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위드인] 세계로 뻗는 한국 게임, '4대 중독' 낙인찍는 사람들
연합뉴스
입력 2025-06-21 11:00:01 수정 2025-06-21 11:00:01


지스타 2024 게임 열기2024.11.14 handbrother@yna.co.kr [연합뉴스 자료사진]

(서울=연합뉴스) 김주환 기자 = 여름 업데이트와 신작 준비에 바쁜 게임업계가 때아닌 보건복지부와 지자체의 '중독' 뭇매에 발칵 뒤집혔다.

국내 대형 게임사가 밀집한 성남시와 산하 위탁기관 성남시중독관리통합지원센터가 게임을 술, 마약, 도박과 같은 '4대 중독' 물질로 보고 '중독 예방 콘텐츠 공모전'을 연 사실이 뒤늦게 알려지면서다.

성남시가 주최한 'AI를 활용한 중독예방콘텐츠 제작 공모전'[성남시중독관리통합지원센터 홈페이지 캡처]

◇ '게임중독' 공모전 사과 안 하는 성남시, '4대 중독' 프레임 고수하는 복지부

한국게임산업협회를 비롯한 게임 개발자·전문가 단체들은 '한국 게임산업의 메카'로 불리는 성남시의 행보에 즉각 공동 입장문을 내고 반발하고 나섰다.

하지만 문제의 공모전을 주최한 성남시는 공모전 요강에서 '게임' 표현만 삭제했을 뿐, 상처를 받은 게임업계와 그 종사자를 향해 며칠째 어떠한 공식적인 사과의 뜻도 밝히지 않았다.

사태가 공론화되자 보도자료로 "보건복지부의 2025년 '정신건강사업안내'를 그대로 반영했다"며 "성남시가 인터넷 게임을 중독물질로 규정했다는 일부의 해석은 전혀 사실이 아니다"라고 은근슬쩍 책임을 돌렸을 뿐이다.

보건복지부는 실제로 홈페이지의 '중독관리통합지원센터 운영 및 현황' 페이지에 센터의 지원 대상으로 '알코올 및 기타 중독(마약, 인터넷 게임, 도박)에 문제가 있는 자'를 명시하고 있다.

한국게임이용자협회의 자체 조사에 따르면 전국 60개 중독관리통합지원센터 중 40여개 센터에서 게임 중독과 관련한 직간접적인 표현을 쓰고 있었다.

인터넷 게임 중독을 명시한 보건복지부 홈페이지[보건복지부 홈페이지 캡처]

알코올, 마약, 도박, 인터넷게임이라는 '4대 중독' 표현은 2013년 19대 국회 당시 신의진 새누리당 의원이 대표발의한 '중독 예방·관리 및 치료를 위한 법률'이 원조다.

당시 보건복지부는 이에 적극적으로 동조하며 법안이 통과되기도 전부터 '4대 중독 예방' 캠페인을 벌였지만, 결국 법안은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하고 폐기됐다.

세계보건기구(WHO)는 2019년 게임이용장애를 질병으로 규정하고 국제표준질병분류(ICD) 11판에 반영했으나, 이 역시 아직 국내 도입 여부는 민관협의체 논의가 진행 중인 상황이다.

법에 '게임 중독'이 명시돼있지도, 국내 질병분류상 질병으로 분류된 것도 아닌 상황에서 보건복지부가 게임에 질병 낙인을 찍는 데 가세하고 있는 셈이다.

게임 열기로 가득한 부산2024.11.14 handbrother@yna.co.kr [연합뉴스 자료사진]

◇ 게임이 질병 유발 물질이 된다면 일어날 일들

국내 13개 게임·인터넷 관련 협·단체는 20일 보건복지부에 공개 질의서를 발송했다.

13개 단체는 질의서에서 "게임은 단순한 오락을 넘어 창작, 산업, 문화, 그리고 수많은 사람의 일상과 삶을 구성하는 중요한 매체"라며 "그것이 도박, 알코올, 약물과 나란히 열거되었을 때, 사회적 낙인과 오해는 그 자체로 실질적인 피해를 낳는다"라고 지적했다.

문화체육관광부도 지난 19일 보건복지부에 공문을 보내 문제의 표현에 대한 시정을 요청했다.

혹자는 이를 두고 게임업계 또는 게이머들의 '과민반응'이라고 말한다. 앞서 언급된 성남시의 해명성 보도자료에도 그런 시각이 엿보인다.

하지만 오랫동안 중독이라는 편견 어린 시선과 싸워온 게임업계의 트라우마를 자극하기에는 충분한 사건이었다.

분명 게임에 과도하게 몰입해 일상생활에 지장을 겪는 사람들이 있는 것이 사실이고, 그들에게 적절한 도움이 필요한 것도 맞다.

하지만 그렇다고 게임을 중독 물질로 간주하고, 특정한 게임 이용 행태를 질병으로 몰아가는 것은 완전히 다른 문제다.

게임에 쓰는 시간이 많은 이들은 졸지에 정신질환을 가진 사람이자 치료 대상으로 취급받게 되고, 게임에 대한 사회적 인식도 추락할 것이 불 보듯 뻔하다.

국내 콘텐츠 수출액의 60∼70%를 차지하는 게임산업은 술·담배 제조 기업처럼 규제 대상이 되며, 이른바 '게임 중독세'가 부과될 가능성도 있다.

중국이 값싼 인건비와 막대한 자본 동원력을 앞세워 한국 시장 장악력을 높이고 있는 상황에서 한국 게임은 나름의 자체적인 혁신을 추구하며 생존을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다.

그런 상황에서 제대로 검증되지도 않은 게임에 대한 중독 낙인이 가져올 파급효과는 명백하다.

미셸 푸코(Michel Foucault·1926∼1984)[연합뉴스 자료사진]

프랑스 철학자 미셸 푸코(1926∼1984)는 저서 '광기의 역사'를 통해 근대 문명이 어떻게 정신병을 규정하고, 이를 감금과 통제의 수단으로 활용해왔는지를 규명했다.

푸코는 책 서문에서 "본질적인 것은 광기를 구분하는 행위이지, 그 분할이 끝나고 평온함이 회복된 이후에 구축된 과학이 아니다. 근원적인 것은 이성과 비이성 사이에 거리를 설정하는 단절"이라고 말한다.

정신의학의 이름을 빌려 어떤 행위를 질병으로 규정하는 것은 결코 가치중립적인 판단이 아니며, 그 자체가 '권력'의 발현이라는 의미다.

게임을 질병으로 간주하는 권력은 과연 민주적인 방법으로 행사되고 있는 걸까?

jujuk@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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