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다'로 돌아온 이혜영 "초연 때 부족한 점 완성하려 출연"
연합뉴스
입력 2025-05-19 18:19:44 수정 2025-05-19 18:19:44
13년만에 연극 '헤다 가블러' 주연…이영애 버전과는 "배우 달라 비교 불가"
박정희 연출 "젠더 초월한 한 인간의 이야기로 새롭게 해석"


이혜영, 연극 무대에서(서울=연합뉴스) 강민지 기자 = 배우 이혜영이 19일 서울 중구 국립극단 명동예술극장에서 열린 연극 '헤다 가블러'기자간담회에서 질문을 듣고 있다. 2025.5.19 mjkang@yna.co.kr

(서울=연합뉴스) 황희경 기자 = 영화 '파과'에서 냉철한 60대 여성킬러 '조각' 역으로 관객을 사로잡은 배우 이혜영이 이번에는 헨리크 입센의 작품으로 연극 무대에 섰다.

이혜영은 국립극단이 서울 명동예술극장에서 지난 16일 개막한 연극 '헤다 가블러'에서 죽음으로써 자신을 둘러싼 여러 제약에서 벗어나는 주인공 '헤다' 역을 맡았다.

이혜영은 앞서 2012년 명동예술극장에서 공연한 '헤다 가블러'에서 헤다를 연기해 크게 호평받으며 그해 동아연극상 여자연기상과 대한민국 연극대상 여자연기상 등 여러 상을 받았다. 13년 만에 헤다로 돌아온 이혜영에 대해 연극 팬들의 관심도 커 연극은 개막 전 전석 매진됐다.

이혜영은 19일 명동예술극장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초연 때 부족한 게 있었다면 이번에 (그 부분을) 완성하기 위해 출연했다"며 "모든 걸 해체하고 새롭게 준비했고 만족하고 있다"고 말했다.

배우 이혜영과 박정희 연출(서울=연합뉴스) 강민지 기자 = 배우 이혜영이 19일 서울 중구 국립극단 명동예술극장에서 열린 연극 '헤다 가블러'기자간담회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오른쪽은 박정희 연출. 2025.5.19 mjkang@yna.co.kr

그는 연출가이자 극작가였던 고(故) 김의경과의 인연을 소개하며 "내가 있어서 이 작품을 공연할 수 있다는 착각을 갖고 있다"고 털어놨다.

"당시 김의경 선생님이 '헤다 가블러'를 하자고 해서 '그게 뭐예요'라고 했었죠. (헤다 가블러가) 대학 연극으로는 많이 무대에 올랐지만 그때 상업극으로 기성 극단에서 공연한 적은 없었거든요. 그런데 이렇게 세련되고 충격적인 작품을 왜 여태까지 안 했을까 했더니 김 선생님이 '이혜영 같은 배우가 없었기 때문이지'라고 말씀하셨어요. 저는 그 말을 믿었어요. 내가 있었기에 이 작품을 공연할 수 있다는 큰 착각이었죠. 저는 지금까지도 그 마음을 갖고 있어요. (초연 때도) 그런 착각을 가지고 했고, 그 착각을 방해하는 모든 요소는 아무것도 만나지 않고 있어요."

질문 듣는 이혜영(서울=연합뉴스) 강민지 기자 = 배우 이혜영이 19일 서울 중구 국립극단 명동예술극장에서 열린 연극 '헤다 가블러'기자간담회에서 질문을 듣고 있다. 2025.5.19 mjkang@yna.co.kr

이혜영은 이어 "초연 때와 다른 것은 단 하나, 지나온 세월"이라고 말했다.

"(초연 때보다) 나이가 든 데 대한 부담이 있었다는 것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네요. 저는 체력에 신경을 썼어요. '늙어서 연기가 안 되면 어떻게 하나' 걱정할까 봐 제가 헤다라고 믿게 하려고 연습 때부터 공연이라 생각하고 긴장하며 임했어요. 헤다로서 동료들에게 신뢰를 주려 노력했습니다."

관객을 깜짝 놀라게 하는 총성으로 시작되는 연극에서 이혜영은 13년 전과는 다른 모습의 헤다를 선보인다. 고혹적인 분위기는 여전하지만 이혜영 하면 떠오르는 카리스마 넘치는 헤다를 연기했던 초연 때와 달리 이번 공연에선 권태에 지쳐 나른한 모습을 보여준다. 가끔은 엉뚱하게도 보이는 헤다의 모습에 객석에서는 여러 차례 웃음이 터져 나온다.

연극 '헤다 가블러' 공연 모습[국립극단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이번 연극은 헨리크 입센의 원작을 충실히 따라가며 헤다의 선택에 설득력을 불어넣으면서도 1970년대로 배경을 옮기고 헤다의 캐릭터 해석에도 변화를 줬다. 현대적인 상류층 집의 거실처럼 꾸며진 무대에는 사이키델릭한 음악과 조명이 흐른다.

초연에 이어 다시 연출을 맡은 박정희 국립극단 예술감독은 "히피즘이 성행했던 1970년대 중반으로 배경을 설정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헤다 가블러는 흔히 여성서사, 여성의 해방이나 자유 의지를 나타내는 작품으로 해석되는데 21세기에 와서는 젠더를 초월한 한 존재, 한 인간의 이야기로 본다"고 말했다.

이어 "지금은 '시의 시대'가 아닌 '산문의 시대'라고 생각해 초연 때보다 원문에 더 충실하려 했고 산문적으로 풀어내려고 했다"며 "초연 때는 헤다를 신이 되려는 여성으로 해석해 이혜영의 카리스마가 훨씬 더 있었겠지만 이번에는 인간으로 접근했던 것 같다"고 덧붙였다.

연극 '헤다 가블러' 공연 모습[국립극단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이번 공연은 당초 이달 8일 개막할 예정이었으나 하루 전날 브라크 검사 역을 맡은 윤상화 배우의 갑작스러운 건강상 문제로 배우가 교체되고 개막이 미뤄지는 우여곡절을 겪었다. 긴급 투입된 홍선우 배우는 짧은 연습 시간에도 불구하고 이틀 만에 대사를 모두 외우며 헤다의 불안을 자극하는 브라크 검사 역을 마치 처음부터 캐스팅 것처럼 무리 없이 소화했다.

이혜영은 "개막 전날 충격적인 소식을 듣고 모두가 절망했다"고 돌아봤다.

"마치 전의를 상실한 패잔병처럼 모두가 지난 일주일간 고통과 죄의식 때문에 힘든 시간을 보냈고 지금 이렇게 공연을 하는 게 기적 같네요. 배우가 아파서 쓰러진 와중에 바로 새로운 배우를 찾아야 하는 현실이 힘들었지만 그래도 극장을 찾아주는 관객들에게 최선을 다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이번 '헤다 가블러' 공연은 공교롭게도 배우 이영애가 출연하는 LG아트센터 제작의 '헤다 가블러'와 공연 시기가 겹치며 화제가 됐다. 두 연극을 비교하는 시선들에 대해 이혜영은 "배우가 다르고 프로덕션 전체가 다르기 때문에 비교는 불가한 것 같다"고 말했다.

연극 '헤다 가블러' 공연 모습[국립극단 제공, 재판매 및 DB금지]

zitrone@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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