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유 생명선' 끊겼다…호르무즈 봉쇄에 비상 걸린 아시아 경제(종합)

(베이징·도쿄·하노이=연합뉴스) 한종구 박상현 박진형 특파원 = 이란 이슬람혁명수비대(IRGC)가 호르무즈 해협 봉쇄에 나서면서 원유 수급을 중동에 의존해 온 중국과 일본, 인도, 동남아 등 아시아 각국이 경제·물류에 큰 타격을 받게 됐다.
호르무즈 해협은 전 세계 원유 해상 수송량의 약 20%를 차지하는 에너지 요충지로 이 해협을 통과한 원유의 80%는 중국, 일본 등 아시아로 향한다고 요미우리신문이 2일 전했다.
따라서 호르무즈 해협 봉쇄가 장기화할 경우 아시아 전체가 에너지 안보 문제에 직면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이에 중국과 일본은 중동 정세를 주의 깊게 지켜보면서 대응책 마련에 고심하고 있다.
또 최근 러시아산 원유 수입을 크게 줄이고 중동산 원유 의존도를 매우 높인 인도는 다급해진 상황 속에 러시아산 수입 재개 카드마저 만지작거리는 것으로 알려졌다.
◇ 이란 원유 수출량 80%, 中으로…美·이스라엘 비판하며 우려 표명
세계 최대 원유 수입국인 중국은 이번 사태가 자국 경제에 미칠 파장을 면밀히 주시하고 있다.
중국은 러시아와 함께 이란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해 온 국가로 꼽힌다.
중국과 이란은 2016년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테헤란 방문을 계기로 포괄적 전략 동반자 관계를 수립한 이후 외교·경제 협력을 확대해 왔다.
특히 에너지 측면에서 중국은 이란산 원유의 최대 구매국으로 알려졌다.
에너지 분석업체 케이플러의 분석에 따르면 중국은 지난해 이란 원유 수출량의 80% 이상을 구매했다.
중국은 이란산 원유를 하루 평균 138만 배럴 구매했는데 이는 중국이 해상으로 수입한 총원유량 1천27만 배럴의 약 13.4%에 해당한다.
지정학적 충격이 중동 전반으로 확산할 경우 문제는 심각해진다.
중국 세관 통계에 따르면 2024년 중국은 소비한 석유의 약 75%를 수입에 의존했으며 이 가운데 약 44%가 중동산이었다. 중국 원유 수입량의 약 3분의 1은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한다고 블룸버그 통신이 전했다.
다만 중국은 2025년 전략 비축유를 확대하고 원유 수입량을 4.9% 늘리는 등 일정 부분 완충 장치를 마련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호르무즈 해협이 오랫동안 봉쇄돼 해상 운송에 차질이 빚어질 경우 원유 공급 불안과 가격 급등을 피하기 어려울 것으로 관측된다.
또 중국이 화학 원료의 상당 부분을 이란에서 수입한다는 점에서 관련 산업의 타격 우려도 제기된다. 중국 경제매체 신랑재경에 따르면 중국 메탄올 수입의 45%, 폴리에틸렌(PE) 수입의 10%가 이란산이다.
이 매체는 해당 원료가 요소, 플라스틱, 화학섬유, 코팅제 등의 필수 원료라는 점에 주목하면서 "호르무즈 해협 폐쇄는 유가 상승뿐 아니라 원자재 공급 차질, 비용 급증, 물류 마비의 삼중 충격으로 나타날 것"이라고 관측했다.
이어 "기초 화학·정유 부문이 가장 직접적 타격을 받고, 정밀화학과 최종 제품 부문도 간접적 영향을 받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밖에 중국국제금융공사(CICC)도 연료비와 운임 변동으로 항공 운송·해운 물류 분야가 타격을 입는 한편, 상황이 장기화할 경우 글로벌 수요 변화로 중국 수출 시장 전반에 영향이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 日해운사, 호르무즈 운항 이미 중단…"GDP 최대 3% 하락" 관측도
일본은 과거 이란에서 많은 원유를 수입했으나, 점차 비중을 줄여 왔다.
하지만 2024년 원유 수입 통계를 보면 일본은 원유 수입량의 95.9%는 중동에 의존하고 있다. 수입 점유율은 아랍에미리트(UAE) 43.6%, 사우디아라비아 40.1%, 쿠웨이트 6.4%, 카타르 4.1% 등이다.
일본의 3대 해운사인 닛폰유센(NYK), 상선미쓰이, 가와사키기선은 자사 선박의 호르무즈 해협 운항을 이미 중단했다. 이들 해운사는 페르시아만 내에 있는 선박에 안전한 해역으로 대피할 것을 지시했다.
일본은 작년 12월 기준으로 정부와 민간을 합쳐 소비량의 254일분에 해당하는 원유를 비축해 둔 상태였다. 액화천연가스(LNG)는 3주 소비량을 비축한 것으로 알려졌다.
마이니치신문은 호르무즈 해협 봉쇄와 관련해 "육로를 포함한 대체 경로는 제한적이어서 원유 공급에 심각한 지장이 생기고 가격 급등을 피할 수 없을 것"이라고 해설했다.
NHK에 따르면 민간 싱크탱크인 일본종합연구소(JRI)의 도가노 유키 연구원은 "호르무즈 해협이 봉쇄될 경우 최근 배럴당 67달러 수준이었던 원유 가격이 120달러 수준까지 급등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그는 "최악의 경우 원유 수입을 중동에 의존하는 일본 국내총생산(GDP)을 약 3% 하락시킬 수 있다"고 추정했다.
노무라종합연구소의 기우치 다카히데 연구원은 원유 가격이 배럴당 140달러까지 급등하면 일본 GDP는 0.65% 줄어들고 물가는 1.14% 오를 것으로 전망했다.
호르무즈 해협 봉쇄는 원유뿐만 아니라 일본 교역 전반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도 있다. 일본 해운사들은 이 해협을 통해 LNG와 자동차 등을 운반하는 선박도 운항해 왔다고 요미우리가 전했다.
다카이치 사나에 총리는 이날 중의원(하원) 예산위원회에서 원유 수급과 관련해 "안정적 공급 확보에 만전을 기하고 국민 생활과 경제 활동에 미칠 영향을 최소한으로 억제하기 위해 필요한 대응을 강구할 것"이라고 말했다.
NHK는 "엔화 약세가 지속되는 가운데 국제 원유 가격이 급상승하면 휘발유 가격을 비롯한 여러 상품 가격이 오를 수 있고 주가 등 금융시장 불안정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우려도 있다"고 전했다.

◇ 인도, 원유 수입량 거의 절반 차질…동남아는 관광업 타격 가능성
인도는 미국과 무역협상 타결로 러시아산 원유 수입을 거의 중단하고 중동산 수입을 크게 늘린 상황에서 호르무즈 해협 봉쇄로 상당한 타격을 받게 됐다.
호르무즈 해협 차단으로 인도 원유 수입량의 40% 이상이 운송 차질을 겪을 것으로 예상된다고 로이터가 전했다.
또 케이플러에 따르면 인도로 공급되는 LNG의 거의 3분의 2, 액화석유가스(LPG)의 약 95%가 중동에서 오는데 대부분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한다.
인도는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러시아산 원유 최대 수입국이었지만, 지난달 초순 미국과 잠정적 무역협정 틀에 합의했다.
이후 인도는 러시아산 구매량을 최소 수준으로 줄이고 부족분을 대부분 중동산으로 충당해왔다.
그러나 이번 사태로 원유 거래가 차질을 빚고 있으며 중동으로 향하는 화물 운송이 중단되는 등 상황이 매우 불안정하다고 인도 정부의 한 고위 관계자가 블룸버그에 전했다.
인도 인더스인드 은행의 가우라브 카푸르 이코노미스트는 유가가 배럴당 80달러 이상 수준을 유지하면 인도의 경상수지 적자가 약 100억 달러(약 14조6천억원) 확대되고 인도 루피화에 약세 압력을 가하면서 연료 물가 상승을 초래할 수 있다고 밝혔다.
이와 관련해 블룸버그에 따르면 지난 주말 인도 정부와 국영 정유업체 관계자들이 회의를 갖고 비상 대책을 논의했으며, 러시아산 원유 수입 재개 방안도 검토 중이다.
인도 석유·천연가스부 관계자들은 현재 민간과 정부의 전략 비축량을 합해 석유 재고가 최대 2주치 수준이라면서 외교부에 대미 협상을 촉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따라 정유기업들은 약 6일치인 전략 비축량 활용, 베네수엘라산 원유 신속 도입 등의 대안을 고려하면서 사우디아라비아 석유회사 아람코에 호르무즈 해협 대신 홍해 얀부 항으로 원유를 운송해줄 것을 요청한 것으로 전해졌다.
동남아에서도 석유 등 에너지 대부분을 수입에 의존하는 태국, 필리핀 등 국가들의 경제 타격이 우려되면서 이들 국가 통화가 약세를 보였다.
특히 이란과 주변국들의 영공 폐쇄로 중동 지역의 하늘길이 대부분 막힌 가운데 이 일대를 거치는 유럽과 동남아 사이 항공 운항도 차질을 겪으면서 동남아 주요 산업인 관광업도 타격이 불가피해 보인다.
인도 최대 항공사인 인디고 항공이 중동 지역을 거치는 모든 항공편 운항을 연기한 것을 비롯해 에어인디아·말레이시아항공·싱가포르항공 등이 아랍에미리트(UAE)·사우디 등지의 운항을 중단했다고 로이터가 전했다.
이에 베트남 등 동남아 각국 여행사들은 유럽에서 중동을 거쳐 동남아로 오는 여행 상품이 취소되는 사태를 겪는 것으로 알려졌다.
psh59@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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