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종전 명분으로 '이란 440㎏ 고농축우라늄' 확보 노리나

(워싱턴=연합뉴스) 백나리 특파원 = 미국과 이란이 2주 휴전에 전격 합의한 가운데 이란이 보유한 440㎏ 고농축우라늄(HEU) 처리가 최대 쟁점으로 부상하고 있다.
일단 휴전으로 급한 불은 껐지만 종전과 승리의 명분으로 삼을 성과가 필요한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핵무기 원료가 될 수 있는 고농축 우라늄의 확보를 염두에 두고 있는 것으로 보여 휴전 중 협상의 전개 향방이 주목된다.
트럼프 대통령은 휴전 합의 다음날인 8일(현지시간) 소셜미디어 트루스소셜에 "(이란의) 우라늄 농축은 더 이상 이뤄지지 않을 것이며 미국은 이란과 협력해 깊숙이 파묻혀 있는 (B-2 폭격기) 핵 '먼지'를 파내고 제거할 것"이라고 밝혔다.
'B-2 폭격기'라는 표현을 삽입한 것으로 볼 때 작년 6월 미국이 B-2 폭격기로 공격한 이란 핵시설의 고농축 우라늄을 제거하겠다는 의중을 드러낸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전부터 지금까지 정밀한 위성 감시가 이뤄지고 있다면서 미국이 공격한 이후 아무것도 건드려지지 않은 상태라고 부연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게시물을 올리고 나서 40분 후 열린 브리핑에서 피트 헤그세스 미 국방장관은 지하에 있을 이란의 고농축 우라늄을 거론하면서 "트럼프 대통령이 제시한 대로 그들이 우리에게 그것을 넘겨주거나 우리가 직접 뭔가를 해야 한다면 가져올 것"이라고 말했다.
더 구체적인 언급을 하지는 않았지만 이란이 자발적으로 농축 우라늄을 미국에 넘기지 않을 경우 군사작전을 통해 확보할 가능성을 시사하며 이란을 압박한 것으로 풀이된다.
휴전 중 본격화할 미국과 이란 간 협상에서 미국이 이란의 고농축 우라늄 처리 문제를 집중적으로 제기할 가능성을 짐작하게 하는 대목이기도 하다.
'문명 파괴'까지 위협하다가 호르무즈 해협 일시 개방을 조건으로 2주 휴전을 수용한 트럼프 대통령으로서는 하루빨리 미국 국민에게 내세울 수 있는 확실한 성과를 한가지라도 확보해 이란 전쟁에서 발을 빼는 것이 급선무다.
5주가 넘는 전쟁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이란의 군사적 역량을 초토화했다고 주장하며 성과를 강조하고 있으나 호르무즈 해협 봉쇄로 인한 유가 상승에 직면한 미국 국민의 여론은 더욱 싸늘해지는 상황이다.
11월 중간선거를 앞둔 트럼프 대통령 입장에서는 어떻게든 이란 전쟁을 승리로 내세워 신속하게 마무리하고 지지율 회복을 통한 중간선거 승리에 집중해야 한다고 판단할 가능성이 크다.

이란 고농축 우라늄의 확보는 가장 가시적이면서, 정치적 상징성이 있는 성과가 될 수 있다. 핵무기 제조의 핵심 재료인 고농축 우라늄을 '제거'하는 동시에 미국으로 반출할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이란 핵위협 제거'의 상당한 성과로 내세울 수 있다.
전쟁 개전 직전까지 이뤄졌던 협상에서 미국과 이란은 어느 정도 고농축 우라늄 처리 논의에 진전을 이룬 것으로 알려졌다.
영국 일간 가디언에 따르면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사찰과 검증 하에서 이란이 60%까지 농축한 440㎏ 우라늄을 제거하는 데 공감이 이뤄졌다.
2015년 체결된 이란 핵합의(포괄적공동행동계획·JCPOA)와 달리, 이란 외부로 농축 우라늄을 반출하지 않고 저농축 우라늄으로 비가역 전환하는 방식이었다.
버락 오바마 미 행정부 당시의 이란 핵합의에서는 우라늄 비축량을 98% 감축하고 향후 15년간 최대 3.67%의 저농축 우라늄만 보유할 수 있도록 하는 동시에 초과 농축 우라늄을 러시아 등으로 반출하도록 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1기 행정부 시절인 2018년 오바마 전 대통령의 이란 핵합의 체결을 맹비난하며 탈퇴를 감행했기 때문에 2015년 합의보다 조금이라도 높은 수준의 성과를 달성해야 이란 전쟁의 정당성을 확보할 수 있다.
다만 이 같은 고농축 우라늄 처리가 협상을 통해 이뤄질지 여부는 제재 완화나 평화적 우라늄 농축 허용 같이 미국이 내줘야 하는 상응조치의 수준에 달려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이날 트루스소셜 게시물에서 "이란과 제재 완화를 논의할 것"이라고 밝힌 것도 이런 맥락이다. 제재 완화의 '당근'을 제시할 테니 농축 우라늄을 내놓으라는 의미로 읽힌다.
그러나 이란은 미국과 유엔의 제재 완전 해제와 중동 주둔 미군 철수, 전쟁 피해 배상 등을 요구하고 있다. 이란이 미국에 건넨 10개항 종전안에는 이러한 사항이 담겨 있는데 미국이 받아들이기 쉽지 않은 내용들이라 협상이 쉽지 않을 것이라는 게 중론이다.
다만 최고강도의 위협도 불사하던 트럼프 대통령이 2주간의 휴전을 덜컥 수용한 데서 보듯 종전 명분을 확보할 수 있다고 판단할 경우 주요 쟁점들이 모두 합의되지 않은 상태에서 전격적으로 협상 타결을 선언할 가능성도 있다.
미국과 이스라엘이 대이란 군사작전을 개시하기 이틀 전에는 이란에 부과한 제재의 80%를 해제하는 안에 미국과 이란 양측이 동의한 상태였다고 가디언은 전했다.
미국과 이란이 여러 쟁점에 대해 이미 합의한 상태라는 트럼프 대통령의 주장은 이렇게 전쟁 이전에 모색된 절충점을 기반으로 한 것일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미국이 협상 테이블을 갑작스럽게 엎고 전쟁을 개시했다는 변수를 이란으로서는 간과하기 어렵다. 자국에 대한 재공격 방지 보장은 물론이고 호르무즈 해협을 지렛대 삼아 출구 마련이 급한 트럼프 대통령을 상대로 최대한을 얻어내려 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는 이유다.
우라늄 235는 핵분열 물질로 20% 농축부터는 고농축 우라늄으로 본다. 60% 농축 우라늄은 대량으로 사용하면 그 자체로도 핵무기 생산이 가능한 '준무기급'이고 며칠간의 추가 농축을 통해 농축도가 90% 이상인 '무기급'으로 전환할 수 있다.
90% 농축 우라늄 25㎏이나 60% 농축 우라늄 42㎏이 있으면 핵폭탄 1개를 만드는 데 충분하다는 것이 IAEA의 평가다. 원자력 발전소 연료인 저농축 우라늄은 농축도가 3∼5% 정도다.
nari@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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