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부권까지 거론된 '노란봉투법' 대법 판결로 탄력받나


(서울=연합뉴스) 황윤기 기자 = 대법원이 15일 노동조합의 불법 쟁의행위에 따른 손해배상 책임을 조합원 개인에게 물을 때 신중해야 한다는 취지로 판결하면서 이른바 '노란봉투법'(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개정안)의 향방에 관심이 모인다.
더불어민주당과 정의당 등 야권이 추진하는 노란봉투법의 핵심 내용 중 하나는 노동조합의 쟁의행위에 따른 손해배상 책임과 관련해 3조2항을 신설하는 것이다.
법원이 단체교섭, 쟁의행위 등으로 인한 손해배상책임을 인정하는 경우 각 손해의 배상의무자별로 귀책 사유와 기여도에 따라 개별적으로 책임 범위를 정해야 한다는 내용이다.
지난해 대우조선해양 하청업체 노동자들의 파업에 사측이 낸 470억원의 손해배상 소송과 가압류를 계기로 정치권의 입법 논의에 속도가 붙었다.
야권과 노동계는 노동자가 단체행동에 참여했다는 이유로 거액의 손해배상 책임을 지는 것이 헌법상 노동3권을 위축한다며 입법을 추진했다.
반면 정부·여당과 경영계는 '불법 파업을 조장한다'며 반대해 왔다.
여야 입장이 평행선을 달린 끝에 야당은 올해 2월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에서 노란봉투법을 사실상 단독 처리했고, 지난달에는 본회의에 직회부했다.
국민의힘은 이에 맞서 헌법재판소에 권한쟁의 심판을 청구하고 윤석열 대통령의 재의요구권(거부권) 행사 건의까지 언급했다.
이처럼 첨예한 갈등이 해소되지 않은 혼란 속에 대법원이 이날 사실상 노란봉투법의 쟁점을 정면으로 다룬 판례를 내놓은 것이다.
대법원은 현대자동차가 2010년 발생한 파업과 관련해 비정규직지회 소속 조합원 4명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쟁의행위를 결정하고 주도한 노동조합과 개별 조합원의 손해배상책임 범위를 동일하게 보는 것은 헌법상 단결권과 단체행동권을 위축시킬 우려가 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 노동조합 내 지위와 역할 ▲ 쟁의행위에 참여한 경위와 정도 ▲ 손해 발생에 대한 기여 정도 ▲ 현실적인 임금 수준과 손해배상 청구 금액 등을 종합적으로 살펴야 한다고 판단했다.
이 사건의 원심판결이 그대로 확정됐다면 4명의 조합원이 20억원의 배상금과 지연손해금을 공동으로 물어내야 했다. 하지만 판결 취지에 따라 파기환송심에서 구체적 심리가 이뤄지고 나면 가담 정도가 낮은 조합원은 부담 액수가 대폭 내려갈 가능성이 크다.
노란봉투법이 입법되기도 전에 대법원이 '현행법에 대한 해석'으로 그 입법 취지를 구체화한 셈이다.
이날 대법원은 이 밖에도 파업에 가담한 노동자가 손해배상 책임을 덜 수 있는 근거가 되는 판결을 연달아 내놨다.
현대차가 제기한 다른 손해배상 청구 사건에서는 불법 쟁의행위에 따라 생산량이 줄었더라도 매출 감소로 연결되지 않았다면 손해액 산정 시 제외해야 한다고 판결했다.
쌍용자동차가 전국금속노동조합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사건에서도 파업 뒤 사측이 쓴 일부 비용을 손해액에서 빼야 한다고 판단했다.
파업에 대응해 기업의 과도한 손해배상 청구를 제한해야 한다는 노란봉투법 입법 취지와 어느 정도 겹친다고 할 수 있다.
대법원은 당초 현대차 관련 사건을 전원합의체에 회부했다가 소부 재판부로 돌려보낸 끝에 이날 판결을 내놨다.
사회적 갈등이 첨예한 사안을 놓고 입법권에 영향을 준다는 논란을 최소화하며 신속히 해법을 제시하려는 의도가 실렸다는 해석이다.
이날 대법원 판결에도 정치권과 재계·노동계의 대결은 지속될 전망이다.
노동계는 대법원 판결에 힘입어 노란봉투법의 입법까지 완료할 것을 촉구했다.
한국노총은 논평에서 "정부·여당은 신속히 사법부의 판단을 존중해 노란봉투법을 처리하라"고 주장했다.
반면 국민의힘 강민국 수석대변인은 "편향적 판결"이라며 "국민 피해를 가중하고 불법을 조장하는 노란봉투법을 반드시 막아낼 것"이라고 논평했다.
황용연 한국경영자총협회 노동정책본부장은 "손해배상 청구를 원천적으로 제한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며 "대법원 판결은 민법에도 부합하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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