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편집자 주 = 한국국제교류재단(KF)의 2024년 발표에 따르면 세계 한류 팬은 약 2억2천5백만명에 육박한다고 합니다. 또한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초월해 지구 반대편과 동시에 소통하는 '디지털 실크로드' 시대도 열리고 있습니다. 바야흐로 '한류 4.0'의 시대입니다. 연합뉴스 동포다문화부 K컬처팀은 독자 여러분께 새로운 시선의 한국 문화와 K컬처를 바라보는 데 도움이 되고자 전문가 칼럼 시리즈를 준비했습니다. 시리즈는 매주 게재하며 영문 한류 뉴스 사이트 K 바이브에서도 영문으로 보실 수 있습니다.]
◇ 옷차림을 따뜻하게?
날이 추우면 날씨 방송에서 '옷차림을 따뜻하게' 하라고 한다. 이럴 땐 "옷차림, 든든히 하시는 게 좋겠습니다"가 더 바람직한 표현이다.
"먹은 것이나 입은 것이 충분해서 허전한 느낌이 없다"가 '든든하다'의 말뜻이다. 부모 세대 어르신들은 "날씨가 쌀쌀하니 옷을 든든하게 입어라" 하고 표현한다.
이게 더 의미에 걸맞고 정확하다.
참고로 '옷차림'은 아예 '옷차림하다'라는 동사도 있다.
"그는 항상 멋스럽고 계절에 걸맞게 옷차림하고 다닌다"라고 활용할 수 있다.
◇ 숫자 잘 읽기
숫자를 말할 때 가장 치명적인 오류는 고유어 식과 한자어 식 읽기의 결합이다. 그런 일은 특히 장·노년층이 본인의 나이를 말할 때 종종 발생한다.
"연세(춘추)가 어떻게 되세요?"
"나? 팔십 넷."
이런 경우다.
고유어식으로 말하면 여든넷 또는 여든네 살, 한자어식으로 말하면 팔십사 세(歲)라야 맞다.
젊은이도 예외가 아니다. 어느 일본산 자동차 광고에서는 '192개 사양'을 [백(배)꾸십두개]라고 읽고 있었다.
더불어 '향년'이라는 표현을 사용할 때는 향년 82[여든둘]이 정확하다. '향년 82세'처럼 '세'를 붙이지 않는 것이 원칙이기 때문이다.
30여억 원은 30억여 원보다 언제나 단위가 크다. 앞은 32∼36억 원 정도를 가리키고, 뒤는 30억 2천만∼3천만 원가량이기에 그렇다.
유의해야 할 발음도 있다. 30여 개는 [서르녀 개]가 아니라 [삼 시벼 개]다. '여'(餘) 앞에서는 한자어식으로 읽는다.
'개국'(個國) 앞에서도 한자어식으로 읽는 것이 일반적이다. 26개 국[스물려(서)섣깨국]이 아니라 [이:심뉴깨국]이 맞는다. 회사나 기업을 지칭하는 '개사'(個社) 앞에서도 마찬가지다.
"1일 앞으로 다가왔다", "2일 남았다"보다 "하루 앞으로 다가왔다", "이틀 남았다"라고 하는 것이 의미를 전달하는 데 더 효과적이고, 고유어를 사용한다는 면에서 윗길이다.
그러므로 3일보다는 사흘, 4일보다는 나흘, 5일보다는 닷새, 6일보다는 엿새가 더 나은 것이다.
그러나 7일은 '이레'와 비교했을 때 전달력과 고유어식의 가치가 충돌한다.
이럴 땐 전달력을 따른다. 8일도 같은 이유에서 '여드레'보다 우위에 선다. '아흐레'도 길고, 어렵게 들릴 수 있으니 9일이 좋다.
10일은 다시 고유어인 '열흘'이 비교 우위다. 10일은 음성화했을 때, 11일과 자주 헛갈리기 때문이다.
기본적으로, 수가 작으면 고유어식이 편하고 듣기 좋다. '사과 4[사]개'라고 읽는 것보다 '사과 네 개'라고 읽는 것이 자연스럽고 편리하다. '12곳' 같은 것도 [시비곧]은 어색하다. [열뚜 곧]이 바르다.
그러나 수가 커져 버리면 한자어식이 편하다. 점이지대가 백(百) 단위다. 이럴 땐 어떤 원칙은 없으나 전달력을 좇는 편이 좋다.
111표는 [백씨빌표]보다 [뱅녈한표]가 잘 들린다. 368명은 [삼뱅뉵씹팔명]이 [삼뱅녜순여덜명]보다 헛갈림이 덜하고 명확하다. 물론 때에 따라 다를 수 있다.
뒤에 오는 의존명사(불완전명사)가 고유어면 숫자도 대개 고유어식이 어울린다. '곳', '군데' 등이 그렇다. 반대로 의존명사가 한자어면 숫자도 대개는 한자어식이 입에 붙는다.
비행기는 단위별로 따로 읽고, 배(선박)는 합쳐 읽는다. 보잉 747은 [칠싸칠], 남해 580호는 [오백팔씨포]다.
기관, 단체 고유의 읽기 관습은 존중하는 것이 원칙이다. 군부 대는 부대 앞의 숫자를 한자어식으로 읽는다. 2∼3개 중대는 [두세개] 중대가 아니라, [이삼개] 중대다. 시각을 나타날 때, 예컨대 '23:46'은 [이:십쌈시 사:심뉵뿐]이다. 문학 작품 제목인 '25시'도 [이:시보:시]다.
'116' 같은 건 자주 나오며, 따라서 한 단어로 친다. 음운현상이 적극 개입하는 것으로 봐야 한다. [뱅녈려섣]으로 읽는 것이 [배결려섣]보다 감각적인 읽기이다.
'19' 같은 경우 [시꾸]로 소리 나지 않도록 유의한다. [십꾸]다. '십'의 'ㅂ'을 놓치지 않고 살려서 읽어야 한다.
◇ 되게
영어 'very'에 해당하는 우리 부사는 매우 다양하다. '매우', '무척', '퍽', '사뭇', '썩', '꽤', '제법', '자못', '대단히', '정말', '참', '상당히' 등.
이것을 맥락과 상황에 맞게 잘 가려 쓰면 그것만으로도 세련된 우리말 화자로 인정받을 만하다. 그런데 유독 '되게'가 일상 회화에서 지배적으로 쓰인다. 언중의 자연스러운 선택 차원에서는 인정해야 하는 측면도 물론 있다.
그러나 그것이 그저 대충 편한 것만을 좇는 세태를 따른 것이라면 교양 있는 화자로서 가려 쓰는 게 좋다. '되게'의 범람은 단연코 우리의 거친 말글살이의 반영이다.
가장 조악하고 비루한 'very'가 바로 '되게'다.
'그렇게 입으니 썩 잘 어울리는구나'
'우리 사회에는 매우 다양한 계층이 있습니다'
'친구 아버지 영정을 보고 나니 무척 슬펐습니다'
'직원들은 이번 조직 개편에 자못 기대가 큽니다'
'예기치 못한 상황에 맞닥뜨려 퍽 당황했을 거야'
'연습을 열심히 하더니 이제는 제법 잘하는구나'
'막상 가보니 듣던 것과는 분위기가 사뭇 달랐습니다'
위의 예문에서 'very'에 해당하는 여러 부사의 자리에 '되게'를 무턱대고 넣을 것인가.
말맛이 전혀 다르며 큰 틀에서 서툰 화법이다. 같은 맥락에서 '많이'도 문제다. 아무 때나 그저 쉽게 '많이'를 쓴다.
"내일은 많이 덥지 않겠습니다"는 도대체 어느 정도 덥단 말인가. 'too'를 무턱대고 '많이'로 옮기니 벌어지는 결과다.
"내일은 그다지 덥지 않겠습니다"가 자연스럽고 세련된 표현이다.
강성곤 현 KBS 한국어진흥원 운영위원
▲ 전 KBS 아나운서. ▲ 방송통신심의위원회 언어특위 위원. ▲ 전 건국대·숙명여대·중앙대·한양대 겸임교수. ▲ 전 정부언론공동외래어심의위원회 위원. ▲ 현 방송통신심의위원회 언어특위 위원. ▲ 현 가천대 특임교수.
* 더 자세한 내용은 강성곤 위원의 저서 '정확한 말, 세련된 말, 배려의 말', '한국어 발음 실용 소사전'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정리 : 이세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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