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수출 1위 러시아서 판로 막힌 밀, 北에 공급 가능성…주민에 라면은 귀한 음식
(서울=연합뉴스) 장용훈 기자= 북한이 분식 장려 조치의 하나로 라면 생산시설을 잇달아 확충하면서 '먹는 문제' 해결에 나서려는 모양새다.
이번 달에만 황해북도 사리원시와 남포시에 남쪽의 라면을 일컫는 '즉석국수' 공장이 건설돼 준공식 행사를 가졌다.
조선중앙통신은 지난 7일 "남포시에서 즉석국수공장을 새로 일떠세웠다"며 "생산공정의 자동화가 실현되고 위생안전성이 보장된 공장에는 물정제공정, 즉석국수생산공정, 조미료생산공정에 이르기까지 현대적인 생산설비들이 갖추어져 있으며 종업원들을 위한 문화후생시설도 꾸려져 있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즉석국수를 비롯한 여러가지 맛 좋은 식료품을 생산할 수 있는 공장이 일떠섬으로써 인민생활향상에 이바지할 수 있는 또 하나의 토대가 마련되게 되였다"고 평가했다.
라면공장 건설은 이들 두 지역뿐 아니라 북한 전역에서 핵심사업으로 진행되고 있고 함경북도 청진시에도 공장을 건설하고 있다.
중앙통신은 지난 3월 "각 도인민위원회들에서 즉석국수공장건설을 위한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며 "도들에서는 지역의 특성과 인구수에 맞게 공장부지와 생산능력을 확정하고 설계단위와 시공단위, 운영단위의 3자합의체계를 강화하는데 중심을 두고 즉석국수공장 건설과 관련한 준비를 심화시켜 나가고 있다"고 소개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2021년 최고인민회의 시정연설에서 "인민들에게 흰쌀과 밀가루를 보장함으로써 식생활을 문명하게 개선해 나갈 수 있는 조건을 지어주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같은 해 연말 노동당 전원회의에서는 결론을 통해 "우리 인민의 식생활 문화를 흰쌀밥과 밀가루 음식 위주로 바꾸는 데로 나라의 농업생산을 지향시키기 위한 방도적 문제들을 밝혔다"고 북한 매체들이 전했다.
전통적으로 쌀밥 위주의 식단에 익숙한 한민족의 식문화를 바꿔 부족한 쌀 대신 다른 작물을 통해 식량난을 극복해보겠다는 의지를 담았다.
이러한 방침에 따라 여러 지역에 라면 공장을 세우고 다양한 라면을 생산해 주민들의 먹는 문제를 풀겠다는 것으로 보인다.
사실 라면은 남한에서도 먹는 문제를 풀었던 중요한 음식이다.
1963년 일본의 인스턴트 라면을 참고한 삼양라면이 처음으로 등장해 1970년대 이후 보편화했다. 지금은 다양한 맛의 라면이 출시되면서 전 세계에 K-푸드를 알리는 첨병역할까지 하고 있다.
1970년대 라면이 대중화할 수 있었던 것은 미국에서 들여온 밀가루를 적극적으로 소비하려던 정부의 의지와 맞물린 결과이기도 하다.
북한이 밀가루 음식의 확대에 적극적인 것도 1970년대 남한과 마찬가지로 외부로부터 밀 반입이 쉬운 환경 때문으로 보인다.
북한과 러시아가 포괄적 전략적 동반자 관계 조약을 맺고 북한군의 러시아 파병이 이뤄질 만큼 북러관계가 밀착하는 상황에서 러시아로부터 밀 반입이 손쉬워진 상황을 염두에 둔 조치라는 얘기다.
러시아는 밀가루 수출의 종주국이다. 러시아는 세계 밀 수출시장의 20% 안팎을 점유하며 1위 수출국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그러나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국제사회의 제재를 받고 곡물을 거래하는 메이저 회사들이 러시아산 밀에서 손을 떼면서 판로가 악화하고 있다.
북한에 이런 환경은 싼값에 러시아산 밀을 들여올 기회가 됐다. 실제로 러시아는 작년 4월과 5월, 쿠즈바스 지역에서 생산된 밀가루 각각 1천280t, 1천276t을 북한에 수출했다.
특히 북한이 러시아에 포탄과 병력 등 군사적 지원을 하는 만큼 이에 대한 대가로 밀을 대규모로 받을 수도 있다.
한 탈북민은 "과거 북한에서 즉석국수는 생산량이 많지 않아서 귀하고 비싼 음식으로 받아들여졌다"며 "북한이 전국에 대대적으로 즉석국수공장을 만들어서 상대적으로 싼 가격에 공급한다면 주민들이 적극적으로 사 먹을 것이고 결과적으로 북한의 식문화 개선을 이끌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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