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르노빌 원전에 동물이 돌아왔다…'버려진 섬들'

(서울=연합뉴스) 송광호 기자 = ▲ 만들어진 서양 = 니샤 맥 스위니 지음. 이재훈 옮김.
영국의 고전 고고학자이자 역사학자인 저자가 '서양'이라는 개념의 탄생과 확산 과정을 추적한 책이다.
저자는 16세기 후반에 시작된 '서양과 비서양' 구도는 18세기에 정착됐고, 그 과정에서 서양이라는 이름은 점차 하나의 권위를 갖게 됐다고 주장한다.
일반적으로 서양문명은 고대 그리스에서 로마를 거쳐 르네상스, 계몽주의, 산업 혁명과 민주주의의 흐름으로 이어졌다는 게 정설이다.
그러나 저자는 서양문명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고대 그리스 역사가 헤로도토스부터 20세기의 지성 에드워드 사이드까지 14명의 삶을 추적하며 이 같은 '정설'에 반론을 제기한다.
그리스와 페르시아 전쟁을 연구한 헤로도토스 시대에 그리스인들은 자신을 유럽인들이라고 믿지 않았다. 유럽이 중세 암흑기에 접어들었을 때 아리스토텔레스 등 그리스 유산을 계승한 이는 철학자 알칸디 같은 아랍인들이었다. 20세기를 대표하는 서양 지식인 중 한명인 에드워드 사이드는 팔레스타인 출신 미국인이기도 하다. 저자가 소환한 14명은 모두 비주류에 속하지만 서양이란 개념이 만들어지고 강화하는 역사적 접점에 있었던 인물들이다.
저자는 이들의 삶을 따라가며 현재의 유럽이 고대 그리스-로마의 유산을 온전히 받지 않았다는 것, 유럽의 인종으로 백인이 선택되었다는 것, 근대 유럽인이 비기독교와 이슬람을 적으로 규정하고 혐오를 조장했다는 것, 결정적으로 서양이 하나로 결합해 있지 않고 무수한 분열과 대립을 겪었다는 것을 밝힌다.
저자는 서양문명의 적통이라고 할 수 있는 "그리스·로마인들조차 배타적인 서양 혹은 유럽 정체성을 지니지 않은" 데다가 "근대 서양의 문화적 DNA의 상당 부분도 비유럽인 및 비백인 선조들에게서 폭넓게 빌려온 것"이라고 말한다.
열린책들. 584쪽.

▲ 버려진 섬들 = 캘 플린 지음. 황지연 옮김.
책 제목 '버려진 섬들'의 섬은 사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곳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인간에게 점유되었다가 버려진 장소는 문명사회에서 섬처럼 고립되어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러니까 '원전 사고'가 난 체르노빌 원자력발전소 주변 지역이나 미국에서도 손꼽히는 범죄율로 유명한 디트로이트, 폐공장이 유령처럼 늘어선 뉴저지주 패터슨 같은 곳들도 '버려진 섬'들인 셈이다.
한국의 비무장지대(DMZ)처럼 전쟁으로 무인지대가 된 키프로스 완충구역, 소련이 붕괴한 뒤 방치된 에스토니아의 광활한 농경지, 1차세계대전의 포화가 휩쓸고 간 프랑스 베르됭, 화산 폭발로 파괴된 몬트세랫섬, 홍수로 생겨났다가 사라진 캘리포니아 솔튼호 등도 버려진 섬이다.
스코틀랜드 출신 기자이자 작가인 저자는 인간의 부주의와 욕망 때문에 발생한 사고와 전쟁, 자연재해 등으로 버려진 자연을 돌아다니며 그곳의 상황을 기록해 전달한다.
저자가 발품을 팔고 다니며 느낀 건 자연의 엄청난 복원력이다. 두 번 다시 생명체가 살 수 없으리라 여겨진 곳에도 다시 생명이 움트고 있었다.
1986년 방사능에 노출돼 소나무 숲이 갈변하고 가축이 떼죽음을 당한 체르노빌에 멧돼지·사슴·늑대 등의 동물이 돌아왔고, 1946~1958년 핵실험장으로 쓰여 대부분의 섬이 날아갔던 비키니환초에도 산호초가 자생하고 있었다.
"면죄 같은 건 없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한 가지는 분명하다. 모든 것을 잃지는 않았다."
문학동네. 42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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