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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분투칼럼] 아프리카 알고보면⑼ 자동차 여행 숨은 명소 있다

연합뉴스입력
:'진짜' 대륙 최남단 향한 드라이브 길 '가든 루트' 이은별 박사
이은별 박사[이은별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 편집자 주 = 연합뉴스 우분투추진단이 국내 주요대학 아프리카 연구기관 등과 손잡고 '우분투 칼럼'을 게재합니다. 우분투 칼럼에는 인류 고향이자 '기회의 땅'인 아프리카를 오랜 기간 연구해온 여러 교수와 전문가가 참여합니다. 아프리카를 다양한 시선으로 바라보고 분석하는 우분투 칼럼에 독자 여러분의 많은 관심을 기대합니다. 우분투는 '당신이 있어 내가 있다'는 뜻의 아프리카 반투어로, 공동체 정신과 인간애를 나타냅니다.]

아프리카 남아프리카공화국 지도[제작 양진규]

긴 여름이 저물어가고 있다. 비록 며칠일지라도, 우리는 휴가 덕분에 올여름도 견뎌냈다. 필자는 무더위 때마다 떠오르는 여행지가 있다. 산호초가 맨눈으로 훤히 들여다보이는 맑디맑은 해안가에 늘어선 야자수 그늘이 아닌, 우리와 반대인 계절을 지나고 있을 남아프리카공화국이다. 피서지를 상상해야 하는데 아프리카라니, 의아한 이들이 많을 것이다.

사실 아프리카는 세계적으로 야생동물 사파리가 가장 유명하다. 서구 백인들 사이에서는 제국주의의 유산으로 사냥이나 선교 여행, 봉사활동을 곁들인 볼론투어리즘(Voluntourism)과 생태 관광 등이 보편적이다. 특히 사하라 이남의 주요 관광지인 케냐, 탄자니아, 짐바브웨, 보츠와나, 나미비아 그리고 남아공은 야생동물에 의존하는 경향이 크다.

가든루트남아공 포트엘리자베스에서 케이프타운까지의 여정[구글지도 캡처. 재판매 및 DB 금지]
그중에서도 우리에게 남아공은 케이프타운, 희망봉, 펭귄 등이 알려져 있다. 필자 역시 남아공을 대표할 만한 '뻔한' 곳을 다녀온 뒤, 남아공 친구에게서 '가든루트'(Garden Route)를 추천받았다. 처음에는 이름 그대로 어느 정원을 따라 걷는 길인가 생각했다. 하지만 친구가 보여준 사진 속 햇살 아래 바다와 녹음을 양쪽으로 품고 쭉 뻗은 해안도로는 여기가 정말 남아공인지 의심케 했다. 자연 그대로가 곧 정원이라는 자부심이 담긴 그 길을 따라 달리기 위해 나는 포트 엘리자베스(Port Elizabeth)에서 여정을 시작했다.
영국 식민지 시절 초대 총독이었던 돈킨 경(Sir Rufane Donkin) 이름을 딴 돈킨 리저브(Donkin Reserve)에 게양된 남아공 최대 국기[이은별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포트엘리자베스는 남아공 코사어인 께베르하(Gqeberha)로 불린다.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이 1820년대 영국 식민 정책과 맞물려 있다. 아파르트헤이트 종결 이후 포용적 국가 정체성을 확립하고자 2021년 도시명을 현지어로 공식화했다. 하지만 여전히 지역 물류의 중심 항구 역할을 하고 있다. 이곳에는 테니스 코트만 한 크기의 남아공 최대 국기가 높이 60m 깃대에서 인도양을 향해 무지갯빛을 펄럭이고 있다.

아파르트헤이트 시절 강제 이주로 삶의 터전을 잃어야 했던 주민들의 이야기를 통해 남아공의 현대사와 문화 다양성을 알아보고 싶은가. 그렇다면 돈킨 리저브에서 차로 약 5분 거리에 있는 사우스 엔드 박물관에 들러보는 것도 좋다.

최종 목적지인 케이프타운까지 676㎞가 남은 지점을 알리는 해안도로의 이정표[이은별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다시 가든루트에 올라 케이프타운을 향해 서쪽으로 달리다 보면 라군(석호)과 인도양을 연결하는 해안 도시 나이스나(Knysna)에 닿는다. 울창한 숲을 등지고 푸르른 바다를 마주하니 배산임수가 따로 없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다만 그런 천혜의 환경의 주인은 뜨내기 여행자들이 달갑지 않기 때문에 인간에 대한 호기심을 대담하게 드러내는 개코원숭이의 접근은 항시 주의해야 한다.
문을 열고 들어오려는 바분(Baboon·개코원숭이)[이은별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개코원숭이와의 긴장감을 뒤로하고 마침내 가든루트의 하이라이트, 라굴라스(L'Agulhas)에 이른다. 한국어로는 아굴라스곶(cape agulhas)인 이곳은 대륙의 끝인 아프리카 대륙의 '진짜' 최남단이다. 이곳은 인도양과 대서양이 맞닿는 지점이다. 인근 희망봉이 세계적 관광지가 된 것은 케이프타운에서 하루 일정으로 쉽게 다녀올 수 있기 때문이다.

사실 15세기 포르투갈 탐험가 바르톨로메우 디아스가 동방 항로 개척 때 지리적으로 대륙의 끝을 확인한 건 바로 이곳이다. 대항해시대 항해사들이 아굴라스곶을 지날 때 나침반 바늘이 정북(正北)을 가리켰다 해 포르투갈어로 바늘(agulha)을 뜻하는 이름이 붙여졌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실제로 인도양과 대서양이 만나는 표지석 앞에서 두 대양이 만들어 낸 파고를 보고 있자면 600여 년 전 이곳에 이르러 나침반 바늘 하나로 대륙의 끝이라 확신했을 그들의 희열이 전해지는 듯하다. 최북단인 튀니지의 안젤라곶에서 아굴라스곶(라굴라스)까지는 직선거리로 약 8천㎞라고 하니 아프리카 대륙의 광활함은 이루 상상할 수가 없다.

라굴라스의 아프리카 지도 모형(좌)과 가든루트의 와일더니스(Wilderness) 마을에 있는 Map of Africa(우) 2024.11.24. 촬영[이은별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라굴라스에서 케이프타운으로 향하는 길목의 작은 해안 마을 베티스베이에는 '스토니 포인트 펭귄 콜로니'가 있다. 이름 그대로 남아공의 펭귄 서식지 중 하나다. 케이프타운 근교의 볼더스 비치가 정비된 관광지라면 이곳은 비교적 소박하다. 입장료가 있지만 그 경계를 알 리 없는 펭귄 덕분에 해안가 가까이에서 펭귄을 관찰할 수 있다. 체온 조절을 위해 일광욕과 바다 수영을 반복하는 펭귄들의 일상을 보고 있자니 새삼 여기가 아프리카라는 사실이 생경해진다.

숲과 바다, 동식물, 그리고 그 속에서 무지갯빛을 채워나가는 남아공 사람들이 곧 가든루트라는 생각이 든다. 필자는 포트 엘리자베스에서 케이프타운으로 향했지만, 연말연시 성수기와 매서운 겨울바람이 몰아치는 6∼8월만 피한다면 언제고 어느 방향으로든 가든루트를 달려도 좋을 것이다.

돌아오는 하늘길은 케이프타운에서 아디스아바바를 경유하거나 아프리카의 허브 공항 중 하나인 요하네스버그 공항을 이용하게 된다. 공항 면세점 내 사파리 테마의 의상과 액세서리를 파는 쇼핑 구역의 이름이 '아웃 오브 아프리카'(Out of Africa)인 것은 우연이 아니다. 여행자는 그저 인도양과 대서양이 만나는 남부 아프리카의 자동차 여행을 마치고 그렇게 아프리카를 떠나오면 된다.

아프리카 알고보면, 자동차 여행의 숨은 명소가 있다.

※외부 필진 기고는 연합뉴스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이은별 박사

현 성균관대 컬처앤테크놀로지융합전공 초빙교수, 고려대 언론학 박사(학위논문 '튀니지의 한류 팬덤 연구'), 한국외대 미디어외교센터 전임 연구원, 경인여대 교양교육센터 강사 역임. 에세이 '경계 밖의 아프리카 바라보기, 이제는 마주보기' 외교부 장관상 수상, 저서 '시네 아프리카' 세종도서 선정 및 희관언론상 수상.

eunbyully@gmail.com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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