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리 소설 원작…"단편문학 애니메이션화, 역사 채우는 작업"

(서울=연합뉴스) 오보람 기자 = 하얀 고깔을 쓴 무녀 모화(목소리 연기 소냐)가 신명 나는 굿판을 벌인다. 다른 한쪽에선 욱이(김다현)가 성경책을 펼치고 조용히 기도한다. 이토록 이질적인 풍경을 연출하는 두 사람은 모자지간이다.
영화 '무녀도'는 김동리가 쓴 동명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뮤지컬 애니메이션으로, 서로 다른 신을 섬기는 어머니와 아들의 갈등을 그렸다. '메밀꽃, 운수 좋은 날, 그리고 봄봄', '소나기' 등 한국 단편 문학을 소재로 한 애니메이션을 잇달아 내놓은 안재훈 감독이 연출했다.
안 감독은 15일 시사회 후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단편 문학을 영화화하는 것은 한국 애니메이션 역사에 없던 한 부분을 채우는 작업이라 생각한다"며 "하지만 콘텐츠 자체로도 재밌고 신선한 이야기로 느끼게끔 노력했다"고 말했다.
영화는 86분간 한국 고유의 멋과 정서를 쉴 새 없이 보여준다. 붉은 옷을 입은 채 칼춤을 추고 작두를 타는 무당의 모습에서는 섬뜩한 아름다움이, 격동의 시기인 1920년대 경주 곳곳의 모습에서는 처연한 아름다움이 느껴진다. 종이와 연필로 그림을 그리는 작화 방법이 고전미를 더했다.
전래동화를 읽는 듯한 내레이션과 생생한 경주 사투리 또한 특유의 분위기를 자아낸다.
무엇보다 팽팽한 대립 끝에 신문화(기독교)에 밀려 스러져가는 고유문화(무속 신앙)를 보여주며 한 세대의 종말과 허무함까지 담아냈다는 의미가 있다.
일종의 '한의 정서'가 돋보이는 이 작품은 애니메이션의 칸 영화제로 불리는 안시 국제애니메이션 영화제에서 '콩트르샹'(Contrechamp) 부문 심사위원 특별상을 받는 등 세계 관객에도 통했다.
안 감독은 "한국은 과거 갈등과 대립을 통해 지금까지 성숙해오는 과정이 있다. 그런 것을 제대로 봐주신 것 같다"며 "잘못하면 너무 한국적이고 틀 안에 갇힐 수 있을 텐데, 뮤지컬 형식 덕분에 외국 관객이 보기에도 불편함 없이 어우러졌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뮤지컬 배우 소냐, 김다현의 노래는 각자의 캐릭터를 극이 흥미롭게 전개되도록 돕는 동시에 각자의 캐릭터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신령님'을 믿는 모화 역의 소냐는 국악을 바탕으로 한 구슬픈 노래를, '예수님'을 믿는 욱이를 연기한 김다현은 성가와 뮤지컬이 혼합된 듯한 노래를 부른다. 특히 극 후반부 두 사람이 함께 부르는 '죄와 벌'은 한 치도 물러설 틈 없는 모자의 대립을 폭발력 있게 표현한다. 두 사람은 이 노래를 끝으로 파국을 맞는다.
안 감독과 단편 문학 프로젝트 작품을 함께해온 강상구 음악감독이 뮤지컬 넘버는 물론 OST(오리지널 사운드트랙)를 만들었다.
김다현은 "'무녀도' 노래를 들을 때마다 영과 혼이 깨끗해지고 죄를 지으면 안 될 거 같다는 느낌을 받으면서 저도 모르게 두 손을 모으게 된다"며 웃었다.
소냐는 "보통은 엔딩 크레디트가 나오면 나가는 관객이 많은데, '떠나가네'라는 노래가 나오면서 관객이 어디를 가지 못하고 끝까지 남아 있더라"고 영화제 당시를 회상했다.
소냐와 김다현은 한목소리로 "'무녀도'가 뮤지컬로 만들어지기를 바라고, 충분히 무대화할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다만 아쉬운 부분도 있다. 특히 욱이가 부르는 일부 노래는 너무 찬송가처럼 들려 몰입에 방해가 될 수도 있다.
내용 중에서도 일부 아쉬운 장면이 있는데, 친남매로 나오는 욱이와 낭이(안정아)의 근친상간 코드는 불편함을 유발한다. 낭이가 욱이를 안고 쓰다듬으며 사랑을 갈구하고, 욱이는 당혹해하면서도 심리적인 갈등을 겪는다. 원작에서도 관련 이야기가 짧게 나오긴 하지만 영화, 그것도 애니메이션에서까지 꽤 긴 신을 할애해 스킨십 장면을 보여주며 다룰 필요는 없지 않았을까.
오는 24일 개봉.
rambo@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