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준상 감독 영화 장례식 장면 촬영에 손숙·강부자 등 실제 지인 초청
"일종의 '러허설', 축제처럼 느끼길…삶과 죽음은 공존하는 것"
"일종의 '러허설', 축제처럼 느끼길…삶과 죽음은 공존하는 것"

(서울=연합뉴스) 오보람 최주성 기자 = '나의 장례식에 당신을 초대합니다. 장례식은 엄숙해야 한다고 누가 정했을까요. 오늘만큼은 다릅니다. 당신은 우는 대신 웃어야 합니다.'
배우 박정자(83)가 지인 약 130명에게 '박정자의 마지막 커튼콜'이라는 제목으로 이런 내용을 담은 부고장을 보냈다. 2025년 5월 25일 오후 2시, 강릉시 사천면 신대월리 순포해변이라는 시간과 장소도 명시했다.
박정자는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리는 연극 '화이트래빗 레드래빗'에 출연하는 등 팔순이 넘은 나이에도 무대를 종횡무진 누비고 있다. 그런 그가 왜 갑자기 자신의 부고장을 썼을까.
"유준상 감독과 이야기를 나누다가 순포해변을 배경으로 상여를 들고 가는 장면을 넣기로 했어요. 연극적인 장례 행렬을 만들어 보기로 한 거죠. 이 장면 촬영을 위해 지인들을 초대했어요. 130명 정도가 강릉에서 같이 숙박하고 촬영할 예정입니다."

13일 전화로 만난 박정자는 배우 유준상이 연출하는 영화 '청명과 곡우 사이'의 장례식 장면 촬영을 겸해 이 같은 "장례 축제"를 기획하게 됐다고 말했다.
영화의 한 장면이지만, 조문객들은 박정자의 실제 지인인 만큼 그의 가상 장례식이라 할 수 있다. 배우 손숙, 강부자, 송승환, 손진책 연출 등 연극계 동료들과 김동호 전 부산국제영화제 집행위원장, 정지영 감독, 소리꾼 장사익 등 평소 박정자와 친분이 두터운 예술인들이 그의 초청을 받았다.
"혼자 가기는 쓸쓸했다"는 박정자는 "우리가 (이승에) 왔다가 (저승으로) 가는 길인데 축제처럼 느껴지기를 바랐다. 그래서 축제처럼 준비했다"고 설명했다.
그가 쓴 부고장에도 이 같은 신조가 담겨 있다. '꽃은 필요 없습니다. 꽃 대신 기억을 들고 오세요', '오래된 이야기와 가벼운 농담을, 우리가 함께 웃었던 순간을 안고 오세요' 등 그의 죽음관이 잘 드러나는 말로 채워졌다.
'청명과 곡우 사이' 역시 한 여배우의 생애 여정을 따라가며 삶과 죽음의 의미를 헤아리는 작품이다. '내가 너에게 배우는 것들'(2016), '아직 안 끝났어'(2019), '스프링 송'(2021) 등을 연출한 유준상이 메가폰을 잡았다.
박정자는 "유 감독이 평소 생각하던 죽음에 관한 이야기를 만드는 과정에서 나를 떠올렸다고 한다. (출연 제안을 받고) 이 영화를 같이 만들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이 영화에 "삶과 죽음은 공존하는 것"이라는 메시지가 담겼다며 장례 장면이 이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대목이라고 소개했다.
"살아 있는 사람이 죽음을 낯설어하지 않게끔, 사는 동안 이런 모습의 장례도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려 했습니다. 일종의 '리허설'이라고 생각해주면 좋겠어요. 지금도 삶을 정리하고 있는 누군가는 (죽음의) 시간을 맞이할 테니까요."
rambo@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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