런 다음 학제 간 사고의 일상화를 추구해야 한다. AI는 화학, 생물학, 사회학, 예술 등 여러 도메인의 지식을 동시에 다룰 수 있다. 인간 역시 이를 따라잡기 위해 폭넓은 학제 교육이 요구된다. KAIST, ETH Zurich 등은 2025년부터 '통합연구자 양성 프로그램'을 통해 생명과학 박사과정 학생에게 컴퓨팅·데이터 과학 훈련을 필수화한다.    마지막으로 정책과 인프라의 구조적 전환을 해야 한다. 정부는 AI 연구를 위한 계산 자원을 공공 인프라 수준으로 제공해야 한다. 다행히 2024년 과기정통부는 국가 슈퍼컴퓨팅 센터에 AI 전용 GPU 클러스터를 구축해 오고 있다. 향후 2030년까지 10엑사플롭스급 AI 슈퍼컴퓨터 운용을 목표로 하고 있다.     연구비 평가 방식도 AI 활용 역량과 사회적 파급력을 반영하는 개방형 모델로 바뀌어야 한다.    ◇ 두려움이 아니라 진화의 계기      AI 연구원 시대는 위협이 아니라 확장의 기회다. 새로운 도구는 언제나 인간의 능력을 증폭시켜 왔다. 현미경이 사람의 눈을 대체하진 않았고, 오히려 생물학이라는 새로운 학문을 만들었다. 컴퓨터 역시 계산 능력을 뛰어넘어 새로운 수학의 틀을 열었다.    AI 또한 인간을 대체하는 도구가 아니라 창의성·직관력·윤리 판단을 강화하는 '지능 증폭기'(cognitive amplifier)가 될 것이다. 다만 그 혜택은 준비한 자의 몫이다.    2028년, AI와 인간이 나란히 박사학위를 받는 시대가 올지도 모른다. 그때 인간 연구자에게 필요한 것은 두려움이 아니다. 기술을 도구로 삼아, 지식의 한계를 넘어설 용기와 준비다. 결국 AI를 가르치는 존재가 될 수 있는 자만이, 그 시대의 연구자로 살아남는다.    임기범 인공지능 전문가
    ▲ 서울과학종합대학원 대학교(aSSIST) 객원교수. ▲ 현 AI경영학회 이사. ▲ ㈜나루데이타 CTO 겸 연구소장. ▲ ㈜컴팩 CIO. ▲ 신한 DS 디지털 전략연구소장 역임. 
    <정리 : 이세영 기자> 
    seva@yna.co.kr
(끝)<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