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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집의 재탄생] '쉼과 예술의 공존'…전주 서학예술마을도서관

연합뉴스입력
빈집·카페 등 건물 3채 개조한 특화 도서관, 2022년 개관 마을 예술인들도 건립 동참…매일 100명 이상 꾸준히 방문
정원 같은 전주 서학예술마을도서관[촬영 : 김동철]

[※ 편집자 주 = 저출산에 따른 인구 감소와 인구이동으로 전국에 빈집이 늘고 있습니다. 해마다 생겨나는 빈집은 미관을 해치고 안전을 위협할 뿐 아니라 우범 지대로 전락하기도 합니다. 농어촌 지역은 빈집 문제가 심각합니다. 재활용되지 못하는 빈집은 철거될 운명을 맞게 되지만, 일부에서는 도시와 마을 재생 차원에서 활용하는 사례도 늘고 있습니다. 연합뉴스는 매주 한 차례 빈집을 주민 소득원이나 마을 사랑방, 문화 공간 등으로 탈바꿈시킨 사례를 조명하고 빈집 해결을 위한 방안을 모색합니다.]

전주 서학예술마을도서관 1층 내부[촬영 : 김동철]

(전주=연합뉴스) 김동철 기자 = 연간 1천만명이 찾는 전북 전주 한옥마을에서 전주천 다리만 건너면 서서학동이다. 이곳에는 서학예술마을이 있다. 서학동은 풍수적으로 인근 남고산의 산자락이 학 날개를 펼친 형국이라 해서 지어진 이름이다. 한자로 '깃들 서(棲)'에 '학 학(鶴)'자를 써서 '학이 깃드는 동네'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다리 하나만 건너면 마주하는 인근 한옥마을에 비해 발전은 더뎠다. 구도심이 쇠퇴하면서 덩달아 상권이 무너지고 빈집이 늘었다. 그러던 중 2010년 예술인들이 하나둘씩 터를 잡으면서 시나브로 변화의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음악과 미술, 문학, 사진, 도예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는 예술가들이 모여 자연스럽게 예술촌이 형성됐다.

당시 예술가 40여명이 터를 잡았던 예술마을은 현재 58명까지 늘었다.

예술인들의 요구와 함께 '책의 도시'를 표명하는 전주시는 오래 방치돼 으스스한 빈집과 카페 등 건물 3개 동을 연결하고 개조해 2022년 6월 '서학예술마을도서관'을 개관했다.

전주 서학예술마을도서관 2층 내부[촬영 : 김동철]

대지 매입 등 건립에는 19억6천만원이 투입됐으며 연면적 614㎡에 2층 규모로 다른 일반 도서관에 비해 비교적 아담하다.

붉은 벽돌로 지어진 외관은 서학예술마을과 잘 어울려 담쟁이덩굴이 얼기설기 얽힌 예쁜 북 카페를 연상케 한다.

전주 서학예술마을도서관 1층 내부[촬영 : 김동철]

도서관 조성 과정에서 마을 예술가들이 참여했고, 이들의 작품은 도서관 곳곳에 전시됐다.

이곳에서 만난 이성철(52)씨는 "책을 읽다가 잠시 피곤하면 창밖에 펼쳐진 정원 같은 풍경에 잠시 넋을 잃기도 한다"며 "쉬었다가 책을 보고 생각을 정리하는, 아직 덜 알려진 힐링 명소"라고 소개했다.

학부 시절 미술을 공부한 최민지(37)씨는 "혹시 도서관 앞 정원에서 나비를 본 적이 있느냐"면서 "이곳은 도심에서 쉽게 볼 수 없는 나비도 볼 수 있고, 공간 전체가 예술적 감성을 불러일으켜 틈틈이 방문하고 있다"고 말했다.

도서관은 누구든 가벼운 마음으로 찾을 수 있게 높은 담장은 허물고, 남녀노소 모두의 예술적 감성을 자극하도록 건물 외관부터 다채로운 색깔을 활용했다.

전주시가 직영하는 작은 도서관으로 운영되고 있으며 총 1천700여권의 장서가 비치돼 있다.

사진·연극·음악·미술 분야로 이뤄진 자료실과 열람 공간에는 예술 도서, 그림책, 팝업북 등 다양한 도서와 LP·CD 등 볼거리와 즐길 거리가 가득하다.

1층에선 정원을 구경하며 책을 읽을 수 있고 2층에선 다락방처럼 편안한 공간에서 독서에 집중할 수 있다.

2층에는 집 소파에서처럼 눈치 보지 않고 드러눕거나 앉아서 독서할 수 있는 좌식 공간도 마련돼 있다.

1, 2층을 둘러보니 매그넘(Magnum·보도사진작가 그룹)과 만 레이(미국의 초현실주의 사진작가) 등의 관련 서적과 아델·비욘세·지미 헨드릭스·나윤선 등 아티스트들의 LP가 가지런히 배열돼 시선을 끈다.

야외 정원에는 조그마한 소공연장이 마련돼 있다. 이곳에서는 예술 전문 도서관답게 다채로운 공연이 열리며, 도서관을 찾는 시민들에게 깜짝 선물과도 같은 힐링의 시간을 선사하고 있다.

도서관 한쪽에는 '책은 책 이상이다. 차라리 그것은 삶 그 자체다'(에임 로웰)란 격언이 적혀 있다.

활자의 쇠락은 현재 전 세계 공통 현상이지만, 이곳에서만큼은 활자와 인식·예술적 감각이 확장하는 경험을 느낄 수 있었다.

평일이면 100여명, 주말·휴일에는 150∼200명이 이곳을 찾는다고 한다.

도서관 인테리어를 총괄한 곽승호 전 서학동예술마을 촌장은 "서학예술마을의 고즈넉한 분위기를 살리고 도시 재생의 취지에 맞게 내부는 목재를 활용했고, 오래된 바닥도 들어내는 대신 최대한 원형을 살렸다"고 설명했다.

건립 당시 시장인 김승수 전 전주시장은 이 도서관을 "어울릴 권리, 노닥일 권리, 도모할 권리에 기반한 마을 도서관"이라고 강조한다.

도서관 인테리어 총괄한 곽승호 전 서학동예술마을 촌장[촬영 : 김동철]

김 전 시장은 "이 도서관은 우리 시대의 '제3의 장소'를 기대하며 지어졌다"며 "마을과 학교, 아이들과 예술가들, 주민들이 중심이 되어 운영하는 공공장소를 꿈꿨다. 그래서 도서관 이름을 서학예술도서관이 아닌 '마을'을 덧붙여 서학예술마을도서관이라고 지었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그러면서 "시민들이 이 도서관 곳곳에서 서로를 알아가면서 어울리고 무언가에 대해 끊임없이 얘기하면서 어떤 일이든 주도적으로 만들어가면 좋겠다"고 기대했다.

전주시 관계자는 "서학예술마을도서관은 주민과 예술인, 독서출판인들의 관심과 애정으로 만든 도시재생 공간"이라며 "다양한 예술을 만나는 감성을 제공하고 차별화한 프로그램 운영을 통해 시민들에게 문화예술의 기회를 제공하는 특화 도서관으로 자리 잡고 있다"고 말했다.

※ 참고 문헌 : 김승수 '도시의 마음'(다산북스)

sollenso@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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