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베노믹스 지지' 日다카이치, 외교선 '강한 일본 정책' 가능성

(도쿄=연합뉴스) 경수현 특파원 = 지난 6일 일본 증시의 대표 주가지수인 닛케이225 평균주가(이하 닛케이지수)는 하루에 무려 4.75%나 올랐다.
당시 닛케이지수는 일본 증시 사상 최고치에 장을 마쳤고 지수의 하루 상승 폭은 역대 4번째였다.

'아베노믹스'를 신봉하는 다카이치 사나에 총리가 지난 4일 자민당 총재 선거에서 당선되면서 총리 취임을 눈앞에 두자 확장 재정과 완화적인 금융정책이 펼쳐질 것이라는 예상이 시장에 퍼지면서다.
이후 공명당의 연정 이탈, 일본유신회와 새 연정 구성 등 다카이치 총리의 총리 취임 가능성과 맞물린 정국 변화에 따라 일본 금융시장은 크게 출렁거리기도 했지만 닛케이지수는 지난 20일 처음으로 49,000선을 돌파하며 뜨거운 반응을 보였다.
이처럼 경제 분야에서 '돈 풀기'에 방점을 둘 것으로 보이는 다카이치 신임 총리는 외교·안보 분야에서는 방위력 강화 등 '강한 일본 정책'을 본격적으로 추진할 것으로 보인다.

◇ 인플레이션 시대에 아베노믹스 강행할까
다카이치 총리는 '아베노믹스' 신봉자로 그동안 경기 부양을 위해 재정을 확대하고 완화적인 금융정책을 써야 한다는 목소리를 내왔다.
자민당 총재 선거 때에는 후보 5명 중 유일하게 적자 국채 발행도 용인하겠다는 태도를 보였다.
총재 선거에서 당선된 지난 4일 기자회견에서는 "재정정책이든 금융정책이든 책임을 지는 것은 정부"라고 말했다.
1년 전 총재 선거 때 "금리를 지금 올리는 것은 바보라고 생각한다"고 말한 데 비해 수위는 높지 않지만, 금리를 결정하는 일본은행을 견제할 가능성을 내비친 대목으로 해석된다.
그는 총재 선거 때 지방자치단체 대상 중점 지원 교부금 확충, 휘발유 잠정세율 폐지, 세액 공제 신설 등 적잖은 재원 소요가 예상되는 정책을 공약으로 제시했다.
일본의 첫 여성 총리인 다카이치 총리가 이시바 시게루 총리의 후임자로 부상하고서 현지에서는 2명의 전현직 해외 총리가 비교 대상으로 거론되기도 했다.
한 명은 2022년 상황에 맞지 않는 '대처리즘'을 고집하며 감세안을 추진하다 취임 45일 만에 영국 국채 가격 폭락 후 자진 사임한 리즈 트러스 전 영국 총리다.
또 한 명은 극우 성향의 포퓰리즘 정당 소속으로 비슷한 시기에 취임한 조르자 멜로니 이탈리아 총리다.
멜로니 총리는 선거 때 대대적인 재정투입을 약속했지만 재정 지출이나 감세 공약을 상당수 철회하고 현재까지 약 3년간 집권 유지에 성공했다.
다카이치 총리가 어느 길을 갈지는 알 수 없는 상황이다.
다만 그의 선거에 결정적인 기여를 해 '킹 메이커'로 불리는 아소 다로 부총재나 스즈키 슌이치 간사장은 모두 재무상 경험이 있어 재정 건정성에 대한 이해를갖춘 만큼 어느 정도 정책 견제가 이뤄질 수 있다는 시각도 없지 않다.
게다가 아베 신조 전 총리의 아베노믹스는 물가가 마이너스를 기록하던 디플레이션(경기 침체 속 물가 하락) 시대 극복에 초점을 맞춘 정책이었지만 현재는 고물가가 경제의 최대 숙제인 인플레이션(물가 상승) 시대라는 점도 과거와 달라진 점으로 지적된다.

◇ 외교·안보 정책은 강경 모드?
다카이치 총리는 총리 취임 전인 지난 17∼19일 야스쿠니신사 가을 예대제 기간에 신사를 참배하지 않았다. 공물 대금만 사비로 봉납했다.
그전까지 그는 봄과 가을 예대제, 일본 패전일인 8월 15일에 정기적으로 야스쿠니신사를 참배했다.
그가 2022년 2월 한 심포지엄에서 "중간에 참배를 그만두거나 어중간한 일을 하니까 상대방이 기어오르는 측면이 있다"고 말한 점에 비춰보면 상당한 노선 변경이다.
1990년대 중반 그는 식민지 지배를 '침략'으로 언급하며 주변국에 사과한 무라야마 도미이치 당시 총리를 비판하는 등 주변국에 대한 반성을 '자학사관'이라고 공격하기도 했다.
이와 관련해 현지 언론은 총리 취임을 목전에 두고 외교적 파장을 고려해 이번에는 참배하지 않은 것으로 관측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방일,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등 정상 외교 무대 데뷔를 앞둔 가운데 그간 본인 주장은 일단 접고 외교 갈등을 피해야 한다는 현실론을 받아들였다는 이야기다.
물론 그가 계속 합리적이고 온건한 판단을 할 것이라는 보장은 없다는 분석도 나온다. 지지기반인 당내 보수층의 여론도 고려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는 총재 선거 때 "눈치를 볼 필요가 없다"며 시마네현의 '다케시마'(竹島·일본이 주장하는 독도 명칭)의 날 행사에 차관급인 정무관 대신 장관인 각료를 참석시켜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또 '강한 일본'을 주장해온 그는 총재 선거 때 헌법에 자위대 명기, 스파이방지법 제정, 외국인 불법 체류자 대책 등 우익 성향의 공약을 대거 내세웠다.
게다가 그동안 집권 자민당의 우경화 흐름에 브레이크를 걸곤 하던 중도 보수 성향의 공명당이 연정에서 빠져나가고 우익 정당인 일본유신회가 새로운 연립 파트너가 됐다는 점은 우려할 만한 상황 변화로 꼽힌다.
일본유신회는 연정 구성 논의 과정에서 헌법 제9조 개정에 관한 양당 협의회 설치, 3대 안보문서 조기 개정, 방위장비 수출 제한 규정 대폭 완화, 외국인에 관한 위법 행위 대응 등이 필요하다고 자민당 측에 제안했다.
일본 헌법 제9조는 평화 헌법 핵심 내용으로 전쟁과 무력행사의 영구 포기, 육해공군 전력 보유 및 국가 교전권 부인 내용을 담고 있다.
일본 정부가 2022년 책정한 3대 안보 문서에는 방위력 강화 방침이 담겼다.
다카이치 총리도 취임 뒤 방위 장비 수출 규제 완화 등을 위해 3대 안보 문서의 개정 검토를 지시하는 방안을 조율 중이라고 교도통신이 보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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