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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승을 앞두고 놓치는 감정을 안다”… '페이커'가 결승 뒤 전한 말 [롤드컵] (인터뷰)
엑스포츠뉴스입력

“우승을 앞두고 놓치는 감정이 어떤지 알고 있다.”
T1 ‘페이커’ 이상혁이 결승 직후 기자회견 자리에서 한 말이다. 청두 동안호 스포츠공원에서 열린 2025 롤드컵 결승전에서 T1은 KT와 풀세트 접전을 펼친 끝에 우승을 차지했다. ‘페이커’는 이날 ‘비디디’에게 건넨 말에 대해 “우리 팀도 비슷한 순간을 많이 겪어왔다. 그런 경험이 있는 만큼 내년에도 서로 좋은 경기 했으면 한다”고 전했다. 본인의 커리어에서 수차례 마주했던 감정이기에 가능한, 담담하면서도 진심 어린 말이었다.
이어 T1 선수단은 기자회견에서 이번 우승까지의 과정과 결승전에서 느낀 지점을 하나씩 풀어놨다. 먼저 ‘도란’ 최현준은 “T1에 들어올 때부터 잘할 수 있을 거란 자신감이 있었다”며 “마지막에 다 함께 웃으며 마무리하게 돼 기쁘다. 감독·코치진과 팀원들에게 감사하다”고 소감을 밝혔다. 그는 동시에 스토브리그를 앞둔 자신의 계약 상황도 솔직하게 언급하며 “결정된 건 없다. 시즌이 끝났으니 팀과 이야기를 나눌 예정”이라고 말했다.
이와 함께 ‘구마유시’ 이민형 역시 스토브리그 계획에 대해서 “작년에 1년 계약을 하면서 가졌던 마음가짐으로 올해 스토브리그도 치를 것이다.”고 밝혔다. 그는 바텀 듀오 호흡을 묻는 질문에 “챔프폭, 라인전, 메이킹 전부 뛰어나고 게임 외적으로도 보는 능력이 좋다. 서폿 쪽에서는 비교 대상이 없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케리아’는 이에 “여러 대회를 함께 치르면서 서로 원하는 역할을 잘 이해하게 됐다”며 “쓰리핏도 큰 커리어지만 앞으로 더 많은 걸 노리고 싶다”고 덧붙였다.
한편 ‘페이커’는 이번 우승의 의미를 묻는 질문에 “올해는 우승을 누군가를 위해 하는 게 아니라 프로 선수로서 경기 자체에 집중했다”며 “우승이 따라와준 것에 감사하다”고 말했다. 그는 2029년까지의 재계약 배경을 두고 “가장 뛰어난 선수들과 경쟁하며 성장하는 과정이 의미 있다”며 “얼마나 더 발전할 수 있을지, 또 얼마나 영감을 줄 수 있을지 생각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건강검진 결과가 조금 안 좋아져 내년에는 건강 관리에 집중할 예정”이라고 현실적인 과제도 언급했다.
무엇보다 지난 패배의 기억이 있던 ‘베이징’에서의 경기 질문에는 보다 솔직한 답을 내놓았다. 그는 “오늘 경기장에 왔을 때 17년도 생각이 났다. 하지만 경기를 치르면서 느낀 감정은 그때와 달랐다”며 “승패와 상관없이 경기에만 집중할 수 있었다고 느꼈고, 개인적으로 많이 성장했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이어 “이번 우승으로 인해 예전 패배의 아픔은 거의 없다. 오히려 그런 경험들이 성장에 도움이 돼 뿌듯하다”고 덧붙였다.
또 결승전에서 경기를 ‘즐겼던 순간’에 대한 질문에는 “팀원들 각자 힘든 순간이 있었지만 한 팀이 되어 승리해 기뻤다”며 “3세트를 지고 난 뒤에는 패배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 남은 경기를 재밌게 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큰 무대 경험이 많다보니 두려움 없이 플레이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우승 스킨 선택 가능성에 대한 질문에서는 “아직 결정한 건 없다. 작년처럼 팬 투표를 받을 예정”이라고 했다.
또한 결승 상대였던 KT와의 경기 흐름을 돌아보며 ‘비디디’와의 매치업에 대한 생각도 전했다. 그는 “비디디는 리그 때부터 꾸준히 잘해 왔다. 결승에서 다시 만나 기분이 좋았다”며 “KT가 2승을 따냈을 때 우승을 눈앞에서 놓치는 감정은 분명 아쉬웠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우리도 그런 순간을 많이 겪어왔기에 잘 이겨낼 거라고 본다. 내년에도 서로 좋은 경기 했으면 한다”고 덧붙였다.
‘도란’은 올해 가장 위험했던 순간을 떠올리며 “스위스 스테이지 1승 2패가 가장 아찔했다. 여러 운이 따라줬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어 KT 선수들에 대해 “실력은 물론이고 멘탈과 마인드셋이 훌륭한 선수들이었다”고 평가했다. ‘구마유시’ 역시 올 시즌 힘들었던 구간을 언급하며 “약점을 보완하는 데 큰 도움이 됐다. 힘든 시간도 결국 좋은 순간을 위한 과정이었다고 느꼈다”고 말했다.
밴픽 준비 과정에 대한 질문에서는 ‘케리아’가 “KT가 미드·바텀을 중심으로 용을 치는 흐름을 선호한다. 젠지전 때 그렇게 해서 큰 승리를 거뒀기에 이를 중점적으로 대비했다. 또한 지난 1주일 간 스크림이 없었기에 기존의 데이터 기반으로 KT 바텀보다 좋은 픽을 가져갈 수 있게 준비했다”고 설명했다. 마지막 세트에서 웃는 모습이 포착된 이유에 대해서는 “내가 따로 준비해둔 픽이 있었는데, 얘기 나누다 ‘레오나로 가자’고 해서 자연스럽게 미소가 나왔다”고 답했다.
마지막으로 김정균 감독은 “선수들이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집중해 줬다”며 “오늘 우승도 그 끈기와 집중력이 만든 결과”라고 총평했다. 그러면서 “임재현 코치가 3연속 우승을 했다. 임재현 코치의 와드가 나왔으면 좋겠다”고 농담을 더해 분위기를 누그러뜨렸다.
결승전은 끝났지만 선수들이 남긴 말에는 다음 시즌을 향한 계획과 다짐이 또렷하게 담겨 있었다. 긴 여정을 견딘 팀의 경험이 어떤 방향으로 이어질지, T1의 다음 발걸음은 다시 한 번 묵직하게 리그를 향해 나아가고 있었다.
사진 = 라이엇 게임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