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의 중재자' 오만 중립외교 위기…美 '이란과 단교' 압박

(서울=연합뉴스) 임화섭 기자 = '중동의 중재자'로 불리며 두루 신뢰를 받아온 오만의 중립외교가 미국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협박에 직면해 시험대에 놓이게 됐다고 미국 일간 월스트리트저널(WSJ)이 보도했다.
최근 트럼프 행정부는 오만의 중립 행보에 노골적으로 적대감과 불신감을 표출하면서 미국과 이란 중 어느 쪽 편인지 확실히 하라며 양자택일을 압박해왔다.
WSJ는 미국 백악관이 오만에 대한 입장을 묻는 질문에 지난달 27일 내각 회의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한 발언을 언급했다고 전했다.
당시 트럼프 대통령은 호르무즈 해협 통과 선박들로부터 통행료를 받겠다는 이란의 구상에 오만이 협조할 경우 "날려 버리겠다"는 표현을 쓰면서 동맹국에조차 공습으로 응징하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호르무즈 해협은 이란과 오만 양국이 영해를 걸친 곳이다.
같은 날 스콧 베선트 미국 재무부 장관은 소셜 미디어로 오만이 호르무즈해협 통행료를 부과할 경우 제재를 가하겠다고 위협했다.
베선트 장관은 이 발언으로 파문이 인 다음날인 5월 28일 탈랄 알라비 주미 오만 대사가 통행료 징수 계획이 없다고 해명했다며 수습에 나섰다.
오만은 트럼프 행정부의 이런 갑작스러운 적대감 표출에 충격을 받고 대응 방안을 모색중이다.
그 중에는 아프리카행 비료 운반선의 안전 통항을 보장하는 등 호르무즈해협의 교통량 증가 지원에 앞장서고 있음을 알리는 대대적인 홍보전을 펴는 방안도 포함돼 있다고 WSJ는 전했다.

WSJ에 따르면 미국과 이란 사이에 전쟁이 일어났을 때 오만 당국자들은 이란 측과 물밑 대화 채널을 서둘러 구축했다.
이런 오만의 노력은 페르시아만 국가들의 항공 운항을 정상화하는 데 도움이 됐으며 이는 분쟁 와중에서 오만 정부가 확고히 중립성을 견지해 온 덕택에 가능했다는 것이 아랍 국가 관계자들의 평가였다고 WSJ는 전했다.
그러나 최근 미국 정부는 오만의 대(對)이란 접근법을 미국에 대한 적대적 행위로 해석하는 경향이 강해졌으며, 오만 측에 양자택일을 요구하며 이란과의 외교관계를 단절토록 압박하고 있다.
WSJ 취재에 응한 아랍 국가 관계자들에 따르면 전쟁 내내 오만 정부는 오랜 우방국인 미국과 호르무즈해협 건너편 이웃이자 중동 맹주인 이란 사이에서 줄타기를 해왔으며, 이는 항구적인 평화를 이끌어낼 가능성을 높이기 위해 고안된 전략이었다.
오만은 2015년 핵합의는 물론이고 작년과 올해를 포함해 과거 미국과 이란 간의 여러 차례 핵 협상에서 매번 중재자 역할을 맡았다.
미국 측 관계자들은 트럼프 행정부가 오만을 불신하게 된 계기로 올해 2월 말 미국과 이란의 핵 협상이 진행되던 와중에 오만 외무장관이 했던 인터뷰 발언을 꼽았다.

당시 바드르 빈 하마드 알 부사이디 장관은 CBS 뉴스의 시사 대담 프로그램에 출연해 "평화 합의가 우리 손이 닿는 곳에 있다. 외교가 목표에 도달하는 데 필요한 공간만 우리가 허용하면 된다. 외교가 아닌 어떤 대안도 이 문제를 풀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인터뷰가 방영된 것은 2월 27일로, 미국과 이스라엘이 이란을 기습공격하기 바로 전날이었다.
미국 정부 관계자들은 당시 이란이 자국의 핵 활동을 제한하겠다는 진지한 제안을 하지 않았으며 합의가 그 정도로 임박하지는 않았던 상황이라고 WSJ에 말했다.
그 후로 트럼프 행정부는 모든 외교 과정에서 오만을 배제하려고 시도해 왔다고 미국 정부 관계자들은 전했다.
오만은 자국 항구를 미국의 군사 물류 허브로 내주고 있으나, UAE, 카타르, 바레인, 사우디아라비아, 쿠웨이트와 달리 미군 기지는 유치하지 않았다.
만약 오만이 미국의 압박에 굴복해 이란에 등을 돌린다면, 다른 페르시아만 국가들과 마찬가지로 이란의 집요한 공격을 받을 위험이 크다.
WSJ는 또 오만의 이란 접촉이 미국뿐만 아니라 UAE와 사우디아라비아 등 역내 미국 동맹국들의 심기도 불편하게 만들었다고 지적했다.
오만은 이번 이란 전쟁에서 이란이 호르무즈해협을 지나는 선박을 공격하고 이웃 국가들에 미사일과 드론 공격을 할 때도 이란을 직접적으로 거명하면서 비판하지는 않았다.

사안에 정통한 한 관계자는 WSJ에 그렇게 하지 않는 것이 오만의 외교적 전통에 부합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오만도 전쟁 기간에 이란의 공격을 받기는 했으나, 그 빈도와 강도는 다른 이웃 국가들보다는 훨씬 낮았다
아랍 국가와 미국 관계자들에 따르면 전쟁 발발 초기에 오만 영토가 미군에 일부 군수 물자를 지원하는 데 사용됐다.
그러나 이 중 미국 관계자는 오만이 미국에 제공해 준 군사적 지원의 규모가 작았다고 말했다.
지난달에 아랍에미리트(UAE)의 주도로 다른 페르시아만 국가들은 호르무즈 해협에서 통행료를 징수하려는 이란의 움직임을 규탄하는 유엔 성명에 서명했으나, 오만은 이에 가담하지 않았다.
오만은 3월 초순 아야톨라 세예드 모즈타바 하메네이가 숨진 부친의 뒤를 이어 이란 최고지도자로 선출됐을 때 국가원수인 술탄의 명의로 축하 메시지를 보내기도 했다.
오만은 온건하고 타 교파에 관용적인 이슬람교 초기 분파인 '이바디파'가 주류인 나라이며, 시아파가 주류인 이란과도 수백년 전부터 관계를 유지해왔다.
오만과 미국은 1833년 우호통상조약을 체결했으며, 이는 페르시아만 아랍 국가가 미국과 이런 조약을 체결한 최초 사례였다.
solatido@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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