흉흉한 카리브해…美 선박 공격에 섬마을 해변 떠밀려온 시신들

(서울=연합뉴스) 임화섭 기자 = 미군이 지난달 2일(현지시간) 카리브해를 지나던 선박을 공격한 후, 베네수엘라 인근의 섬나라 트리니다드토바고의 해안에 의문의 훼손 시신들이 밀려왔다.
사망 경위가 알려지지 않은 이 시신들은 아직 부검이나 신원 파악이 되지 않고 있다.
미국 일간 뉴욕타임스(NYT)는 트리니다드 섬의 북동쪽 끝에 있는 쿠마나 마을에 취재진이 찾아간 르포 기사를 23일(현지시간) 게재했다.
보도에 따르면 미군의 카리브해 선박 공격이 처음 이뤄진 직후에, 시신 한 구가 파도에 떠밀려 이 마을 해안에 나타났다.
마을 사람들은 폭발로 훼손된 것처럼 보이는 이 시신의 얼굴에 화상 자국이 있었고 사지 중 일부 혹은 전부가 없었다고 설명했다.
며칠 뒤에는 근처 해변에 시신 한 구가 또 밀려와서 육식성 새들이 몰려들었다.
이 시신 역시 얼굴을 알아볼 수가 없었고, 오른쪽 다리가 폭발로 떨어져 나간 것처럼 보였다.
이들 시신 2구는 외견상 라틴아메리카 출신일 공산이 커 보이며, 아프리카계 흑인이 많은 트리니다드에서는 보기 드문 외모였다고 쿠마나 마을 주민들은 NYT 기자들에게 설명했다.
베네수엘라 해안이 보일 정도로 가까운 인구 150명의 섬나라 트리니다드토바고에서는 이 시신들의 신원, 미군 공격과의 연관성 여부, 또 앞으로 이런 시신들이 계속 해변에 밀려올 것인가 등 의문들이 계속 제기되고 있다.

쿠마나에서 일하는 수도·하수 업체 직원 링컨 베이커(63)는 "내 생각엔 이 남성 시신들이 전쟁 희생자라는 점에는 의문의 여지가 없다"고 말했다.
트리니다드토바고에서 정치분석가로 활동하는 비시누 라구나스는 이 나라 정부가 미국의 공격에 대한 입장 때문에 이 문제를 회피하려고 있다고 관측했다.
카믈라 페르사드-비세사르 트리니다드토바고 총리는 미국이 이 해역에서 마약 밀수를 하고 있는 것으로 의심되는 선박들을 공격하는 것을 지지하고 있다.
그는 미국의 카리브해 군사행동이 개시됐을 때 "매년 수백 명의 시민들이 마약으로 인한 조직폭력으로 살해당하는 것보다는 마약과 총기 밀매업자들이 갈기갈기 찢겨나가는 모습을 보는 것이 훨씬 낫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역내 기구인 카리브공동체(카리콤·CARICOM)의 다른 모든 회원국들은 미국의 군사행동에 반대하면서 카리브해 해역이 "평화구역"으로 유지돼야 하며 외국의 군사적 개입 없이 분쟁이 해소돼야 한다는 입장을 이달 중순에 재확인했다.
즉각적인 군사 위협이 아닌 민간인들을 미국이 이런 방식으로 공격하는 것은 국제법 위반이라는 지적도 전문가들 사이에서 나온다.
미국이 카리브해 선박 공격을 시작으로 태평양 쪽으로 작전 해역을 넓히는 등 라틴아메리카 권역에서 펴고 있는 군사작전으로 숨진 사망자 수는 공식 집계에 따르면 지금까지 37명이다.
해변으로 파도에 밀려온 시신 2구와 별도로, 신원이 밝혀진 트리니다드토바고 국민 2명이 미국의 카리브해 선박 공격으로 숨진 것으로 알려졌다.
유족들은 이들이 마약 밀수와 무관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미국은 병력 1만여명과 군함과 항공기를 동원한 이번 작전이 마약 밀수를 차단하려는 것이라고 표면상 주장하고 있으나, 실제로는 니콜라스 마두로 베네수엘라 대통령을 축출하는 것이 주요 목적이라는 점은 트럼프 행정부 관계자들도 비공개로 인정하고 있다.
NYT는 또다른 기사에서 로라 루머와 스티븐 배넌 등 극우 성향 트럼프 지지 논객들 여러 명이 베네수엘라를 겨냥한 카리브해 해역 군사작전에 대해 우려를 표명하고 있다고 전했다.
트럼프 대통령에게 영향력이 큰 외부 조언자인 극우 활동가 로라 루머는 인터뷰에서 "전 세계의 전쟁과 분쟁을 종식시키는 데에 인센티브가 있어야 한다"며 "그러나 베네수엘라와의 분쟁은 갈수록 더 심각해지기만 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올해 노벨평화상 수상자로 선정된 베네수엘라 야당 지도자 마리아 코리나 마차도에 대해 "폭력적인 정권 교체를 적극적으로 부추기고 추진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트럼프 1기 때 백악관 수석전략가를 지낸 스티븐 배넌은 최근 공개한 팟캐스트 에피소드에서 "네오콘 3.0을 기르는 곳일 따름인가"라고 말했으며, 게스트로 출연한 보수단체 '디아메리칸컨서버티브'의 대표 커트 밀스는 미국이 유혈사태를 피해야 한다고 말했다.
밀스는 나중에 온라인으로 "피할 수 있는 재앙의 위험이 계속 이어지고 있다"고 말했으며, 다른 게시물에서는 "아무런 계획도 없이 사람들을 마구 살해하는" 일을 경계했다.
밀스와 배넌 등은 오래 전부터 마크 루비오 국무부 장관 겸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 네오콘이며 미국의 국익에 도움이 되지 않는 해외 개입을 고집하고 있다고 비판해왔다.
solatido@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