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 안보, 광물협정으로 충분하다는 美…옛사례 보면 '글쎄'
연합뉴스
입력 2025-03-16 21:40:28 수정 2025-03-16 21:45:25
사우디와 석유·안보협정, 우크라와 핵폐기 협정도 제대로 작동 안해


우크라이나 지토미르 지역에 있는 티타늄 광산 [AFP 연합뉴스 자료사진]

(서울=연합뉴스) 김연숙 기자 = 도널드 트럼프 미국 정부가 안보 보장을 요구하는 우크라이나에 '최적의 방안'이라며 광물 협정 체결을 요구했지만, 과거 사례들을 보면 이를 그대로 믿기는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트럼프 정부는 광물협정을 맺으면 사실상 미국이 우크라이나 방어에 관여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말하지만, 미국이 과거 사우디아라비아와 맺은 석유·안보 협정에서 그 반면교사를 찾을 있다는 것이다.

15일(현지시간) 미 일간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제2차 세계대전 후 미국 석유 회사들이 사우디 내 원유 채굴에 뛰어들면서 미·사우디 간 안보 관계가 강화됐다.

미국이 사우디의 안보를 보장하는 대가로 사우디는 미국에 안정적인 석유 공급을 약속했다.

1980년 사우디가 에너지 산업을 국유화한 후에도 미국은 이 석유·안보 협정을 유지했다. 지미 카터 전 대통령은 미국의 군사력으로 사우디 석유 공급망을 보호하는 새로운 외교 정책 독트린을 도입했다.

1990년 이라크가 쿠웨이트를 침공, 사우디의 석유 시설이 위험에 처하자 미국은 사우디 방어를 위해 병력 50만명을 파견했다.

그러나 2019년 트럼프 대통령 집권 1기 사우디의 주요 석유 시설이 이란의 드론, 미사일 공격을 받았을 때 미국은 직접적인 대응을 하지 않고 넘어갔다.

미국은 이미 중동산 원유에 대한 의존도를 크게 줄인 시점이었고, 중동 내 계속된 갈등에 지친 기색도 있었다.

이를 계기로 사우디뿐만 아니라 다른 중동 국가들 역시 미국의 안보 지원에 대한 의구심이 커졌고, 결국 추가 안보 협력국으로 러시아와 중국을 떠올리게 됐다고 WSJ는 전했다.

[그래픽] 우크라이나 매장 주요 광물 (서울=연합뉴스) 김영은 기자 = 0eun@yna.co.kr X(트위터) @yonhap_graphics 페이스북 tuney.kr/LeYN1

우크라이나 사정과 비교하자면, 우크라이나는 미국이 중재하는 러시아와의 종전 협상에 앞서 미국과 광물협정을 논의 중이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당초 자국 내 모든 광물 협정에는 우크라이나에 대한 안보 보장이 포함돼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미 정부의 계속된 압박에 종국에는 명확한 안보 보장이 없더라도 광물 협정에 서명할 수 있다며 한발 물러났다.

JD 밴스 미 부통령은 이와 관련, 지난 3일 폭스뉴스에서 광물 협정이 우크라이나 안보 보장을 위한 최선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그는 "실질적인 안보 보장을 원한다면,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우크라이나를 다시 침략하지 않도록 실제로 확실히 하고 싶다면, 가장 효과적인 안보 보장은 우크라이나의 미래에 미국의 경제적 이점을 제공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현재 제안된 광물협정에 우크라이나 안보를 보장한다는 내용은 명시적으로 들어있지 않다.

미 싱크탱크 중동 연구소의 방문 연구원 그레그 가우스는 "우크라이나인들이 희토류에 대한 미국의 경제적 이익 때문에 미국의 암묵적 안보 보장에 의존할 수 있다는 주장은 그들의 안보에 너무나 빈약한 근거"라고 말했다.

지난달 28일 백악관에서 회담한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과 트럼프(오른쪽) 미국 대통령 [로이터 연합뉴스 자료사진. 재판매 및 DB 금지]

우크라이나는 이미 1994년 '부다페스트 양해각서' 체결 이후 쓰라린 경험을 한 바 있다.

우크라이나는 당시 미국, 영국, 러시아로부터 우크라이나의 영토 보전이나 독립을 무력으로 침해하지 않겠다는 보장을 받고 소련으로부터 물려받은 핵무기를 포기했다. 그러나 20년 후 러시아는 크림반도를 불법 병합했고 국제적인 저항은 거의 없었다.

게다가 우크라이나는 사우디와 비교해도 출발선부터 다르다는 분석이 나온다.

사우디의 석유와 미국의 안보는 '카터 독트린'이 나오기 수십년 전부터 긴밀히 얽혀 있었다.

반면 우크라이나의 자원은 외국 투자를 유치하는 데 상당한 장애물이 있으며, 전쟁 전에도 투자는 쉽지 않은 환경이었다. 또 현재 우크라이나 핵심 광물지의 40%는 러시아의 점령 아래 있다.

설사 미국 기업들이 우크라이나에 진출한다 해도 실제 운영을 시작하기까진 몇년이 걸리고, 이후에도 수익성이 보장되지 않는다면 미국의 안보 개입이 지속될지 불확실하다는 얘기다.

미국은 중남미, 동남아시아 등지에서 채굴 산업으로 안보 관계를 맺어왔다. 그러나 이는 보통 수십년에 걸쳐 자연스럽게 이뤄진다는 게 전문가의 설명이다.

국제위기그룹(ICG)의 미국 프로그램 책임자 마이클 와히드 한나는 아마도 우크라이나는 그렇게 많은 시간이 없을 것이고, 안보를 위한 광물 협정 메커니즘은 여전히 모호하고 구체화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또한,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이 해외 에너지원에 의존하지 않는 정책을 추진하겠다고 밝혀왔다. 현재 글로벌 자원 경쟁에서 주요 라이벌인 중국을 고려할 때 이는 핵심 광물 분야까지 확장될 가능성이 크다고 WSJ는 지적했다.

일각에서는 트럼프 대통령이 이미 공개적으로 러시아와의 거래 가능성을 언급한 만큼, 그가 푸틴 대통령과 또 다른 거래를 맺어 이번 광물협정을 무력화할 수 있다는 관측까지 나온다.

nomad@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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