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년 만에 내한 공연…고전에 대한 새로운 해석 '눈길'

(서울=연합뉴스) 박원희 기자 = 백조가 등장하는 악몽을 꾼 왕자가 소스라치게 놀라며 잠에서 깨어난다. 그는 방으로 온 여왕에게 애정을 갈구하지만, 여왕의 반응은 냉담하기만 하다. 여왕은 유약한 아들이 마음에 들지 않고 왕자는 점점 외로워진다. 그러던 어느 날 왕자 앞에 여자친구가 나타나 그를 유혹한다. 왕자는 매력적인 그녀에게 끌린다. 그러나 왕자는 여자친구가 자신의 개인 비서로부터 돈을 받는 것을 목격하고 절망에 빠진다. 정처 없이 길거리를 헤매던 왕자는 그날 밤 백조를 마주하게 된다.
지난 18일 LG아트센터 서울에서 개막한 '백조의 호수'는 고전에 대한 재해석이 빛나는 작품이었다.
세계적인 안무가 매튜 본이 창작한 '백조의 호수'는 고전 발레 작품 '백조의 호수'를 바탕으로 만든 공연이다. 1995년 영국 런던에서 초연한 작품은 남성 백조, 동성애를 연상시키는 서사 등으로 세계적인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1996년 영국의 권위 있는 공연예술상인 올리비에상, 1999년 미국의 연극·뮤지컬계 아카데미상으로 불리는 토니상을 받았다.
국내에서는 2003년 초연을 포함해 다섯 차례 공연하며 10만명 이상의 관객을 동원했다. 이번 내한 공연은 2019년 이후 6년 만으로 '백조의 호수' 30주년 기념 순회공연 일환으로 열렸다.

공연의 하이라이트는 남성 무용수들이 선보이는 백조의 군무다. 남성 백조는 매튜 본이 이 공연을 기획하게 된 출발점이기도 하다. 무용수들은 두 손으로 부리를 형상화하거나 무릎을 높이 치켜드는 점프로 백조의 날갯짓을 그리며 원작의 우아함보다는 역동성을 강조했다. 한명씩 순차적으로 동작을 반복하는 군무는 마치 한 마리의 큰 백조를 표현하는 듯했다.
달밤 아래 물 위를 유유히 떠다니는 백조의 모습으로 시작해 왕자의 눈앞에 백조가 처음 모습을 드러내고 이후 백조들이 점점 많이 등장하는 무대 연출도 긴장감을 고조시키며 몰입감을 높였다. 왕자가 백조를 쫓아갈 때 시작되는 차이콥스키의 곡 '백조의 호수' 중 '정경'은 신비롭고 애절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원작을 재해석한 서사도 눈길을 끌었다. 매튜 본은 저주로 백조의 모습을 하게 된 공주와 그를 구하려는 왕자의 이야기를 유약한 왕자와 강인한 백조의 이야기로 탈바꿈시켰다. 왕자와 백조가 서로 이끌리면서 빚어내는 미묘한 관계는 이 공연을 동성애 서사로 해석하게 한 주요 요소가 됐다.
한편으로 백조는 왕자의 이상향으로 읽히기도 한다. 왕실의 엄격함에 짓눌린 왕자에게 백조의 자유로움은 갈망의 대상이다. 또 백조를 닮은 낯선 남자는 무도회장에 나타나 왕자가 그토록 갈구하던 여왕의 관심을 끈다. 왕자가 바라는 모습의 본보기인 셈이다. 이상향이 되지 못하는 데서 비롯되는 왕자의 혼란과 비애는 이 작품이 동성애 서사를 넘어 관객에게 보다 보편적으로 다가가게 하는 지점이다.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를 떠올리게 하는 여왕과 왕자의 관계, 오페라 무대와 바(bar)를 재현한 무대 공간도 보는 재미를 더한다.
공연은 오는 29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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