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자에 레드카펫"…트럼프의 푸틴 환대에 분노한 우크라인들

(파리=연합뉴스) 송진원 특파원 =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 15일 알래스카에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에게 보인 환대에 우크라이나인들의 분노가 커지고 있다.
우크라이나인들은 트럼프 대통령이 푸틴 대통령의 편에 서서 영토 양보를 강요하기 위해 압력을 가할 것으로 우려한다.
16일(현지시간) 프랑스 일간 르피가로가 전한 우크라이나 현지의 분위기는 실망과 분노, 불확실성에 대한 걱정이 주를 이뤘다.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 주민들은 애당초 두 정상 간 회담이 급격한 변화를 가져올 거라 기대하지 않았다. 이 때문에 회담이 끝난 새벽 2시께(우크라이나 시간)까지 기다린 사람은 많지 않았다고 르피가로는 전했다.
두 정상이 만난 날 밤은 전선 근처를 제외하고는 비교적 조용히 지나갔다.
키이우 중심가에서 카페를 운영하는 막심은 "어차피 이 정상회담에서 휴전이나 의미 있는 진전을 기대하지 않았다. 내 생각에 푸틴은 우리에게 수용할 수 없는 조건을 강요하려 할 것이며, 트럼프에게 전쟁이 멈추지 않는 건 젤렌스키 책임이라고 설득하려 할 것"이라고 말했다.
막심은 러시아가 그사이 우크라이나 남부와 동부 지역에서 새로운 공격을 준비 중이라고 확신했다.
우크라이나에서 가장 충격적으로 받아들인 장면은 푸틴 대통령에 대한 성대한 환영이다. 지난 2월 백악관에서 트럼프 대통령과 참모들이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을 공개 면박을 준 것과 완전히 대조적이다.
이를 본 우크라이나 기자 안나 무르리키나는 자신의 SNS에 "미군들은 살인자, 어린이 납치범, 테러리스트, 우크라이나를 파괴하려는 확신의 나치에게 레드카펫을 깔아주고 있다"고 분노를 터뜨렸다.
무르리키나는 "미국의 명예와 존엄성을 상징하는 미군들이 무릎을 꿇었다"며 "미국인들이 이 수치의 심각성을 깨닫기를 바란다. 어떤 협상도 이런 모욕을 정당화할 수 없다"고 덧붙였다.

2020년 3월부터 지난해 9월까지 우크라이나 외교를 책임진 드미트로 쿨레바 전 외무 장관도 이번 정상회담에서 "돌파구가 나올 것이라고 기대하지 않았다"며 "알래스카는 단지 연극의 1막에 불과했다"고 말했다.
쿨레바 전 장관은 16일 프랑스 일간 르몽드와 인터뷰에서 이번 정상회담이 우크라이나 입장에서 볼 때 "상징적 측면에서는 실패"라고 평가하며 이같이 말했다.
그는 이번 정상회담에서 "푸틴이 트럼프 대통령과 함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마주 앉음으로써 그의 오래된 꿈이 실현됐다"고 지적했다. 우크라 침공으로 그동안 국제적으로 고립됐던 푸틴 대통령이 이번 정상회담으로 트럼프 대통령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국제 외교 무대에 복귀하는 모습을 보였다는 취지다.
쿨레바 전 장관은 두 번째 실패로 "푸틴이 트럼프에게 '이제 우크라이나와 유럽에 가서 이 합의를 받아들이도록 설득하라'고 말한 점"이라며 "이로써 푸틴은 트럼프를 유럽·우크라이나에 반(反)하게 만들었다"고 설명했다.
다만 그는 이번 정상회담에서 두 정상이 마음대로 우크라이나나 유럽의 운명을 결정지을 합의를 이루지 않은 것은 다행이라고 짚었다.
쿨레바 전 장관은 푸틴이 어떤 동기에서든 휴전에 동의한다면 이 상황 역시 푸틴에게 유리하게 작용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는 "휴전이 성립되자마자 유럽에서는 '푸틴을 자극하지 말자, 우크라이나에 너무 많은 무기를 보내지 말자, 만약 그를 자극하면 그는 휴전을 파기할 것이다' 등 수백 개의 목소리가 들릴 것"이라며 "이런 (유럽의) 주저함 때문에 시간이 지나면 상황은 더 악화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알래스카 정상회담 이후 트럼프 대통령을 통해 푸틴 대통령의 제안, 즉 우크라이나 동부 돈바스를 넘기면 휴전하겠다는 입장을 전해 들은 유럽 정상들은 17일 오후 '의지의 연합' 국가들을 소집해 화상 회의를 연다.
정상들은 18일 백악관에서 예정된 트럼프·젤렌스키 대통령 간 회담을 앞두고 푸틴 대통령의 제안을 평가하고, 우크라이나 안보·평화 유지 방안에 대해 논의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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