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혐오로 뒤틀린 관계…클레어 키건 소설집 '너무 늦은 시간'

연합뉴스입력
[다산북스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연합뉴스) 임순현 기자 = 지난해 국내 주요 서점 독자들이 뽑은 올해의 책 1위에 오른 '이처럼 사소한 것들'의 작가 클레어 키건의 신작 소설집 '너무 늦은 시간'(다산북스)이 국내에 번역 출간됐다.

소설집에는 결혼을 앞둔 연인과의 갈등을 묘사한 '너무 늦은 시간' 등 남녀의 뒤틀린 관계 속에 존재하는 폭력과 우월주의의 기류를 추적하는 세 편의 단편 소설을 수록했다.

2023년 미국 주간지 '뉴요커'를 통해 발표한 표제작 '너무 늦은 시간'은 50페이지가 채 안 되는 짧은 분량이지만, 장편소설 못지않은 감정의 격양을 경험할 수 있는 작품이다.

여성 혐오자인 공무원 '카헐'이 연인에게 저지른 실수와 아버지의 유산을 떠올리며 후회와 증오가 뒤섞인 기묘한 감정으로 서서히 가라앉는 모습을 담담하게 그려낸다. 그러면서 남성과 여성의 뒤틀린 관계의 근원적인 문제가 어디에서 비롯됐는지를 파고 들어간다.

특히 카헐의 동생이 식탁에 앉으려는 어머니의 의자를 뒤로 빼서 넘어뜨린 뒤 아버지, 형과 함께 웃어대는 모습은 소설의 조용한 분위기 속에서 강렬한 충격을 독자에게 전달한다. 작가의 유년 시절 경험을 옮긴 이 장면은 일상화된 혐오가 남성과 여성 모두에게 어떤 악영향을 끼치는 지를 예민하게 포착해낸다.

2007년 발표한 '길고 고통스러운 죽음'은 작가 레지던스에서 작업 중인 여성 작가가 갑자기 찾아온 남성과 겪는 미묘한 갈등을 다룬 작품이다. 자신을 독문학과 교수라고 소개한 남성은 대접받은 케이크를 게걸스럽게 먹어 치운 뒤 "당신은 작가라면서 케이크나 만들고 있군요"라며 뜬금없이 여성 작가를 힐난한다.

마지막 '남극'은 행복한 결혼 생활을 하던 한 여성이 크리스마스 선물을 사러 도시로 나가 술집에서 만난 한 남성과 하룻밤을 보내는 이야기를 다룬다. 1999년 발표한 작품으로, 잠잠해 보이는 인물들 사이에 숨은 폭력적인 긴장감과 혐오를 절묘하게 묘사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허진 옮김. 120쪽.

hyu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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