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성근 등 한일 배우·학자 시 낭독…참가자들 '서시' 한목소리로 읊어
릿쿄대 총장 "존귀한 선배의 언어 접하길"…도시샤대는 명예박사 수여
릿쿄대 총장 "존귀한 선배의 언어 접하길"…도시샤대는 명예박사 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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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연합뉴스) 박상현 특파원 =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일본 도쿄 도시마구 릿쿄대 예배당에서 23일 오후 올해로 80주기를 맞은 일제강점기 저항시인 윤동주의 대표작 '서시'(序詩)가 울려 퍼졌다.
릿쿄대는 연희전문학교를 졸업한 윤동주가 일본에서 처음 다닌 대학이다. 그는 이곳에서 1942년 4월부터 반년간 공부했고 이후 교토 도시샤대에 편입했다.
릿쿄대가 이날 마련한 추도 행사 '시인 윤동주와 함께'는 예배로 시작됐다. 이 대학의 뿌리는 성공회 선교사가 세운 학교다.
참석자들은 국적과 연령에 관계없이 모두 20대에 세상을 떠난 윤동주를 추모하며 엄숙한 분위기 속에서 기도하고 설교를 경청했다.
나카가와 히데키 사제는 "일본 식민지 정책에 따른 탄압으로 한반도는 역사, 문화, 언어를 빼앗겼다"며 "윤동주는 그러한 절망 속에서 평화의 마음을 담아 여러 시를 한글로 썼다"고 말했다.
그는 "한국인에게 윤동주는 대체할 수 없는 사람"이라며 "그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지만, 지금도 대체할 수 없는 존재로서 그를 사랑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살아가고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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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배에 이어 한국인과 일본인 학자, 배우 등이 차례로 올라 윤동주의 시를 들려줬다.
윤동주가 릿쿄대 재학 시절 쓴 작품으로 "창밖에 밤비가 속살거려 육첩방은 남의 나라"로 시작하는 '쉽게 씌어진 시'와 '봄'에 이어 평양 숭실학교에 다닐 때 지은 '공상'과 '조개껍질'이 한국어와 일본어로 각각 낭독됐다.
특히 조개껍질은 윤동주와 고향이 같은 친구였던 고(故) 문익환 목사의 아들인 배우 문성근이 읽었다.
문성근은 부친이 윤동주를 그리워하며 남긴 시인 '동주야'를 낭독할 때는 감정이 북받치는 듯 한동안 입을 떼지 못했다.
일본 배우 니노미야 사토시와 성공회 유시경 사제가 윤동주의 '곡간'(谷間)을 읽은 뒤 낭독자를 포함한 예배당 내 모든 참가자는 '서시'를 한목소리로 읊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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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학자인 니시하라 렌타 릿쿄대 총장은 추도 예배와 낭독회에 이어 개최된 강연회에서 '내가 윤동주를 소중하게 생각하는 이유'를 주제로 강연했다.
니시하라 총장은 일본 성공회가 1996년 결의한 '전쟁 책임에 관한 선언'을 언급하면서 "일본 성공회는 전쟁 전과 전쟁 중에 일본에 의한 식민지 지배와 침략전쟁을 지지·묵인한 책임을 인정하고 그 죄를 고백한다"고 말했다.
그는 윤동주의 작품 중에 '서시'를 가장 좋아한다면서 자신의 은사가 '서시'를 해석한 내용을 소개했다.
니시하라 총장은 "하늘에는 신이 포함돼 있다"며 "한 점 부끄럼이 없다는 것은 창피를 당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양심에 창피함이 없다는 것"이라고 전했다.
그러면서 "릿쿄대 총장으로서 모든 릿쿄의 학생들이 이 존귀한 선배의 언어를 접하기를 바란다"고 덧붙였다.
앞서 도시샤대는 윤동주 기일인 지난 16일 교내 예배당에서 윤동주에게 명예박사 학위를 수여했다. 도시샤대가 고인에게 명예박사 학위를 준 것은 처음이었다.
윤동주는 도시샤대에 다니던 중인 1943년 조선 독립을 논의하는 유학생 단체 활동을 했다는 혐의로 일본 경찰에 체포됐고, 후쿠오카 형무소에서 해방 반년 전인 1945년 2월 16일 옥사했다.
psh59@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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