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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VIBE] 최만순의 약이 되는 K-푸드…갯벌 속 붉은 생명의 속삭임, 꼬막

연합뉴스입력
꼬막[연합뉴스 자료 사진]
[※ 편집자 주 = 한국국제교류재단(KF)의 2024년 발표에 따르면 세계 한류 팬은 약 2억2천500만명에 육박한다고 합니다. 또한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초월해 지구 반대편과 동시에 소통하는 '디지털 실크로드' 시대도 열리고 있습니다. 바야흐로 '한류 4.0'의 시대입니다. 연합뉴스 동포·다문화부 K컬처팀은 독자 여러분께 새로운 시선으로 한국 문화를 바라보는 데 도움이 되고자 전문가 칼럼 시리즈를 준비했습니다. 시리즈는 매주 게재합니다.]
꼬막 캐는 아낙[연합뉴스 자료 사진]
겨울에서 봄으로 넘어가는 바다에는 특별한 생명이 있다. 갯벌 속에서 조용히 숨 쉬며 살아가는 작은 조개, 바로 꼬막이다. 진흙 속에 묻혀 눈에 잘 띄지 않지만, 그 안에는 바다의 영양과 생명의 기운이 응축돼 있다.
꼬막비빔밥[연합뉴스 자료 사진]
꼬막은 우리나라 서해와 남해의 갯벌에서 주로 자란다. 껍데기 표면에는 기와 골처럼 굵은 방사선 모양의 주름이 있고, 그 속에는 붉은빛을 띠는 살이 들어 있다.
꼬막무침[연합뉴스 자료 사진]
대부분의 조개류는 산소를 운반하는 물질로 구리를 함유한 헤모시아닌을 지니지만 꼬막은 철을 함유한 헤모글로빈을 갖고 있다. 그래서 붉은 피가 흐른다. 영어 이름이 '블러드 코클'(Blood cockle)인 이유도 여기에 있다.
꼬막전[연합뉴스 자료 사진]
이 붉은 피는 산소가 부족한 갯벌 환경에서 살아가기 위해 산소 결합력이 높은 헤모글로빈을 발달시킨 결과다. 혹독한 자연에 적응하기 위해 스스로 몸을 바꾼 생명의 방식이 꼬막 속에 담겨 있다. 자연의 세계에서 살아남는다는 것은 힘이 강하다는 의미만이 아니다. 환경에 맞게 자신을 변화시키는 능력이 더 중요하다. 갯벌에서 꼬막을 채취하는 일은 예나 지금이나 대부분 아낙의 몫이었다. 길이 2미터 남짓한 널배를 타고 갯벌을 밀며 꼬막 채로 바닥을 긁어 올린다. 겨울바람을 맞으며 허리까지 빠지는 진흙 속에서 일하는 작업은 매우 고된 노동이다. 그러나 그 속에서 얻어지는 작은 조개 하나가 한 가족의 밥상이 되고 삶을 이어주는 생명이 된다. 이것이 바다와 인간이 함께 살아온 우리 해안 문화의 모습이다. ◇ 꼬막의 영양학 약선학에서는 꼬막을 '이감'이라 부른다. 성질은 따뜻하고 맛은 달며 독이 없다고 한다. 비장과 위장을 보하고 간의 기혈을 돕는 음식으로 기록돼 있다. 고전 의서인 '본초경소'에는 다음과 같은 기록이 있다. "감(꼬막)은 맛이 달고 성질이 따뜻하다. 달고 따뜻한 기운은 기를 보하고 중초를 따뜻하게 한다." 양생에서 음식은 영양 공급만이 아니라 몸의 균형을 맞추는 중요한 수단이다. 꼬막은 특히 세 가지 효능이 있다고 알려져 있다. 기혈을 보하고, 위장을 따뜻하게 하며, 어혈을 풀어 혈액 순환을 돕는다. 따뜻한 성질을 지닌 꼬막은 겨울에서 봄으로 넘어가는 환절기에 특히 좋은 음식으로 여겨진다. 현대 영양학 역시 꼬막의 가치를 높게 평가한다. 꼬막 100g에는 약 70~90㎉의 열량과 약 13g의 단백질이 들어 있다. 지방은 적고 단백질은 풍부해 건강식으로 적합하다. 특히 철분 함량이 높다. 꼬막에는 약 20㎎의 철분이 들어 있어 조개류 가운데에서도 많은 편이다. 철분은 적혈구 생성에 중요한 역할을 하므로 빈혈 예방에 도움을 준다. 또한 비타민 B12가 풍부하다. 이 영양소는 신경계 건강과 혈액 생성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여기에 아연과 셀레늄 같은 미량 미네랄, 타우린 같은 생리 활성 물질도 포함돼 있어 간 기능과 면역 기능을 돕는다. 최근 연구에서는 이러한 성분들이 간 해독 작용과 심혈관 건강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고 보고한다. 꼬막은 우리 생활문화 속에 깊이 자리 잡은 음식이기도 하다. 전라남도 일부 지역에서는 정월 대보름에 꼬막을 먹는 풍속이 전해 내려온다. 이날 꼬막을 먹으면 한 해 농사가 잘된다고 믿었다. 어떤 지역에서는 꼬막을 까서 속살의 상태를 보고 그해 농사의 풍년과 흉년을 점치기도 했다. 바다의 조개로 농사를 점친 이유는 자연을 바라보는 우리 조상의 인식과 관련이 있다. 바다와 땅은 따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생명 순환 속에 있다는 생각이다. 바다가 풍요로우면 땅도 풍요롭고, 땅이 건강하면 바다도 건강하다는 믿음이다. 도교의 양생학에서도 음양의 균형을 중요하게 본다. 갯벌은 바다의 물과 땅의 흙이 만나는 곳이다. 밀물과 썰물이 교차하며 생명이 자라난다. 이런 환경 속에서 자라는 꼬막은 자연의 음양 기운을 함께 품은 음식으로 여겨진다. 그래서 기혈을 보하고 몸을 따뜻하게 하는 음식으로 평가된다. 갯벌 속에서 자라는 생명은 강한 적응력을 지닌다. 양생학에서는 이런 생명력이 사람의 몸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준다고 본다. ◇ 손자병법으로 본 꼬막 요리 꼬막을 가장 맛있게 먹는 방법은 의외로 간단하다. 깨끗이 씻은 꼬막을 물을 붓지 않고 그대로 냄비에 넣어 익히는 것이다. 그러면 꼬막 속 수분으로 익으면서 바다 향이 그대로 살아난다. 여기에 간장과 마늘, 참기름, 고추를 섞은 양념장을 얹으면 훌륭한 음식이 된다. 꼬막은 비빔밥, 전, 무침 등 다양한 요리로도 활용된다. 다만 조개류는 반드시 충분히 익혀 먹는 것이 좋다. 또한 퓨린 함량이 비교적 높기 때문에 통풍이 있는 사람은 과다 섭취를 피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꼬막은 크지 않은 작은 조개다. 그러나 그 안에는 바다와 갯벌, 그리고 인간의 삶이 함께 담겨 있다. 갯벌에서 자라는 생명과 그것을 채취하는 사람들의 노동, 그리고 밥상 위에서 이어지는 생명의 순환이 모두 꼬막 속에 담겨 있다. 우리 조상은 이런 음식을 먹거리만이 아닌 자연과 함께 살아가는 지혜로 이해했다. 꼬막은 여러 가지 요리로 변한다. 살짝 데쳐 초고추장에 찍어 먹는 꼬막회, 양념과 버무린 꼬막무침, 달걀옷을 입혀 지진 꼬막전, 그리고 밥과 함께 비벼 먹는 꼬막비빔밥이다. 이 네 가지 요리를 보면 손자병법의 '군형'(軍形)의 장이 떠오른다. 군형은 전쟁에서 이기는 형세를 만드는 전략을 말한다. 손자는 승리는 먼저 만들어 놓고 싸운다고 했다. 싸움은 전장에서 갑자기 이기는 것이 아니라 이미 이길 수 있는 형세를 만들어 놓은 뒤 시작된다는 뜻이다. 꼬막회는 가장 간단한 요리다. 삶은 꼬막을 껍질에서 꺼내 초고추장에 찍어 먹는다. 조리법은 단순하지만, 맛은 깊다. 좋은 재료와 정확한 조리만으로 충분한 맛이 완성된다. 군형의 첫 번째 원리는 기본이다. 강한 군대는 화려한 전술보다 기본적인 질서를 완벽하게 유지한다. 꼬막무침은 여기에 변화를 추가한다. 삶은 꼬막에 간장, 마늘, 고추, 참기름 등을 넣어 버무리면 같은 재료라도 전혀 다른 맛이 된다. 손자는 군대의 형세를 물에 비유했다. 물은 높은 곳을 피하고 낮은 곳으로 흐르며 상황에 따라 형태를 바꾼다. 전략에서 형세란 고정된 것이 아니라 변화하는 것이다. 꼬막전은 방어의 형세에 비유할 수 있다. 꼬막살에 밀가루와 달걀옷을 입혀 지지면 겉은 부드럽고 속은 쫄깃하다. 달걀옷은 열을 완화하고 속의 맛을 지켜주는 보호막이 된다. 손자는 승리를 잘하는 사람은 먼저 패하지 않는 형세를 만든다고 했다. 공격보다 먼저 해야 할 일은 무너지지 않는 구조를 만드는 것이다. 꼬막비빔밥은 여러 재료가 하나로 어우러지는 음식이다. 밥 위에 꼬막과 채소, 양념을 얹어 비비면 조화로운 맛이 완성된다. 군형의 궁극적인 목표 역시 여러 요소를 하나의 힘으로 통합하는 데 있다. 병사와 지형, 전략과 사기가 결합할 때 강한 군대가 된다. 꼬막은 작고 평범한 조개다. 그러나 그 안에는 자연의 질서와 인간의 지혜가 함께 담겨 있다. 꼬막회는 기본의 힘을 보여주고, 꼬막무침은 변화의 조화를 말한다. 꼬막전은 방어의 구조를 보여주고, 꼬막비빔밥은 통합의 완성을 상징한다. 전쟁이든 사업이든 삶이든 먼저 해야 할 일은 이길 수 있는 형세를 만드는 것이다. 형세가 만들어지면 승리는 자연스럽게 따라온다. 갯벌 속 작은 꼬막 한 접시에도 자연과 인간이 함께 살아온 긴 이야기가 담겨 있다. 우리의 밥상은 저속노화의 지혜를 배우는 작은 학교이기 때문이다.

최만순 음식 칼럼니스트

▲ 한국약선요리 창시자 ▲ 한국전통약선연구소장 ▲ 중국약선요리 창시자 팽명천 교수 사사 후 한중일 약선협회장 역임

<정리 : 이세영 기자>

seva@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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