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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VIBE] 최만순의 약이 되는 K-푸드…가을 전어, 향과 지혜를 담다

연합뉴스입력
가을 전어[연합뉴스 자료사진]
[※ 편집자 주 = 한국국제교류재단(KF)의 지난해 발표에 따르면 세계 한류 팬은 약 2억2천500만명에 육박한다고 합니다. 또한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초월해 지구 반대편과 동시에 소통하는 '디지털 실크로드' 시대도 열리고 있습니다. 바야흐로 '한류 4.0'의 시대입니다. 연합뉴스 동포·다문화부 K컬처팀은 독자 여러분께 새로운 시선으로 한국 문화를 바라보는 데 도움이 되고자 전문가 칼럼 시리즈를 준비했습니다. 시리즈는 매주 게재하며 K컬처팀 영문 한류 뉴스 사이트 K바이브에서도 영문으로 보실 수 있습니다.]
전어구이[연합뉴스 자료사진]

가을이 차오르면 바다에서 풍겨오는 냄새 중 단연 마음을 자극하는 것은 '전어'(錢魚)다. 바닷바람에 섞여 멀리서부터 전해오는 구수한 향기는 계절의 분위기를 넘어서, 오랜 세월 우리 밥상과 민족의 정서에 깊이 심어진 삶의 향취다.

"가을 전어와 생막걸리를 즐기세요"[연합뉴스 자료사진]
특히 가을철 숯불에 올려놓은 전어가 지글거리는 소리와 함께 퍼지는 고소한 냄새는 집안의 울타리를 넘어 골목, 마을, 그리고 세대의 추억까지 불러낸다. '집 나간 며느리도 돌아온다'는 속담은 그 강렬한 향과 공동체적 울림을 상징적으로 드러낸다. 전어는 동아시아 연안에서 서식하는 토속 생선으로, 조선 후기 문헌인 서유구의 '난호어묵지'와 '임원경제지'에도 가을철 별미로 기록돼 있다. "맛이 좋아 돈을 아끼지 않고 사먹는다"며 '전어'(錢魚)로 불렸다는 이름의 유래처럼, 전어는 사회적, 경제적 의미를 지녔던 식재료였다. 조선 후기 서울 장터에서도 신분을 따지지 않고 모두가 전어를 찾았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특히 경상도와 전라도 해안에서 가을 전어 잡이는 한 해 농사만큼이나 큰 잔치였다.

바닷가 마을에 풍어가 들면 숯불에 구운 전어와 막걸리로 소박한 축제가 이어졌고, 전어를 함께 나누는 자리에서 공동체의 결속과 환대가 자연스럽게 싹텄다.

◇ 전어 제철과 조리, 향의 힘 전어의 제철은 8월 중순부터 10월까지로, 이때 잡힌 전어는 살이 오르고 기름기가 풍부해 뼈까지 부드럽다. 7월까지는 기름기가 적고, 11월 이후에는 뼈가 단단해지니 가장 맛있는 시기는 역시 '가을 전어'다. 제철이 오면 해안가 포구와 시장은 전어회, 전어구이를 즐기려는 사람들로 북적인다. 숯불에 전어를 구워 막걸리와 곁들이면, 가을 풍류의 대표 장면이 완성된다. 전어는 맛으로만 평가되는 생선이 아니다. 전어는 압도적인 향으로 절반의 승부를 마친다는 '향기의 내공'을 지닌다. 속담이 농담이 아닌 이유다. 숯불 위에서 퍼져 나오는 전어의 향기는 자연스럽게 이웃을 불러 모으고, 가족을 한자리에 모으는 힘이 있다. 한의학 기록에서 전어는 '시어'로도 불리며, 평성(平性)에 단맛을 지닌다. 비경과 폐경으로 들어가 위장 기능 개선, 소화 불량 예방, 기력 회복, 만성 기침(구해), 부종(수종), 사지 무력에 효과가 좋은 제철 보양식으로 꼽힌다. 허약, 음허 체질, 피로와 면역 저하에 추천되며, 위장과 장을 보호해 소화력 증진과 이뇨 효과도 인정받아왔다. 현대 영양학 분석에서도 전어는 매우 뛰어난 식재료다. 가을 전어는 지방 함량이 높아 100g당 6~10g의 지방, 20~25% 가까운 고단백 성분을 지닌다. 오메가-3 지방산(EPA 882mg, DHA 626mg/100g 기준)이 풍부해 혈중 콜레스테롤 저하, 동맥경화 예방, 두뇌 인지력·치매 예방, 간 기능 강화, 신체 활력 증진 등에 효과적이다. 칼슘과 인, 비타민 B·D·미네랄이 많아 뼈째 먹을 경우 성장기 어린이, 노인에게 골다공증 예방과 뼈 건강에 유익하며, 피부 탄력·노화 방지·피로 회복에도 도움이 된다. 다만 퓨린 함량이 높아 통풍 환자는 과다 섭취를 삼가는 것이 좋고, 지방 함량이 높으므로 비만, 소화 불량이 걱정되는 경우 채소와 함께 먹거나 양을 조절하는 것이 현명하다. ◇ 손자병법으로 본 전어 요리법 손자병법의 모공(謀攻)편에는 '싸우지 않고 이기는 것이 최상'이라는 말이 있다. 물리적 힘보다 상대의 마음을 얻는 승리가 더 지혜로운 것이다. 가을 전어는 이런 병법적 지혜와 닮았다. 자연 그대로의 맛과 향, 억지로 꾸미지 않은 소박함만으로도 이미 마음을 사로잡기 때문이다. 전어구이는 향과 맛으로 '싸우지 않고 이기는' 병법에 적용해 볼 수 있다. 반쯤 익힌 숯불 전어의 향이 이미 절반의 승부를 결정짓는다. 전어회는 '무혈입성의 지혜'. 바다의 신선함만으로 양념이 없어도 충분히 맛을 낸다. 전어탕은 '장기전 준비'다. 허한 속을 따뜻하게 보호하고, 한겨울을 버틸 군량과 같다. 전어조림은 '약속과 인내의 승리'로 볼 수 있다. 오랜 시간 불에 달이면서 가족과 공동체의 결속을 단단히 한다. 전어튀김은 '기민한 기동전'이다. 빠르게 튀겨 바삭하고 담백한 식감으로 남녀노소를 사로잡는다. 전어탕수육은 '융합의 병법'이다. 새콤달콤한 소스와 어우러진 변화의 전략으로 새 맛을 창조한다. 전어회무침은 '조화와 화합'이다. 매콤달콤 양념이 신선한 전어와 어우러져 나눔의 기쁨, 공동체적 화합을 완성한다. 이렇듯 전어의 다양한 조리법은 손자병법에 나온 대로 억지로 힘쓰지 않아도 자연스러운 맛과 향, 인내와 창의, 환대와 조화로 '싸우지 않고 이기는' 지혜를 보여준다. ◇ 음식의 장수, 다섯 덕목을 갖추다 손자는 장수(將帥)의 덕목으로 지(知), 신(信), 인(仁), 용(勇), 엄(嚴)을 꼽았다. 이는 오늘 주방의 요리사에게도 적용된다. 지(知)는 계절과 손님, 식재료의 본질을 아는 통찰이고, 신(信)은 정직한 손맛과 재료에 대한 신뢰다. 인(仁)은 건강과 조화, 손님의 복지를 최우선으로 두는 마음이고, 용(勇)은 새 시도와 변화에 대한 결단이다. 엄(嚴)은 작은 위생부터 조리 원칙까지 지키는 엄정함이다.

가을 전어는 제철 생선을 넘어 위로와 환대, 공동체·가족의 추억, 건강과 병법적 지혜가 모두 어우러진 식재료다. 본연의 향과 맛, 그리고 다채로운 즐김법 속에 '싸우지 않고 이긴다'는 병서의 가장 깊은 원리가 담겨 있다.

최만순 음식 칼럼니스트

▲ 한국약선요리 창시자. ▲ 한국전통약선연구소장. ▲ 중국약선요리 창시자 팽명천 교수 사사 후 한중일 약선협회장 역임.

<정리 : 이세영 기자>

seva@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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