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장 사퇴" 與 사법부 압박 총공세…속끓는 법원 '침묵'(종합2보)

(서울=연합뉴스) 이미령 기자 = 더불어민주당이 조희대 대법원장을 직접 겨냥해 사법부를 향한 압박 수위를 높여가자 법원은 당혹감 속에 상황을 주시하고 있다.
15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법원은 지난 주말부터 이어진 민주당 강경파 의원들의 대법원장 사퇴 요구 속에도 특별한 입장을 보이지 않고 있다. 공식 반응도 내놓지 않았다.
추미애 국회 법제사법위원장은 전날 조 대법원장을 향해 "사법 독립을 막고 내란 재판의 신속성과 공정성을 침해하는 장본인"이라며 공개적으로 사퇴를 요구했다.
정청래 민주당 대표는 국회 최고위원회의에서 "사법부의 정치적 중립성에 대한, 해명할 수 없는 의심에 대해 대법원장은 책임져야 한다"며 "(조 대법원장은) 사과하고 사퇴해야 한다"고 촉구하는 등 직격했다. 정 대표는 "대법원장이 그리도 대단하냐, 대통령 위에 있느냐, 국민의 탄핵 대상이 아니냐"고 하기도 했다.
이날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은 추 위원장 발언과 관련한 입장 질의에 "특별한 입장이 있는 것은 아니다"라고 전제하면서도 "시대적·국민적 요구가 있다면 '임명된 권한'으로서 그 요구의 개연성과 이유에 대해 돌이켜봐야 할 필요가 있지 않느냐는 점에 대해 아주 원칙적으로 공감한다"고 말했다.
또 "국회가 어떤 숙고와 논의를 통해 헌법 정신과 국민 뜻을 반영하고자 한다면, (그 과정에서) 가장 우선시되는 것은 국민의 선출 권력"이라는 의견도 밝혔다.

조 대법원장은 지난 12일 출근길에 '사법개혁' 입법 추진과 관련해 "충분한 논의가 필요하다"는 입장을 밝혔지만, 이날은 출퇴근길 모두 아무 발언이 없었다. 대법원도 공식 입장 표명을 비롯해 언급 자체를 극도로 자제하는 분위기다.
법원 내부에선 사법부 수장을 향한 노골적 사퇴 압박에 당혹스러워하는 분위기가 역력하다. 검찰개혁에 비해 사법개혁 논의는 그간 구체적으로 전개되지 않은 상황에서 갑자기 대법원장을 향한 최고 수위 공세가 돌출한 것에 특별한 배경이 있는 것인지에 관심을 기울이는 기류도 있다.
다만 개별 법원이나 전체 차원의 판사회의 등 구체적 움직임은 특별히 표출되지 않는 상태다.
익명을 요구한 한 부장판사는 "노골적 삼권분립 침해"라며 "법사위원장 얘기에 대통령실에서 화답하고 당 대표까지 얹은 건데 가볍게 볼 사안은 아니다. 앞으로 더한 요구들이 나오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그는 "결국 (내란 사건 재판장) 지귀연 부장판사뿐 아니라 대법원장까지 대놓고 나가라는 건데, 이렇게 나가라고 해서 나간다면 너무나 나쁜 선례가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정청래 대표가 지난 5월 법원 내부망에 올라온 김주옥 서울중앙지법 부장판사의 글을 인용한 데 대해서는 사법부 내부의 대체적인 시각과는 차이가 있다는 반응이 나온다.
서울대 총학생회장을 지낸 이색 이력을 지닌 김 부장판사는 당시 '사법부의 정치적 중립성에 대한 해명할 수 없는 의심에 대해 대법원장이 책임져야 한다'는 글을 썼는데, 이날 정 대표는 이 내용을 언급하며 "조 대법원장이 이미 법원 내부에서 신뢰를 잃었고 대법원장직을 수행할 수 없을 만큼 편향적이라는 법원 내부의 평가가 그때 있었다. 지금이라도 사퇴하는 게 맞다"고 말했다.
또 다른 부장판사는 "사법부 내부에서도 공감되지 않았던 특정 판사를 언급하는데 일반적 판사들의 의견은 아니다. 하고 싶은 말이 있어도 99%의 판사들은 조심하느라 글을 쓰지 않을 뿐"이라며 사법부를 향한 발언들에 우려를 표시했다.
재경 지법의 한 고위 법관은 "민주당에서 법원을 향해 '자업자득'이라고 한 걸 보면 결국은 입법자의 의사는 자신들에게 불리한 재판을 한 것에 대한 보복 내지 앙갚음"이라며 "형식적으로 합헌적인 국회의 권한행사라는 외관을 띠더라도 그 동기가 불법적이어서 위헌적이고, 입법자의 입법 재량에 사적인 동기가 개입돼 있어서 적법성이 없다고 할 수 있다. 그냥 광풍이 몰아치고 있는 것"이라고 토로했다.

과거에도 대법원장이 중도퇴진한 전례는 있지만 사법부 바깥의 압박에 물러난 적은 없었다.
1987년 개헌 이후 첫 중도 사퇴 사례는 9대 김용철 대법원장이다. 1988년 총선 결과 사상 초유의 '여소야대' 구도가 형성됐고, 제1야당이 된 평화민주당이 대법원장과 대법관 교체를 요구하는 가운데 노태우 당시 대통령이 전두환 정부 때 임명된 김 대법원장을 유임시킨다는 방침이 알려졌다. 여야는 국회 원 구성과 5·18민주화운동, 5공 비리 조사 등을 놓고 대립하던 중이었는데, 유임에 동의해 주면 야당 몫 대법관을 보장하겠다는 식의 제안을 했다는 얘기가 돌면서 대법원을 정치적 흥정거리로 삼았다는 사실에 판사들이 동요했고, 이는 소장 판사들의 '2차 사법파동'으로 이어져 결국 대법원장이 물러났다.
이후 정기승 대법원장 내정자 임명동의안이 부결되는 혼란이 이어진 끝에 지명돼 취임한 10대 이일규 대법원장은 취임 2년여 만에 정년을 맞아 퇴임했다.
노태우 정부 때 임기를 시작한 11대 김덕주 대법원장은 김영삼 정부 출범 이후 공직자 재산공개 때문에 스스로 물러났다. 변호사였던 1986∼1988년 투기 대상 지역에 9억원어치 부동산을 사들인 사실이 공개돼 거센 비판을 받으면서다.
문민정부 이후 취임한 윤관·최종영·이용훈·양승태·김명수(12∼16대) 대법원장은 모두 임기를 채웠다.
한편 윤석열 전 대통령의 법률대리인단은 이날 입장문을 내고 "대법원장의 퇴진, 내란특별재판부의 설치를 말하는 것 자체가 재판의 독립을 흔들어 편향된 결론, 예정된 결론에 이르도록 사법부를 강압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들은 "우리 헌법 어디에도 권력의 서열을 정하고 있지 않고 권력분립의 원리에 위반해 대통령이 대법원장의 진퇴를 거론할 수 없다"며 "내란특별재판부 설치 역시 사법부의 독립을 무력화하려는 위헌적인 시도"라고 말했다.
already@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