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 흘리는 가자지구, 오늘날의 '카르발라'…모든 날이 아슈라"
이맘 후세인의 비극 기리는 날…쇠사슬로 자기 어깨 때리며 그날의 고통 새겨
이맘 후세인의 비극 기리는 날…쇠사슬로 자기 어깨 때리며 그날의 고통 새겨
(테헤란=연합뉴스) 이승민 특파원 = "지금 가자지구에서 일어난 참극을 보세요. 오늘날의 카르발라입니다. 우리는 팔레스타인의 피를 기억해야 합니다"
8일(현지시간) 이란의 수도 테헤란 중심가 샤리아티 거리에서 만난 무슬림 나비드(61)씨가 목소리 높여 말했다.
검은색 상·하의를 입고 한 손에 쇠사슬 채찍을 든 나비드씨는 "이란인에게 아슈라는 단지 과거의 사건이 아니며, 소수에 대한 탄압에 저항하겠다는 의지를 보여주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굳은 표정의 나비드씨는 북소리에 맞춰 쇠사슬 채찍으로 자신의 어깨를 연신 내리쳤다.
이날 이슬람 시아파 최대 행사 아슈라를 맞아 테헤란 곳곳에서는 거리 행진, 성지 순례, 집단 기도 등과 같은 사람이 많이 모이는 의식이 치러졌다.
아슈라는 주류인 수니파와 소수인 시아파가 나뉜 역사적 사건인 '카르발라의 비극'을 기리는 날이다.
7세기 수니파 세력은 우마이야 왕조를 창건해 그 왕을 최고 종교지도자인 칼리프로 책봉했다. 소수인 시아파는 예언자 무함마드의 외손자이자 4대 칼리프 알리의 아들 후세인 이븐 알리를 따랐다.
수니파는 예언자 무함마드의 혈통이 아니더라도 합의로 칼리프에 오를 수 있다고 주장했으나, 시아파는 반드시 예언자와 알리의 직계여야 한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우마이야 왕조의 야지드 1세는 칼리프에 오른 뒤 후세인의 시아파 세력에 충성을 요구했다.
이를 거부한 후세인은 결사 항전을 택하고 지금의 이라크 중남부 카르발라에서 우마이야 왕조 군대와 맞붙는다.
하지만, 후세인은 현격한 군사력 차이로 처참하게 패한다. 수십 발의 화살을 맞고 전사한 후세인의 목은 베어져 수니파 칼리프 야지드 1세에게 보내졌다.
이맘 후세인의 비극적 전사는 시아파의 종교적 정체성을 설명하는 역사적 사건이 된다.
시아파 무슬림들은 매년 아슈라 때 쇠사슬 채찍으로 자신의 어깨를 때리며 이맘 후세인의 고통을 되새긴다.
이날 거리 행진에 참여한 호세인(66)씨는 "카르발라는 이란인들에게 충성을 의미하기도 한다"며 "특히 이 시기 어려움을 당하는 이웃을 우리는 잊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쇠사슬 채찍 의식에 참여하지 않는 여성들은 주변에서 거리 행진을 지켜봤다.
검은 차도르를 착용한 한 여성은 시민들에게 과일주스와 빵을 나눠줬다. 그는 어려운 이웃을 돌아보며 아슈라의 의미를 생각한다고 설명했다.
이날 테헤란 도심에는 '노헤'라는 장송곡과 북소리가 울려 퍼졌다. 거리 곳곳에는 팔레스타인을 지지한다는 내용의 현수막도 붙었다.
테헤란 중·북부 지역 주요 종교시설인 이맘 자데 살레 영묘에는 수천명의 추모 인파가 몰렸다.
올해 아슈라 기간에는 이스라엘군과 팔레스타인 무장단체 간 무력 충돌이 발생했다.
지난 사흘간 이어진 이스라엘의 막강한 공세로 가자지구에서는 15명의 아동을 포함해 44명이 목숨을 잃었다.
이란 국영 방송은 온종일 아슈라 추모 행사를 중계했다.
국영 IRIB 방송은 "팔레스타인, 아프가니스탄, 예멘, 카슈미르에서 지금도 무고한 피를 흘리는 사람이 많다"면서 "우리는 모든 날이 아슈라임을 기억해야 한다"고 전했다.
성직자 출신인 세예드 에브라힘 라이시 대통령은 이날 국영 방송을 통해 "시온주의자(이스라엘)들은 무방비 상태인 가자지구 주민들을 살해했다"며 "이란은 팔레스타인의 저항을 지지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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