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열병식앞 '공산당 승리' 역사수정…"미래질서·영토야망 포석"

(서울=연합뉴스) 권수현 기자 = 10년 전 '항일승전 70주년 기념 열병식'에서 '국공(國共·국민당과 공산당)합작'을 부각했던 중국이 전승절인 오는 3일 개최할 열병식을 앞두고는 '공산당의 승리'를 강조하고 있다.
중국이 2차 세계대전 후 국제질서를 주도했다고 자처하며 '역사 다시쓰기'를 시도하는 데에는 대만과 남중국해 등에 대한 영유권 주장을 강화하기 위한 포석인 동시에 과거와 현재의 강대국이자 미래의 '초강대국'으로서 자국 서사를 제시하려는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1일 홍콩 명보 등의 보도에 따르면 중국은 최근 중국 군사과학원이 편찬해 인민해방군 출판사가 출간해온 '중국 항일전쟁사' 개정 증보판에서 중국공산당을 '중류지주(中流砥柱·확고한 기둥)'이었다고 표현하는 등 자국이 항일전쟁의 주축이었다고 주장했다.
또한 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는 지난달 27일 항일전쟁사 개정판 발간 소식을 전하면서 "공산당이 항일전쟁의 최종 승리에 중추적이고 대체 불가능한 역할을 수행했으며 민족 부흥을 이끄는 핵심 세력으로 거듭났다"고 강조했다.
중국 군부 서열 2위인 장유샤 중앙군사위 부주석도 지난달 26일 열린 항일승전 80주년 기념 군사 학술 심포지엄에서 "항일전쟁 시기에 인민의 기둥으로서의 중국공산당의 역할을 깊이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언급했다.
이는 중일전쟁 주력군이 장제스가 이끈 국민당군이라는 기존 주류 역사 인식에 배치되는 것이다.
중국의 이런 행보는 10년 전 처음으로 전승절에 개최한 열병식을 앞두고 국공합작으로 '중국과 대만이 일제 침략에 맞서 함께 싸웠다'는 점을 부각했던 것과 대비를 이룬다.
당시 중국은 항일전쟁에 참가한 국민당 노병을 열병식에 초청했으며 국민당 노병들을 항일영웅 명단에 포함하거나 위로금을 전달하기도 했다.
중국이 중일전쟁 등 2차 세계대전 관련 역사서술을 뒤집거나 수정하려는 시도는 최근 수년간 계속돼왔다.

최근 사례로는 지난 5월 러시아의 제2차 세계대전 승리 기념 열병식 참석차 러시아를 방문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서 "중국공산당의 강력한 지도 아래 중국 국민은 용감히 싸워 항일전쟁에서 위대한 승리를 거뒀다"고 언급한 바 있다.
시 주석은 러시아 관영매체 기고문에서도 2차대전 때 중국과 러시아가 함께 싸우며 전후 질서 확립에 기여했다고 적었다. 또 카이로 선언, 포츠담 선언, 1971년 중국이 유엔에서 유일하게 합법적 권리를 가진다고 결정한 유엔 총회 결의 2758호 등을 언급하며 이는 "중국의 대만에 대한 주권을 확인했다"고 강조했다.
이에 대만은 "카이로 선언과 포츠담 선언 당시에 중화인민공화국(중국)은 존재하지도 않았다"며 '대만 주권을 지우려는 악의적 역사 왜곡'이라고 크게 반발했다.
2차대전 당시 연합국은 1943년 카이로선언을 통해 일본 영토 처리 방침을 공식화하고 1945년 포츠담 선언에서는 카이로 선언의 내용을 재확인했다. 카이로 선언과 포츠담 선언 모두 중국 측 대표로는 장제스 중화민국 국민정부(현 대만) 주석이 참석했다.
미국 일간 뉴욕타임스(NYT)는 이와 관련 브루킹스 연구소의 최근 분석 내용을 인용해 "이번 열병식은 현재 진행 중인 '기억 전쟁'의 일부"라며 중국과 러시아가 2차대전 연합국 승리에 대한 서방 서사의 '대체 역사'를 제시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중국의 이러한 역사 수정은 일차적으로는 대만과 남중국해 일대의 자국 영유권 주장을 강화하려는 의도가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미국·영국·중국(당시에는 중화민국)은 카이로 선언에서 '1914년 1차 세계대전 발발 이후 일본이 탈취하거나 점령한 태평양의 모든 섬을 몰수하고 일본이 중국으로부터 빼앗은 만주, 대만, 펑후군도(대만해협의 소군도)를 중국에 반환한다'고 명문화했다.
이를 두고 중국은 공산당이 본토에서 중화민국을 몰아내고 세운 신중국이 정통성을 이어받았다며 대만이나 일본이 실효 지배 중인 센카쿠 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에 대한 영유권 주장 근거로 내세워왔다.

NYT는 중국이 열병식을 통해 2차대전에서 서방의 인식보다 '더 큰 역할을 했다'는 메시지를 보내려 한다며 "중국이 이 역사를 강조하는 데 관심을 두는 이유는 2차대전 전후 있었던 서방과의 합의로 중국이 남중국해와 대만에 더 큰 영유권을 주장하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미국 외교전문지 포린폴리시(FP)도 시진핑 주석이 이번 열병식 연설을 통해 "중국이 일본을 패퇴시키고 아시아 전쟁 결과를 형성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고 주장할 것이다. 이는 중국 내부의 민족주의적 자부심과 중국이 전후질서의 설계자였다는 중국 정부의 주장을 모두 강화할 것"이라고 짚었다.
중국은 여기서 더 나아가 역사 수정을 통해 '과거로부터 정통성을 지닌 현재의 강대국이자 미래 세계질서를 이끌 초강대국'으로서 자국의 위상을 재정립하려는 것으로 보인다고 외신들은 해석했다.
중국은 그동안 전승절이나 신중국 건국일인 국경절(10월1일)을 기념한 열병식 등 대규모 국가 행사 때마다 서구와 일본 제국주의에 침략당한 '굴욕의 역사'를 딛고 일어선 서사를 강조해왔는데 이번에는 '미국의 패권에 맞서 개발도상국을 대표하며 다자주의를 수호'한다는 보다 미래지향적인 메시지를 던지려 한다는 것이다.
FP는 "중국은 단순히 힘을 과시하는 것이 아니라 자국이 과거에 결정적인 행위자였고, 현재 강력한 강대국이며, 미래를 형성하려는 포부를 가졌다는 통합적 서사를 제시하고 있다"며 "시진핑은 열병식을 통해 자국 내 권위를 공고히 하면서 중국이 역사의 정당한 계승자이자 내일의 질서를 설계할 것임을 전 세계에 알리고자 한다"고 분석했다.
inishmor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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