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인경 '도시의 소문과 영원의 말'·조영주 '쌈리의 뼈'

(서울=연합뉴스) 황재하 기자 = ▲ 내가 이런 데서 일할 사람이 아닌데 = 월급사실주의 동인 지음.
장강명 작가 주도로 결성된 소설 동인 '월급사실주의'가 내놓은 세 번째 단편소설집이다.
표제작은 시각장애인 작가 조승리의 단편소설로, 내가 꿈꾸는 일터는 어떤 곳인지 자문하는 근로자의 이야기다.
저시력 시각장애인인 주인공은 백화점 지하 3층에서 직원 복지를 위해 안마를 해주는 헬스 키퍼로 고용된다.
한때 정성을 다해 일했던 그는 갑질을 일삼는 백화점 직원들의 모습에 차츰 열정을 잃고 최소한의 원칙만 충족하며 일하게 된다. 그러던 중 마감 3분을 앞두고 온 백화점 직원을 원칙대로 3분만 안마한 뒤 돌려보냈다가 항의를 받는다.
근로자의 모습을 처연하게 묘사해 공감을 자아내는 동시에 불편한 '갑과 을'의 관계를 흥미롭게 그렸다.
단편집에는 이상문학상을 받은 예소연, 온라인 커뮤니티에 올린 소설이 화제가 돼 작가로 데뷔한 김동식이 소설을 실었다. 서수진, 윤치규, 이은규, 황모과, 황시운의 소설도 수록됐다.
예소연의 '아무 사이'는 노인을 돌보는 시니어 시터가 잠깐 한눈을 판 사이 돌보는 할머니가 사라지면서 벌어지는 한바탕 소동 이야기다.
김동식의 '쌀먹: 키보드 농사꾼'은 게임 머니를 팔아 먹고사는 주인공이 이용자 간 현금 거래를 막으려는 게임 회사에 맞서는 이야기를 다뤘다.
2023년 처음 단편집을 펴낸 월급사실주의 동인은 고단한 노동 현실을 살아가는 동시대 이웃의 모습을 소설로 담아낸다.
문학동네. 256쪽.

▲ 도시의 소문과 영원의 말 = 나인경 지음.
2021년 문학동네 신인상을 받은 나인경의 첫 장편소설로, 인간의 기억과 감정을 탐구하는 SF(과학소설)다.
가까운 미래, 인류는 초거대 기업 '유니언워크'가 개발한 ID 칩으로 인간의 뇌와 클라우드(가상 저장 공간)를 연결해 기억을 컴퓨터 파일처럼 저장하거나 삭제할 수 있게 된다.
'안'과 '정한'은 어린 시절 유니언워크의 생체실험에 희생된다. 안은 다섯 명의 의식을 동시에 주입받고, 정한은 반복해서 기억을 파편화하는 실험의 대상이 된다.
성인이 된 두 사람은 생체실험 후유증을 극복하기 위해 ID 칩 서비스를 받지만, 여전히 공허한 감정에 시달린다.
허블. 408쪽.

▲ 쌈리의 뼈 = 조영주 지음.
윤해환은 한때 밀리언셀러 작가였던 어머니 윤명자를 돌본다. 명자는 치매로 기억과 현실을 구분하지 못한다.
명자는 평택역 근처에 있던 옛 집창촌 '쌈리'를 배경으로 하는 소설 '쌈리의 뼈'를 쓰던 중 치매를 앓았고, 딸 해환에게 원고를 이어받아 완성해달라고 당부한다.
얼마 후 해환은 소설의 편집자로부터 "쌈리에서 진짜 유골이 나왔다"는 연락을 받고 혼란에 빠진다. 어머니가 쓰던 소설의 내용과 일치하는 일이 현실에서 벌어졌기 때문이다.
2016년 세계문학상을 받은 조영주의 신작 미스터리 장편소설이다.
크레용하우스. 25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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