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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의날] "'이모님'도 '아줌마'도 아닙니다…저는 '건설노동자'입니다"

연합뉴스입력
건설업 종사자 16% 여성이지만…남성 중심 문화 속 차별 여전 화장실 부족에 안전장비도 맞지 않아…경기침체 국면서 실직 우려도
8년차 여성 건설노동자 이윤희 씨[이윤희 씨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연합뉴스) 최원정 기자 = "여자니까 당연히 못 할 것이라는 인식이 가장 큰 어려움이죠. 어느 날은 못 주머니를 던져버리고 집으로 가고 싶다는 생각도 했어요."

건설 현장에서 4년째 '형틀목수'로 일하고 있는 박명희(53)씨는 연합뉴스와 통화에서 한숨 섞인 쓴웃음을 지었다. 박씨는 "저 자신이 참 쓸모없는 사람처럼 느껴지는 '현타'(현실 자각 타임)도 겪어야 했다"고 토로했다.

'세계 여성의 날'을 이틀 앞둔 6일 통계청에 따르면 2024년 기준 전국 건설업 종사자 186만1천94명 중 16.7%(31만1천353명)는 여성이다. 그러나 여전히 남성 중심의 건설 현장에서 여성들의 노동 환경은 열악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화장실이 제대로 갖춰져 있지 않은 탓에 여성 노동자들은 기본적 생리 욕구도 해소하기 어렵다. 현행 건설근로자법은 화장실 대변기를 남성 노동자 30명당 1개 이상, 여성 노동자 20명당 1개 이상을 건설 현장 300m 이내에 설치하도록 규정하고 있으나 이를 지키지 않는 곳이 허다하다는 설명이다.

화장실 사용이 어렵다 보니 일부러 물을 마시지 않는 습관이 붙었고 방광염과 변비 등 질병에도 쉽게 노출됐다. '눈치'는 여성 노동자들의 화장실 이용을 가로막는 또 다른 장벽이기도 했다.

8년째 해체 작업 현장에서 일하는 이윤희(45)씨는 "남성들은 군데군데 간이 소변기가 설치돼있어 볼일을 볼 수 있으나 여성들은 왔다 갔다만 하는 데도 10∼15분이 걸린다"며 "현장 소장들이 '이래서 여자들은 쓰면 안 된다'고 하니 무시당하고 싶지 않아 화장실을 안 가고 참는다"고 말했다.

25년차 타워크레인 기사인 김경신 민주노총 건설산업연맹 부위원장도 "20년 동안 화장실을 설치하라고 떠든 덕에 대규모 건설 현장은 많이 좋아진 건 사실"이라면서도 "화장실 개수가 아직 턱없이 부족한 데다 남성 중심의 '빨리빨리' 문화가 겹치며 여전히 열악하다"고 했다.

건설 현장의 열악한 여자화장실(서울=연합뉴스) 한 건설 현장의 여자 화장실. 건설노동자 이윤희 씨는 세제와 물을 소량의 물을 섞어 만든 거품을 이용하는 이동식 화장실인 '포세식 화장실'이지만 거품이 나오지 않는다고 전했다. 남성이 들어오는 경우도 부지기수라고 한다. [이윤희 씨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남성 신체를 기본값으로 설계돼 여성에게 너무 큰 안전 보호 장비는 바느질해 크기를 줄이거나 사비를 털어 자신에게 맞는 제품을 구입하기도 한다.

박씨는 "특히 안전벨트는 가장 중요한 장비이기 때문에 제게 맞는 제품을 사서 현장에 들어간다"며 "회사에서 이런 문제를 인지하고 따로 지원했다는 이야기는 들어본 적이 없다. 장비를 지급했으니 더 책임지지는 않겠다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성희롱과 차별도 여전히 만연하다. '이모님'이나 '여사님'이라 부르는 건 그나마 격식을 차린 것이고 다짜고짜 '아줌마'라고 호통치듯 부르는 일부 남성 노동자들 탓에 자존심도 상한다.

한 건설 현장에서 해체팀장을 맡고 있는 이씨는 "일부 소장들은 '여자가 무슨 팀장이냐. 낙하산으로 떨어졌느냐'는 비하 발언도 스스럼없이 한다"며 "여기까지 올라오면서 많은 손가락질을 받아야 했고 지금도 견디고 있다"고 털어놨다.

건설현장 타워크레인[촬영 정회성]

수년간 거친 현장에서 일하며 잔뼈가 굵은 '빠꿈이'들도 여성이라는 이유로 작업에서 제외되는 건 도저히 받아들이기 힘든 경험이다. 이들은 건설 경기 침체가 장기화하며 여성 노동자가 가장 먼저 일자리를 잃었다고 불안감을 호소했다.

건설근로자공제회에 따르면 지난해 11월 하루 이상 건설 현장에서 일한 적이 있는 여성 노동자는 6만405명으로 전년(7만4천145명) 대비 24.4% 감소했다. 같은 기간 남성 노동자의 감소율은 19.2%로 여성보다 5.2%포인트 낮았다.

쉽게 사라지지 않는 차별과 편견에도 여성 노동자들은 자신이 흘린 땀으로 누군가의 보금자리를 만든다는 자부심으로 건설 현장을 지키고 있다.

이씨는 "여성 노동자의 처우 개선을 위한 작은 불씨라도 일으키겠다는 마음으로 이 악물고 팀장까지 올라왔다"며 "여성 노동자를 보조 인력이나 상징적 존재로 취급하는 관행을 바꾸고 싶다"고 힘줘 말했다.

"앞으로도 계속 건설 현장에서 일할 것인가"라는 기자의 질문에 박씨는 "체력이 닿는 한 당연히 계속 일할 것"이라며 환한 목소리로 답했다.

"콘크리트를 쏟아부을 거푸집을 만들고 모양대로 딱 형태가 나올 때 성취감이 정말 큽니다. 성과가 바로 보이다 보니 내가 이 건물을 만들었다는 사실에 자부심을 느끼고 있어요."

아파트 건설 현장[연합뉴스TV 캡처]

away777@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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