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초연 열돌 기념공연 개막…올해 끝으로 무대·연출 변화 예고
뮤지컬 대중화 앞장섰지만 '스타 마케팅 부작용' 등 개선 과제 남겨
뮤지컬 대중화 앞장섰지만 '스타 마케팅 부작용' 등 개선 과제 남겨
(서울=연합뉴스) 임지우 기자 = 오스트리아의 마지막 황후 엘리자벳이 죽음과 입을 맞추는 순간, 무대 뒤에서 내려다보던 거대한 제국의 상징이 반으로 쪼개지며 떨어진다. 19세기 말 귀족들의 사치와 향락, 보수적인 황실의 관습 속에서 몰락에 다가가고 있던 왕조는 그 안에서 고통받던 엘리자벳과 함께 역사 속으로 사라진다.
지난달 30일 서울 용산구 블루스퀘어 신한카드홀에서 개막한 뮤지컬 '엘리자벳'은 실존 인물인 오스트리아 제국의 황후 엘리자벳의 일생을 기반으로 만든 뮤지컬이다. 1992년 오스트리아 빈에서 초연한 뒤 전세계에서 다양한 버전으로 만들어졌으며 한국에서는 2012년 처음 공연됐다.
원작을 기반으로 연출과 무대를 현지화해 새로 만드는 '논 레플리카' 방식으로 들여온 한국 '엘리자벳'은 '죽음'이 등장할 때마다 나오는 11m의 거대한 다리와 회전 무대, 3개의 리프트, 300여 벌이 넘는 화려한 의상 등으로 뮤지컬 팬들 뿐 아니라 일반 대중들 사이에서도 이름을 알리며 흥행에 성공했다.
올해 5번째 시즌으로 열리는 10주년 기념 공연은 초연 때부터 유지되어 온 이러한 연출을 만날 수 있는 마지막 무대다. 제작사 측은 이후 공연부터 무대와 연출, 의상 등에 대대적인 변화가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지난 2일 저녁 열린 '엘리자벳' 공연은 몰락해가는 제국의 분위기와 삶과 죽음, 광기 사이에서 아슬아슬한 외줄 타기를 해 온 엘리자벳의 일생을 흡입력 있게 풀어내며 '스테디셀러'의 힘을 입증했다. 화려한 무대와 의상은 눈을 떼기 힘들고 그 속에서 우스꽝스러운 춤을 추는 귀족들의 모습은 화려하지만 죽음과 부패에 가까워가는 몰락 왕조의 분위기를 완성해냈다.
이날 무대에 오른 옥주현은 초연부터 모든 공연에서 엘리자벳을 맡으며 얻은 '엘리자벳 장인'이라는 별명답게 자유롭게 뛰놀고 싶은 철없는 소녀부터 죽음과 광기로 현실도피를 하고 싶어하는 위태로운 심리상태, 아들의 죽음에 슬퍼하는 나이 든 어머니의 모습까지 모두 설득력 있게 그려냈다.
엘리자벳이 현실에서 도망치고 싶을 때마다 등장해 그녀를 유혹하는 가상의 인물 '죽음'(토드) 역으로는 배우 이해준이 무대에 올랐다. 이번 공연에서 처음으로 '죽음' 역을 맡은 이해준은 자신만의 해석으로 남성적인 매력이 가득한 '죽음'을 만들어냈다.
'엘리자벳'의 10주년 기념 공연은 개막 전 주인공 엘리자벳 역 캐스팅에 배우 옥주현이 개입했다는 의혹이 제기되기도 했다. 제작사인 EMK뮤지컬컴퍼니와 옥주현 측이 "캐스팅은 오디션과 원작자의 승인을 거쳐 이뤄졌다"고 해명하며 논란은 누그러들었지만, 뮤지컬 업계의 고질적인 스타 의존 관행을 돌아봐야 한다는 지적이 나왔다.
초연 때부터 옥주현, 김준수 등 인지도 높은 배우를 캐스팅하며 스타 마케팅을 적극 활용해 온 '엘리자벳'은 명과 암이 모두 있는 작품이다. 스타들을 내세워 뮤지컬 업계의 폭발적 성장에 상당한 기여를 한 동시에 이들에 대한 지나친 의존에 따른 부작용에 대한 책임에서도 자유로울 수 없기 때문이다.
이 작품은 극의 배경이 되는 19세기 오스트리아 제국과 헝가리의 독립 문제, 자유주의 혁명 같은 역사적 맥락에 대한 설명은 가사를 통해 소개하지만 이런 부분에 익숙하지 않은 관객에겐 다소 어렵게 느껴질 수 있다.
사실과 허구가 절묘하게 어우러진 탄탄한 서사와 입체적인 캐릭터, 무대 장치의 기발한 활용, 강렬한 음악과 배우들의 가창력은 작품의 완성도에 관한 이견이 들어설 자리를 좀처럼 내주지 않는다.
공연은 11월 13일까지 이어진다.
wisefool@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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