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 전 제주공항 활주로 이탈 사고 필리핀 사고와 닮은꼴
소방구조대 24시간 비상 대기 "항공기 화재는 우리가 전문가"
소방구조대 24시간 비상 대기 "항공기 화재는 우리가 전문가"
[※ 편집자 주 = '공항'은 여행에 대한 설렘과 기대로 충만한 공간입니다. 그중에서도 제주공항은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그 의미가 각별합니다. 코로나19 팬데믹(pandemic·전염병의 세계적 대유행)을 지나 엔데믹(endemic·풍토병으로 굳어진 감염병)으로 이어지는 이 시대에도 '쉼'과 '재충전'을 위해 누구나 찾고 싶어하는 제주의 관문이기 때문입니다. 연간 약 3천만 명이 이용하는 제주공항. 그곳에는 공항 이용객들의 안전과 만족, 행복을 위해 제 일을 묵묵히 수행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연합뉴스는 비록 눈에 잘 띄진 않지만, 소금과 같은 역할을 하며 제주공항을 움직이는 다양한 직업군의 사람들 이야기와 공항 이야기를 2주에 한 차례씩 연재합니다.]
(제주=연합뉴스) 변지철 기자 = 며칠 전 필리핀 세부 막탄 공항에서 승객 162명을 태운 대한항공 여객기가 착륙 도중 활주로를 이탈하는 사고가 났다.
뉴스를 접한 사람들과 가족들은 과거 항공기 사고를 떠올리며 몸서리를 쳤겠지만,다행히 인명피해는 없었다. 위기 상황에서도 침착하게 대처한 승무원들과 사고 현장에 신속히 출동해 탑승객들을 구조하고 화재를 진압한 숨은 영웅들 덕분이다.
이착륙 과정에서 빈번하게 발생하는 항공기 사고의 특성상 공항에는 소방구조대원들이 24시간 비상대기한다.
26일 과거 발생한 항공기 사고 사례와 함께 공항 소방구조대원들의 역할을 알아본다.
◇ 끊이지 않는 항공기 사고
1994년 8월 10일 오전 11시 20분께 서울발 대한항공 2033편(A300-600기)이 제주공항에 착륙하려는 순간 강한 돌풍이 몰아쳤다.
대형 태풍 '더그'(DOUG)가 제주를 스쳐 지난 뒤였지만 상공에는 여전히 강한 바람이 불고 있었다.
승객과 승무원 160명을 태운 항공기는 돌풍에 중심을 잃고 굉음을 내며 활주로에 미끄러졌다.
기장이 착륙 당시 돌풍을 이기기 위해 정상속도(시속 약 270㎞)를 벗어난 시속 약 340㎞의 빠른 속도로 비행하며 무리하게 착륙을 시도한 탓에 사달이 난 것이다.
3천m가량인 제주공항 활주로의 중간을 넘어선 1천773m 지점에 바퀴가 지면에 닿았고, 비행속도를 고려했을 때 남은 활주로 길이는 턱없이 부족했다.
항공기는 속도를 줄이지 못하고 활주로를 벗어나 바깥담벼락을 들이받고 곤두박질쳤다.
일촉즉발의 상황이었지만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152명의 승객은 승무원들의 침착한 대처에 따라 질서정연하고도 신속하게 대피했다.
즉시 투입된 경찰과 소방구조대원 등이 승객들을 안전한 곳으로 이동시켰고, 탑승자들이 모두 대피한 뒤 2∼3분 만에 비행기가 폭발했다.
연료탱크에서 새어 나온 항공유에 불이 붙으면서 폭발로 이어진 것이다.
비행기는 화재로 전소됐지만, 160명의 승객과 승무원 중 9명 만이 가벼운 상처를 입었을 뿐 사망자는 단 한 명도 발생하지 않았다.
대피가 조금만 늦어졌어도 대형참사가 났을 뻔한 아찔한 순간이었다.
최근 발생한 필리핀 공항에서의 사고와 비슷하다.
인명피해가 없었음에도 제주공항에서 발생한 가장 큰 항공기 사고 중 하나로, 30년 가까이 지난 지금도 이 사고를 기억하는 사람들이 많다.
하지만 항공기 사고에서 이렇듯 인명피해가 없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제주공항 사고가 나기 불과 1년 전에는 다수의 목숨을 앗아간 대형 사고가 나기도 했다.
1993년 7월 26일 110명의 승객과 승무원을 태우고 서울에서 목포로 향하던 아시아나항공 B737-500 여객기가 전남 해남군 화원면 마천리 뒷산에 추락했다. 이 사고로 승객과 승무원 66명이 숨지고, 44명이 다쳤다.
B737기가 목포공항에 착륙하기 전 정상궤도를 이탈, 비행기 꼬리 부분이 산 능선에 부딪쳐 추락한 것이다.
사고 원인은 악천후 속에서 규정을 무시한 무리한 착륙강행과 관제사의 관제 미흡 등으로 최종 결론이 났다.
이외에도 크고 작은 항공기 사고는 연이어 발생했다.
국내 항공기 사고 기록을 보면 1980년 11월 대한항공 B747 김포공항 동체 착륙(15명 사망), 1981년 9월 대한항공 B747 필리핀 마닐라 공항에 이륙 중 철책 충돌(24명 부상), 1997년 8월 대한항공 B747-300 미국 괌공항 착륙 중 야산 추락(225명 사망, 29명 부상), 2013년 7월 아시아나항공 B777-200 미국 샌프란시스코공항 충돌(2명 사망, 수십명 부상) 등이다.
대부분 공항 내 이착륙 과정에서 발생한 사고였다.
◇ "3분 안에 현장 도착 인명구조"
"항공기 사고가 나면 3분 안에 현장에 도착해 사람을 구조하고 불을 끕니다."
한국공항공사 제주지역본부 소방구조대 대원들은 연합뉴스 인터뷰에서 당연하다는 듯 힘줘 말했다.
국제민간항공기구(ICAO)와 공항시설법은 공항 인근 8㎞ 이내의 항공기 사고에 즉각적으로 대처할 수 있도록 공항 내 각종 소방장비와 소방대원, 구조인력을 배치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한국공항공사에서 운영하는 14개 공항 중 공사가 소방대를 직접 운영 중인 곳은 8개 공항이다.
김포공항(10등급), 제주·김해·무안공항(9등급), 청주공항(8등급), 여수·양양·울산공항(7등급) 등이다.
나머지 대구·광주·사천·포항·군산·원주공항은 군에서 소방대를 운영하고 있다.
소방등급이 높을수록 크기가 큰 항공기가 이·착륙하는 공항이며, 소방등급에 맞는 소방인력과 장비 등이 갖춰져야 항공기 이·착륙이 가능하다.
항공기 사고가 발생했을 때 최초 소방차량 도착시간은 3분을 넘어선 안 된다.
많은 사람을 태우고 운항하는 항공기의 특성상 사고가 발생했을 때 짧은 시간 내에 수많은 인명피해를 초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양은호 한국공항공사 제주지역본부 에어사이드운영팀 차장은 "항공기 사고의 90% 가량이 이착륙 과정에서 발생하고 공중에 있을 때 사고는 10%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그는 "이착륙 5분 사이 공항 내 또는 공항 근처에서 사고가 날 확률이 매우 높아 공항에 소방대가 위치하면서 사고가 날 때 3분 이내에 도착할 수 있도록 만일의 상황에 대비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사고가 나면 일단 공항은 올스톱된다.
추가 사고를 막기 위해 착륙 예정인 항공기는 다른 주변 공항으로 이동하게 하고, 출발 예정인 항공기는 사고지점에서 최대한 안전한 곳으로 대피시킨다.
공항 소방대는 관제탑의 지시에 따라 전 인력과 모든 장비를 동원해 인명구조에 나선다.
제주공항 구조소방센터에는 총 60명이 4조 2교대로 24시간 근무하고 있다.
평일 주간에는 21∼22명이 근무하며 야간과 주말에는 일일 필수근무인원인 13명이 상시 근무한다.
제주국제공항에는 항공용구조소방차 4대, 물탱크소방차 1대, 구급차 1대, 지휘차 1대를 포함해 총 7대를 운영하고 있다.
소방대원들은 공항 내 항공기 사고 시 신속한 인명구조와 화재진압을 위해 비상출동훈련(일1회), 항공기사고처리훈련(연4회), 건물화재훈련(연4회), 공항 관숙훈련(주1회), 소방관서 합동화재진압훈련(연2회), 종합훈련(연1회), 실제화재훈련(연1회) 등을 실시해 비상상황 대비 태세를 갖추고 있다.
소방대원들은 "119소방대가 평소 화재가 발생할 때마다 자주 출동하며 고생하고 있어 그들의 실력이 월등하리라 생각한다"면서도 "항공기 사고 화재에 있어서는 공항소방구조대인 우리가 전문가"라고 자신감을 드러냈다.
bjc@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