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의 시선이라는 감옥…강화길 4년만의 장편 '치유의 빛'
연합뉴스
입력 2025-06-13 17:09:41 수정 2025-06-13 17:09:41


'치유의 빛' 표지 이미지[은행나무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연합뉴스) 황재하 기자 = 열다섯 살의 가을, 여학생 '지수'는 밤마다 종아리가 저리고 무릎과 허리가 아프기 시작하더니 단숨에 20센티미터 넘게 키가 자라고 몸무게가 불어났다.

별다른 주목을 받을 일이 없었던 지수는 불어나는 몸 때문에 갑자기 타인의 이목을 끌기 시작한다. 주위에서 쏟아지는 '뚱뚱하다'는 비난은 지수를 옭아매는 족쇄가 된다.

세월이 흘러 서른 두살 직장인이 된 지수는 176센티미터에 50킬로그램도 되지 않는 깡마른 몸매를 유지하기 위해 절식에 가까울 만큼 적은 음식만 먹고 때때로 식욕억제제까지 복용한다.

중대한 프로젝트를 앞두고 회사 일에 몰두하던 지수는 급속도로 건강이 나빠지기 시작하고, 휴식을 취하라는 주변의 권유에 고향인 '안진'으로 향한다. 그리고 그곳에서 자신의 과거를 마주한다.

최근 발간된 강화길의 장편소설 '치유의 빛'(은행나무)은 가장 내밀하고 개인적이어야 할 '몸'이 타인에 의해 쉽게 평가받으면서 비롯되는 이야기다.

어른이 된 지수는 과거의 악몽에서 벗어나려는 듯 필사적으로 마른 체형을 유지하지만, 자기 몸을 떠날 수 없듯 그의 과거 또한 안진에 도사리고 있다. 고향 안진에서 지수는 학창 시절 남몰래 동경했던 친구 '해리아', 그리고 해리아 주위를 맴돌던 '신아'와 재회한다.

이후 과거 안진에서 있었던 일들이 차츰 드러난다. 안진에서 벌어진 일들은 사회에서 개인이 타인의 시선에 둘러싸여 억압받고 고통받게 되는 과정을 압축해서 보여준다.

작가는 특히 세 친구 지수, 해리아, 신아 사이의 관계에서 나타나는 동경, 질투, 애증 등 복잡미묘한 심리를 집요하게 묘사했다. 이 같은 심리 묘사는 인간이 왜 타인의 평가에 불행해하면서도 그것에 집착할 수밖에 없는지 보여준다.

"사람들은 왜 동경하는 만큼 사랑하고, 사랑하는 만큼 질투하고 증오할까. 그래서 갖고 싶어 하고, 가질 수 없으면 부숴버리고 싶어 하고. 불쌍해하다가 미워하고, 안타까워하다가 꺾어버리고 싶어 할까."(본문 중)

작가 임솔아는 '추천의 말'에서 "강화길의 소설은 핏줄 속에서 보내온 초대장 같다"며 "초대를 받으면 핏줄을 타고 한 인물의 몸속을 샅샅이 돌아다니게 된다"고 작가의 집요하고 치밀한 내면 묘사를 높게 평가했다.

'치유의 빛'은 강화길이 '다른 사람' 이후 4년 만에 선보이는 장편이다. 2012년 경향신문 신춘문예에 단편 '방'이 당선되며 작품 활동을 시작한 강화길은 한겨레문학상, 구상문학상 젊은작가상, 문학동네 젊은작가상, 백신애문학상을 받았다.

384쪽.

jaeh@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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