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천원 아끼려 에어컨도 없는 방에서 한여름 버텼죠"
연합뉴스
입력 2025-07-02 08:07:00 수정 2025-07-02 08:07:00
택배, 물류센터 전전하며 글 쓴 중국 노동자 이야기
신간 '나는 북경의 택배기사입니다'


베이징의 택배기사 [EPA=연합뉴스]

(서울=연합뉴스) 송광호 기자 = 14억명이 넘게 사는 중국은 택배 천국이다. 세계 최대 규모인 데다 빠른 속도로 성장하고 있다. 500만명 이상의 택배 기사들은 삼륜 전기차를 몰며 이곳저곳에 물건을 배달한다.

후안옌(胡安焉) 씨도 그런 택배 기사 중 한명이다. 남부인 광둥(廣東) 지역 출신인 그는 베이징(北京) 곳곳을 돌아다니며 물건을 배달한다. 통상 지정된 구역에서 배달하지만, 임시직이어서 때론 이곳저곳 파견 나가기도 한다.

후안옌 씨에 따르면 택배 일은 만만치 않다. 앱에 지도가 표시되지 않은 단지는 수소문해서 찾아야 하고, 또 어떤 단지는 진입로나 출입문이 앱에 표시되지 않아 멀리 돌아가는 경우도 다반사이기 때문이다.

택배 회사[연합뉴스 자료사진]

반품 신청도 골치 아프다. 고객들이 택배를 받은 후 풀어놓고, 재포장해놓지 않는 경우가 빈번하기에 택배기사가 직접 30분 가까이 끙끙거리며 포장을 다시 하는 경우도 많다.

무엇보다 업무량 자체가 과중하다. 바쁜 날은 아침 6시에 집을 나서면 저녁 11시에 퇴근한다. 또한 아침, 저녁으로 회의에 참석해야 한다. 회의에선 택배기사들이 받는 고객 별점 평가에 대한 상사들의 신랄한 비판이 이어진다.

비판뿐 아니다. 상사들은 택배기사들에게 욕설을 퍼붓고, 심지어 얼차려까지 준다. 반항이라도 하면 쫓겨난다. 상사들은 생사여탈권을 쥔 전장의 장수와 같다. 먹고 살려면 상사의 말에 절대복종해야 한다. 윗사람에게 받은 스트레스는 아랫사람에게 풀면 된다. "강자에게 약하고, 약자에게 강한 것"이야말로 택배 업계의 불문율이기 때문이다.

아파트 단지 앞에 쌓인 택배[연합뉴스 자료사진]

고객의 황당한 요구와 상사의 폭언을 견디면서 배달하다 보면 통상 하루 1만보에서 1만5천보를 걷는다. 많이 걷는 날은 3만보를 넘기도 한다. 영하 10도가 넘는 강추위에도, 영상 35도가 넘는 무더위에도, 호구지책(糊口之策)인 일을 멈출 순 없다. 그렇게 한 달을 일하면 7천위안(약 132만원)을 손에 쥔다.

그마저도 아프면 도루묵이다. 후씨는 한여름 바이러스성 폐렴에 걸려 병원에 갔는데, 한 달 월급의 절반이 병원비로 나갔다.

중국의 한 택배기사 [EPA=연합뉴스]

신간 '나는 북경의 택배기사입니다'(윌북)는 택배기사로 일한 후안옌이 쓴 에세이다. 저자는 고교 졸업 후 호텔종업원에서 시작해 옷 가게 점원, 주유소 직원, 패스트푸드 배달, 만화잡지 수습생, 물류센터(야간직) 직원, 택배기사까지 19가지 일에 종사하며 버틴 삶의 기록을 담백하게 서술한다.

육체노동으로 점철된 삶은 만만치 않았다. 한여름에 "50위안(당시 약 8천원)을 아끼겠다고 에어컨 없는 방"에서 버티고, 야간 물류센터에서 일할 때는 잠이 오지 않아, 그저 자기 위해 술을 마셨다. 술을 2~3잔가량 마시며 그는 책을 읽었다.

사실 그는 문학에 대한 꿈을 지닌 '문학청년'이었다. 쇼핑몰에서 옷 가게를 하며 책을 본격적으로 읽은 그는 헤밍웨이, 카프카, 카포티, 조이스 등 여러 소설가의 저서를 독파했다.

"문학작품을 많이 읽을수록 현실에서 점점 멀어지는 느낌이 들었다. 일이든 사업이든 감정이든 내 삶에는 좌절과 고통이 가득했다."

물류센터 [연합뉴스 자료사진]

문학에 대한 야망은 읽는 데서 멈추지 않았다. 그는 썼다. 그가 쓴 소설이 문학잡지에 실리기도 했지만, 손에 쥔 원고료는 한화로 5만원 안팎에 불과했다. 글만 쓰면서 먹고 살 순 없는 노릇이었다.

그러다 우연히 기회가 찾아왔다. 살다 보면 행운이 불행의 모습을 하고 찾아오곤 하는데, 저자에게 닥친 행운이 그랬다.

2019년 말 코로나가 터지면서 택배회사가 문을 닫았다. 할 일이 없어진 저자는 인터넷사이트에 그간의 노동 경험을 글로 써 올렸는데, 이 글이 이른바 '대박'이 난 것이다. 글은 입소문을 타면서 100만회 이상 조회됐다.

그의 글은 새로운 글을 찾으려는 출판인의 레이더망에 걸려들었고, 곧 책 출판으로 이어졌다. '나는 북경의 택배기사입니다'가 나온 배경이다.

책은 출간과 함께 중국 주요 서점에서 9주 연속 베스트셀러에 오르며 인기를 끌었고 평단의 주목도 받았다.

[윌북 제공. 재판매 및 DB금지]

상업성과 작품성,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은 이 책에서 저자는 육체노동자의 삶이 만만치 않다고 회고한다. 일을 하면서 글을 쓰는 건 매우 어려운 일이라고 그는 말한다. 일에 압도돼 도저히 글을 쓸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반대의 삶도 분명히 있다고 했다.

"일이라는 게 어쩔 수 없이 해야만 하는 것이고 개인적 소망을 단념하면서도 해야 하는 것이라면, 그 반대의 삶에서는 자신이 진정으로 바라고 원하는 것에 충실해야 할 것이다. 그게 무엇이든 여기에서는 일단 자유라고 부르겠다."

문현선 옮김. 332쪽.

buff27@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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